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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May 17. 2018

어디서든 화장실을 찾는 Insight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황을 마주하며


이상함을 발견하는 감(感)

회사에서 부사수 한 명을 받게 되었다. 내가 있는 팀은 꽤 젊은 조직이기에 후배 사원은 꽤 많았지만, 업무를 같이 나누어하게 되는 부사수를 맡은 건 처음이었다. K는 빠르게 업무를 습득하는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그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많았고 신입 사원답게 K는 자잘한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 일을 무 자르듯 정확히 나누어 분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후배가 맡은 일이더라도, 상황이 급박해지면 내가 보조하고 파트장이 관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K의 업무 속도는 충분히 빠르지 못했기에 급히 나와 파트장인 차장님이 회의 준비 마무리를 도왔던 어느 날, 여느 때보다 유독 크게 풀이 죽은 K를 위해 파트장은 회사 근처에서 조촐한 치맥 자리를 제안하였다. 건배 후 맥주를 들이켠 후에 파트장이 말했다.

도제 徒弟, Apprenticeship


"신입 시절에 실수가 많은 건 당연해. 업무 속도가 상대적으로 늦은 만큼 업무를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옆의 사수나 나에게 요청을 해줘. 카운터파트 부문의 자료를 받았을 때 데이터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질문을 해주고. 홀로 끙끙 앓다가 시일을 놓치는 게 가장 큰 실수가 될 거야."


관리자로서, 그리고 선배로서 그의 말은 지극히 옳다. 하지만 옳은 말이 늘 좋은 임팩트를 만들지는 못한다.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변호 아닌 변호를 말하고 있었다.


"아마 K씨는 데이터에서 무엇이 이상한지를 파악하는 데 저희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릴 겁니다. 업무에서 통용되는 상식, 혹은 컨센서스를 아직 쌓지 못했으니까요. 명확한 매뉴얼이 존재하기 힘든 저희 업무 특성상 이러한 시행착오는 시행착오의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


파트장이 다시 맞받아친다. 

"그 말은 맞으면서 또한 틀리기도 해. 경험이 쌓일수록 '이상함'에 대한 '감'이 좋아지는 건 당연할 거야. 다만 그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논리와 충분한 관찰력으로도 오류의 유무는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서로 옳은 말을 하고 있을 때 술자리의 대화는 끊기기 마련인지라, 다시 건배가 뒤따른다. K는 우리 둘의 대화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화장실과 Insight

술잔을 기울이며 학생 때를 떠올린다. 동아리 활동 중에 사회생활을 하는 선배를 모셔서 이런저런 문답을 하는 자리였다. 아마도 동아리 멤버 중 누군가가 선배에게 Insight란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 같다. (이런 선문답을 학생 때는 참 좋아했다.) 질문이 있었는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선배의 대답은 인상 깊었다.


"제가 생각하는 Insight는 '화장실의 위치를 찾는 능력'같은 겁니다. 누구든 처음 가보는 건물의 어떤 층에 있더라도 화장실의 위치가 어디쯤 있을지 대략 예상할 수 있잖아요? 이와 비슷한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논리와 추론 능력으로 알아내는 사람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경험에 기반한 감(感) 같은 거죠."

화장실 찾기

 

Insight, 즉 통찰력(洞察力)은 광의로 쓰이는 여타 이해력과는 다르게 보다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이루어지는 이해를 뜻한다. 충분한 논리력과 관찰력만으로도 물론 화장실의 위치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해답을 찾는 여정에서 '논리와 관찰'은 흡사 나침반과 망원경과 같다. 주어진 정보 내에서 이 도구들은 경로를 자아내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체 반해 통찰은 축적된 지식과 개인의 사고방식, 심지어 감정의 형태까지 결합되어 마치 지도map를 보는 것처럼 요인들 간의 연결 관계를 커다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Insight나 통찰(洞察)이라는 용어에서 보이듯 '시각적으로 한눈에 인식되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의 걸음걸이만으로도, 자신이 위치한 건물의 넓이를 가늠한다. 통상적으로 외곽의 구석진 곳에 화장실이 있을 것을 예상한다. 건물의 배수로의 설계가 외벽을 타고 흐른다는 건축학적 지식에 의해 그런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저 오래도록 쌓인 경험에 의존할 뿐이다. 때론 당연스레 여기던 위치에서 화장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당혹해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말이다.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단계', '이상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에 알기 어려운 상태'는 인사이트가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통용되는 컨센서스를 빠르게 체화하지 못하는 한, 여전히 K의 업무 속도는 충분히 빨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빠른 연착륙을 위해 선배의 체크리스트를 모방하고, 워킹 시트를 숙지하며, 파트의 시행착오를 모두가 공유하는 것 모두 이를 위한 활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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