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우트 Doubt, 2009>
인간에게 주어진 것들 중에 장점이자 단점이 되는 것들 중 하나가 ‘의심’이다. 리뷰를 하면서 언급했던 인간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은 이 의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것을 ‘편협함’이라 한다.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편협하다 : 한쪽으로 치우쳐 도량이 좁고 너그럽지 못하다.]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으로 생각하며 남의 말은 듣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화의 제목 ‘Doubt’는 [의심, 의혹, 회의] 등을 의미한다. 제목에서 냄새가 나듯, 이 영화는 의심에 관한 이야기고, 의심하는 인물들로 하여금 관객들이 의심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처음에 ‘알로이시스’ 가 의심을 시작하는 과정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왜 의심을 하는지, 그리고 신부는 왜 말을 제대로 하지 않고 머뭇거리는지 같은 일련의 질문들이 관객에게 던져지며 관객들은 의심에 참여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인물의 편협함이 적나라하게 거리낌 없이 표현된다. 극단적이기까지 한 이런 모습은 심도 있는 캐릭터 분석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알로이시스’ 의 의심은 사소하게 시작한다. 그러나 사소한 의심은 커지고 결국,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든다. 그 의심이 너무 크고 강해서 관객들은 그 끝없는 의심의 이유를 찾으며 그녀를 따라 의심하면서도 그녀의 편협함을 보며 혀를 내두른다.
그리고 영화는 ‘알로이시스’ 를 통해 인간이 끝없이 의심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신부를 극단적으로 의심하지만 그 결말이 개운하지만은 않다. 여타 영화처럼 모든 진실을 보여주지 않고 단편적인 힌트 조각들만 보여줌으로 그 의심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 또한 해소되지 않고 관객들로 하여금 끝까지 신부를 의심하게 한다. 단편적인 조각들을 모아 나름의 이유를 들며 그녀의 의심이 사실이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려고 한다면 충분히 그 주장에 반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알로이시스'는자신의 의심을 의심하며 ‘회의’를 느낀다. (회의도 Doubt 안에 포함되는 단어이다.) 자신의 의심이 타당했는지, 그 의심이 신 앞에서 올바른 행동이었는지 그리고 진짜 신은 있는 것이며 신에게 정의는 없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닥치면서 신에 대한 의심(회의)으로 끝난다.
영화의 시작은 ‘의심’ 이었고 마지막은 ‘회의’였다. 그리고 그 의심의 몫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그 단편적인 조각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도 100% 확신을 주지는 못한다. 신부가 잘못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저 의심해봐야 할 대상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알로이시스’ 의 광기 어린 의심이고 ‘편협함’을 보여준 것 밖에 안 되는 것인가?
감독이 우리를 보며 씩 웃는 듯이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