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 근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소리엘 May 15. 2018

칭찬의 불편함

칭찬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지 않는다

고래의 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어떻게 유행한 걸까. 언젠가의 베스트셀러였던 책 -몇 명이나 읽었을까- 의 세세한 내용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제목만은 여전히 경구처럼 남아 우리 곳곳에 진득하게 숨어 있다. 프로파간다와 경구警句, 그리고 훅hook만이 사람들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는 진리는 여기서도 여실히 발휘된다.


경구라는 건 말의 풍미를 돋우는 양념 같은 것 아닐까 싶다. 풍부한 논리로 무장된 문장과 문장 사이에, 혹은 멋들어진 유머와 센스로 넘실대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 오랜 경구가 적절히 녹아들 때 그 풍미가 빛을 발하는 법이다. 바꿔 말하자면, 빈약한 언어 속에 경구만 어설프게 가득할 때 그 경구는 없느니만 못한 게 된다. 잘못 계량된 양념은 타인의 속을 거북하게 하고, 나아가 나중엔 그 경구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 것이다. 


이러한 '경구의 오용'은 아랫사람보다는 보통 윗사람에서 많이 나타난다. 나이 듦에 따라 재치와 순발력이 둔해지고, 가진 기억에 보다 의존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럴싸한 경구나 사례들만으로 문장의 5할 이상을 낭비하는 윗사람들을 우리는 '꼰대'라고 칭한다. 이 분들에게 칭찬에 대한 저 유명한 격언을 탑재하는 순간, 바야흐로 '칭찬 꼰대'가 탄생한다. 


분명 칭찬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듣다 보면 기분이 묘하게 나쁠 때, 우리는 '칭찬 꼰대'를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칭찬의 프레임으로 오지랖부터 지적질, 고나리질까지 모든 걸 해내고야 만다. 누군가는 말한다. 대놓고 심한 말을 내뱉고 단점만 지적하는 윗사람보다는 낫지 않냐고. 물론이다. 다만 칭찬이 늘 고래를 '기꺼이' 춤추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칭찬 꼰대(혹은 칭찬 빌런)는 비단 나이 든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칭찬

나부터 반성하고자 한다. 


칭찬을 만능이라 여긴 적은 없지만, 대화의 소재가 궁할 때 만만하게 찾아낸 대안은 늘 칭찬이지 않았나 싶다. 특히 회사에서 중단된 대화를 재개하거나 새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 칭찬은 유용한 서두였다. 칭찬으로 시작하는 대화는 최악의 경우에라도 손해 보는 짓은 아니라는 조금은 치사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OO씨, 자료 잘 만들었던데요." "OO는 진짜 눈치가 빠르구나." "OO, 머리 스타일 멋지게 바뀌었네요?" "OO, 오늘 예쁘게 하고 왔네." 등등


돌이켜 보면 공허하기 짝이 없는 칭찬들이다. 안일한 마음으로 대중없이 내뱉은 말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겠는가. 재밌는 점은, 과거의 칭찬들을 나열해 보면 공허하다는 점 말고도 묘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칭찬을 한 대상은 늘 후배거나 손아랫사람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한 번도 손윗사람을 칭찬한 적이 없다. 영어로 Compliment라고 사용되는 말은 한 적이 더러 있겠으나, 그건 존경이나 찬사, 심지어 아부일지언정 칭찬인 적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동등하거나 그 아래에 위치하는 사람들에게만 칭찬을 사용해 왔다. 우리의 칭찬은 위에서 아래로는 흐르지만 그 반대 방향으로는 흐르기 어렵다.  



오늘 예쁘게 하고 왔네

칭찬의 방향성을 깨닫게 될 때, 과거에서 반성할 점을 또 찾게 된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여성의 외모에 대한 남성 발화자의 칭찬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들어 회사에서 빈번하게 시행하고 있는 '성희롱 예방교육'의 유명한 FAQ를 예로 들어보자. 

Q. 회사에서 여자 직원 / 동료에게 칭찬을 하는 것도 성희롱에 해당하나요?
A. 네!

 주변의 많은 남성 친구들이 이 예제에 -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 분노하는 것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순수하게 복장이나 외모에 대한 칭찬을 하는 것이 왜 희롱이냐는 것이 분노의 이유였다. 


이제는 예전보다는 좀 더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칭찬이야 말로,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말장난 같지만 실제로 그렇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찬사나 감탄이 아닌 '외모 칭찬'을 하는 순간, 그것은 자그마한 권력을 등에 업은 외모 품평이 되기 일쑤다. 나아가, 칭찬의 틀만 장착한 채 센스도 뭣도 없는 오지랖이나 지적질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구태여 표현하자면, '외모 칭찬 빌런'의 탄생이 되시겠다.


센스와 위트에 자신이 있다면, 동등한 타인을 향한 칭찬을 누가 말리랴. 자신의 센스를 과신하기 전에, 이성을 향한 외모 칭찬이 성희롱 예방교육의 FAQ라는 점을 한 번 정도는 상기했으면 좋겠다. 젊든 늙든 우리는 24시간 늘 센스로 넘치는 사람이 아닐 테니 말이다. 


은근히 동료를 아랫사람으로 깔본다는 오해를 받기 싫다면, 동료가 아니라 날씨를 칭찬하면 될 일이다. 날씨 칭찬 역시 대화를 이어주는 훌륭한 IceBreaker다. 게다가 하늘은 누구 아래에 있기도 힘드니까 뭘 함부로 하대한다는 오해에서도 자유롭다. 나는 말주변이 없으니, 이제부터 날씨 칭찬이나 하련다. 


"우와. 정말 한여름 같은 봄 날씨네요 :)"

매거진의 이전글 쉬운 문제 같은 건 하나도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