영화 <곡성(哭聲) THE WAILING, 2016>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곡성을 관람하고 왔다. 평점이 짜기로 유명한 몇몇 평론가가 높은 평점을 매기며 주목을 받기 이전에 황정민, 곽도원 같은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들과, 최근 몇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력과 선구안을 보여준 천우희, 거기에 이미 전 세계의 관객을 만나고 매료시킨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의 출연과 더불어, <추격자>, 황해로 이름을 알린 나홍진 감독의 연출까지 맞물려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기에 나 역시 기대하는 마음으로 곡성을 볼 기회만을 노리다가 결국은 다녀왔다.
개인적인 소감부터 늘어놓자면, 가히 대단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였다. 이동진 평론가의 "그 모든 의미에서 무시무시하다."라는 짧고 굵은 그 환상적인 한줄평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영화였다. 그 무시무시함에는 나홍진 감독의 영리함이 돋보이는 연출이 포함됐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항목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개인적인 소감과 더불어 주석을 붙이려고 했으나, 그러자니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큰 틀에서 영화에 관한 주석을 달고 넘어가 보고자 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머릿속에 한 영화가 떠올랐다. 존 패트릭 샌리가 연출하고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등이 출연한 영화 <다우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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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트>와 <곡성>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아 있었다. 이를테면 '의심'이라는 키워드가 그렇고, 관객을 인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특징 같은 것들 말이다.
'몰입'과 '이입'의 차이로 두 영화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몰입'은 "깊이 파고들거나 빠짐"을, 이입은 "옮기어 들임"을 의미한다고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데, 쉽게 설명하면 '몰입'은 다른 어떤 생각이나 주변의 환경에 굴하지 않고 영화에 집중해서 보는 것이라면, '이입'은 영화 속 인물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것, 즉 '이심전심'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두 영화는 '몰입'이 아닌 '이입'을 끌어내는 영화이다. <다우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에서, 나는 관객이 수녀 '알로이시스'에게 몰입하도록 만들어 신부 '브렌단'을 의심토록 만들게 한다고 이야기했었다. 영화 <곡성>도 마찬가지다. 나홍진 감독은 '종구'를 통해 관객들이 그에게 이입해 상황을 판단하게 만들고 그렇게 영화를 몰아간다. 감독은 관객을 영화 속 인물로서 끌어들이는 매개체인 '종구'에 대해 디테일하게 설정함으로써 '끌릴 수밖에 없는'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종구'는 철저히 인간적이다. 좀 더 극단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종구'는 인간을 대표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다. 그래서 항상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 우리는 그것을 '허당끼(?)'라고 표현한다. 이를테면 실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동료에게 "그런 걸 믿냐"는 식으로 면박을 주면서도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여인을 보고 기절초풍하는 여린 모습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딸 '효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즉, 절절한 '부성애'를 보여주며 따뜻한 인물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종구'의 모습들은 '종구'를 인간적인 캐릭터로 느끼게 만들며, 이윽고 관객들을 묘한 일들이 벌어지는 '곡성'으로 스스로 발을 들이게끔 만든다.
그리고 <곡성>을 본 관객의 수만큼 많은 '종구'들은 일련의 사건들-영화의 모든 사건들을 언급할 수 없기에 이렇게 서술할 수밖에 없다.-을 통해 의심을 쌓아간다. 그리고 의심은 사건들과 함께 깊어져만 간다. 그렇다면, 왜 그 수많은 '종구'들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가? 달리 질문하자면, "인간은 왜 의심할 수밖에 없는가?"
'의심'의 사전적 정의는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의구심'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모르는 어떤 상황이나 인물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없기에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영화 속 전남 곡성에서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고 믿지 못할 일들 투성이다. 그런 상황 속 '종구'의 의심은 타당성이 생긴다.
사실 곡성에서 벌어지는 그 사건들은 사실 큰 틀에서 '인생의 모호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고, 인간은 그 시간이 흐른 뒤를 예측만 할 뿐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현재'를 정확히 판단할 만큼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의 인생은 모든 인과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이해가 가지 않으며, 모호한 것들 투성이다.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그것을 축소시키고 상황 속으로 밀어 넣은 곳이 영화 속 곡성인 것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종구'에게 매료되어 사건을 '종구'의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종구'의 혼란은 관객의 혼란이 되어있다.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종구'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가깝게 느껴져 더욱 혼란스럽다. 나홍진 감독의 영리함은 이런 데에서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감독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갈등하는 '종구'를 비춰주고 그가 고민하는 두 선택지의 극단을 번갈아가며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그 극단도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보일 뿐이다. 나홍진 감독은 '의심'을 이용할 줄 안다. '종구'가 의심을 품기에 최적의 상황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관객들이 같이 의심하고 궁금해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모든 '떡밥'들이 회수되기 전까지, 우리는 그저 그 떡밥만 쫒아가면 된다. 그거 하나면 영화를 후회 없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그 '떡밥'을 물면, 나홍진 감독의 낚시도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극장을 벗어나면서 우리는 펄떡일 것이다. 낚였다는 생각에 펄떡일 수도 있고, 나홍진이라는 낚시꾼의 실력에 펄떡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그 떡밥을 따라 영화 속 곡성으로 들어갔다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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