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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Feb 04. 2018

쉬운 문제 같은 건 하나도 없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의 '신체 보호대' 문제를 이야기하며,

 재미없는 군대 이야기부터 해보려 한다. 나는 한국군과 미국군이 함께 근무하는 거대한 지하벙커에서 군생활을 보냈다. 한국군(육군,해군,공군,해병대), 카츄사, 주한 미군이 한데 섞여 근무하는 이 곳은 24시간 동안 수많은 기밀 정보를 다루고 처리하는 곳이었다. 당연스레 주야를 불문하고 컴퓨터가 켜져 있었고 콘솔마다 간부와 병사 모두 교대근무를 하며 자리를 비우지 않아야 했다. 지하인 데다가 24시간 동안 수많은 컴퓨터가 작동되고 있으니 공기의 질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콜록거림이 임계점에 달했던 어느 날, 한국군과 미군 모두 공기질을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수많은 영화 속 NASA의 상황실과 같은 느낌. 영화를 볼 때마다 늘 미세먼지를 걱정하는 나를 발견한다.


 늘 그러하듯, 대처 속도는 한국군이 월등히 빨랐다. 군인들은 실내에서도 군화를 신은 채 근무해야 했기에 군화를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분진을 문제의 주요 원인이라 판단하고, 재빨리 실내용 방진화 구매를 추진하여 전체 근무 인원들에게 보급하였다. 길게는 하루에 10시간 넘게 업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던 병사들 입장에서는, 군화보다 발이 덜 불편한 방진화 추진 계획은 즐거운 것이었다. 또 다른 해결책으로는 업무량이 다소 적은 새벽 근무 시에 병사들 몇 명을 추가로 차출하여 더 많이, 더 자주, 더 꼼꼼히 콘솔 청소를 한다는 것이었다. 기존에는 막내 병사 2명이 하던 청소를 4~5명으로 대폭 늘렸다. 아마도 덕택에 공기가 조금은 쾌적해졌으리라. 


 그에 비해 미군의 대책은 꽤 더뎠다. 한국군의 '방진화 보급 및 청소 강화' 전략을 시행한 지 2달이 지나갈 동안 미군은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은 듯 보였다. 그들은 여전히 황토색 미군 군화를 신고 다녔고, (한국군이 모두 방진화를 신었을지언정 미군이 군화를 신고 다닌다면, 한국군의 전략은 얼마나 유효했던 걸까 반문해볼 수도 있겠다.) 미군이 고용한 청소부(그렇다, 병사들이 청소하지 않는다.)들 역시 특별히 숫자가 늘어나지 않았다. 미군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여기던 그때, 갑작스레 미군 주도 하에 벙커 전역의 천장 공사가 시작되었다. 후에 친구가 된 미군에게 들은 바로는, 본국의 허가를 받고 한국군 협조를 구해 벙커 전체의 공기 청정 시스템을 재정비했다는 것이다. 


 나를 사대주의라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미군의 대응이 한국군의 대응보다 본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여겼다. 물론, 어쩌면 그 벙커 시설의 정비는 미군에게만 권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국군에게는 임기응변 식의 방식만을 운용할 수밖에 없는 어떤 한계가 존재했을 수도 있다. 내가 겪은 군대는 그런 종류의 '불순한' 질문에 일일이 대응해주지 않는 곳이었다. 다만, 공기청정 시스템이 개선된 이후로도 미군은 군화를, 한국군은 방진화를 신고 다니던 모습은 자못 의미심장했다. 방진화 구매 및 보급도 엄연히 비용을 투자해 내놓은 전략일진대, 미군의 군화에 묻어 벙커로 들어올지도 모를 분진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한국군의 당시 전략이 '빠르지만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임기응변식 대응'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한국 사람들은 안전 관련 문제에 이전보다 확연히 민감해졌다. 그전까지 여러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배제되어 있던 안전 관련 현안에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작년 12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유감과 적극적 관심을 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해경의 늑장 대응을 비판하던 목소리는, 소방 인프라와 안일한 건물 설계 및 관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소방관들의 초동 대응에 대한 비판도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비판에는 저 나름의 뼈가 있기에, 단순화하여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따금 사람들이 사안에 대해 너무 쉽게 비판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그저 소방 인프라를 잘 정비하라거나, 건물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말은 내게는 방진화만큼이나 덧없이 들리는 까닭이다. 그것은 실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태함과 태만함을 적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던 이유를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인프라나 건물 관리가 왜 어설플 수밖에 없었는지를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특히 '소방관'과 같이 집단과 그 구성원 개개인이 혼재된 직업군에 대한 비난은, 비난의 '효과' 뿐 아니라 '온당성'마저 의심하게 된다. 개개인의 '미흡한 초동 대응' 등을 탓하기 전에 초동 대응이 미흡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한 번 더 짚어야 한다. 이러한 끊임없는 질문 덕택에, 이번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에서는 지방 소방처의 부족한 재원 및 소방관에 대한 열악한 처우뿐 아니라 불법 주정차 문제 등이 새롭게 화두가 될 수 있었다. 


 올해 1월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가 터지자 '환자 결박으로 인한 대피 지연'이 문제가 되었다. 이른바 '신체 보호대'로 인해 팔이 결박된 중환자 들에 관련된 논쟁이 생긴 것이다. 신체 보호대는 환자가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는 등의 위해 행동을 방지하기 위해 본인 혹은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사용할 수 있다. 시행 규칙 상 응급 상황에서도 쉽게 자를 수 있는 방법으로 결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방대원들이 끈을 푸는 데 30초 이상 걸릴 정도로 결박 강도가 과도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누구나 당연히 '비인간적이다'라고 판단될 이런 사안에 대해서도 '왜?'라는 질문을 세 번 이상은 해야 한다. 치매 환자를 비롯한 노인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낙상이다. 많은 병원에서 운영하는 그 '딱 맞는 수의 최소인원'으로는 많은 수의 환자를 관리하기 어렵다. 신체 보호대는 많은 노인 환자들을 적은 인원으로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처사였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건'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을 비극이지만, 일개 병원, 혹은 '간호사'라는 직업에게 인명 피해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그저 생각을 길게 하지 않은 비난이 비겁할 뿐임을 여실히 보여줄 뿐이다. 



 학창 시절 경영전략 수업 등에서 피상적으로 '3 Why' 따위에 대해 배웠지만, 나는 정말로 실생활에서 이런 습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단 당신이 전략 업무를 한다거나, 사업이나 정치를 하기에 필요하다거나 등의 그런 문제가 아니다. 당신의 소중한 비판이 보다 건설적으로 쓰이기 위해서 그러하다. 섣부른 비난에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러하다.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를 보다 확실하게 진단하고 대처하기 위해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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