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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종무 Apr 04. 2021

집으로

어느 날 갑자기 스타트업 창업하게 된 이야기.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서 일을 시작하게 된지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아이디어 밖에 없었던 비포플레이의 서비스 피쳐들은 나날이 그 내실을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회의실에 모여서 이런 걸 개발하면 어떨까?

이런걸 이렇게 운용해봐야지. 논의하고, 게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다보니

수천개의 게임 설명용 태그, 수천개의 게임 정보를 긁어다가 이리붙이고 저리 붙이고,

게임을 일일이 하나씩 살펴보며 데이터를 라벨링하고 엑셀파일을 수도없이 만져가며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개발 쪽에서 일어났죠. 

사실 저희 개발자분들은 만 24개월을 채우지 못했던 아직은 주니어에 가까운 개발자 분들이었고, 우리의 서비스는 주니어들이 만들어서 뚝딱뚝딱 만들어내기에는 사실 많이 어려운 내용의 서비스였습니다. 이제는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이게 얼만큼의 난이도를 가진 개발 프로젝트인지 알지 못 하고 있었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AWS부터 세팅해서 데이터 파이프라인까지 깔아야하는 사이트의 개발을 맡게 된 두 개발자분은 나중에 밝혀주셨지만, 사실 많이 당황하셨답니다. 시니어가 있어야 해결이 되는 문제였는데, 시니어는 언제 오는 것이며, 장비는 언제 받을 수 있는지, 기획서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기획서는 언제 나오는 것인지.... 

데이터 분석가 분도 난관에 빠져있었죠. 수많은 데이터를 다루고, 그 데이터를 라벨링해서 머신러닝을 하던 딥러닝을 하던, 당장은 7만개, 장기적으론 수십만개의 게임 데이터를 분석해서 AI를 만드는 작업을 하려고 마음 먹으셨던 분석가님은 실제로 라벨링된 데이터는 5000개... 3명이 달라붙어서 밤낮없이 라벨링 하고는 있지만 빠르게 숙련되어야 1분에 1개 정도 끽해야 하루 500개 라벨링하기도 바쁜 것이 우리가 가진 데이터의 전부이며, 나머지 데이터는 모두 크롤링을 해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셨죠. 법인 등록도 채 안된 초기 스타트업이고 아직은 전부 아이디어레벨이니 그럴수 있다고 생각은 하셨지만, 더 큰 문제는 크롤링 해오는 데이터가 사실은 굉장히 오염된, 게임 개발사와 퍼블리셔들이 마케팅 목적으로 잔뜩 오염시켜놓은 데이터들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걸로 실제 작업을 하려면 일일이 클렌징을 해야하는데, 그건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수천만원은 드는, 내부적으로 처리하면 적어도 서너달은 데이터를 일일이 보고 하나씩 붙여나가야 하는 그런 작업이었죠. 출근 2주 만에 조용히 저를 불러 말씀해 주셨죠. 


'여기서는 제가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그랬습니다. 


개발은 1도 모르면서, 해맑은 눈으로 '개발자님들이 다 해결해주실거야'라며 쳐다보고 있는 멍청한 창업자에게 사이트를 만들어 줄 개발자분은 없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그 분들에게 원한 것이 개발자의 역할이라면 그 분들은 저에게 관리자 혹은 경영쟈의 역할을 해주시길 원하고 계셨던 거죠. 전 그걸 모르고 엑셀파일을 만지며 혼자 신나고 있었던 것이구요. 사실 제가 같이 일해본 개발자 분들은 한분은 15년 경력, 그 다음으로 오신 분은 경력만 20년 넘은 초 시니어급, 이미 CTO급을 초월한 개발자 분들과 그 분과 함께 일하는 주니어 개발자 분들이었고, 제가 그분들과 업무상으로 논의를 진행할 때는 많은 말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러이러한 걸 만들려고 하는데요, 이런게 들어가면 되고, 자료는 여기 있고, 어떤게 꼭 됐으면 좋겠어요' 정도만 말해드리면 뭔가가 알아서 척척 진행이 됐으며, 좀 기다리면 사이트를 볼 수 있었죠. 


하지만 총원 7명에 만 3년도 아니고 3년차 개발자 두분을 모시고는 상업용 서비스 웹 사이트를 만들 수 없다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8월이 채 끝나기 전 개발자 두분은 '이런건 저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사이트가 아니에요.' 라는 말씀을 남기고, 떠나가셨고, 데이터 분석가 분도 '데이터가 좀 더 쌓이면 2~3년 뒤에 제가 뭘 할 수 있게 되면 다시 연락주세요' 를 마지막으로 떠나가셨습니다.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잡을 수도 없었던 것이 8월이 다 끝나도록 투자는 받지 못했고, 저희는 떠나가는 분들을 월급으로 잡을수도, 하다 못해 일할 장비도 준비해드리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원래 게임 기획자를 꿈꾸셨던 인턴 기획자 분은 게임 기획 쪽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다며 떠나가셨고, 게임 전문가 분은 말 그대로 게임 전문가이지 사실 서비스 만드는 쪽으론 아는 바가 없었었습니다. 

그렇게 8월이 끝나고, 다시 대표님과 저 둘만 남은 저희는 야심차게 임대했던 공유 오피스를 환불받고 다시 스타벅스로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8월 말에는 코로나로 카페를 이용할 수도 없었기에, 집으로 가야만 했죠.

그렇게 뜨거울줄 알았던 2020년의 여름이 미적지근하고 눅눅하게 끝나고 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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