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소리엘 May 16. 2018

엘리너와 올리버

소설 <이성과 감성>과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성과 감성, 대비되는 캐릭터

 매력적인 캐릭터 덕택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 사람마다 캐릭터에서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는 제각각이리라. 내 경우엔, 다양한 면모를 지닌 캐릭터에 쉽게 반하는 편이다. 이러한 '입체적인 캐릭터'의 면모를 작품 속에서 적절하게 선보이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캐릭터가 절대로 변화하지 않을 것만 같은 견고함이 선행되어야 한다. 영원히 변치 않을 것만 같던 완고한 어떤 축이, 계기를 통해 변모하며 발생하는 극적 카타르시스. 이러한 카타르시스를 위해서는 변화 이전의 캐릭터의 고유한 색깔이 독자들에게 충분히 설명되어야 한다. 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이성과 감성>은 그러한 측면에서, 두 명의 주인공이 지닌 특정한 캐릭터성을 바탕으로 작품에 몰입감을 배가시킨다. 


작중 두 명의 자매 '엘리너'와 '메리앤'은 작품의 제목마냥 각자 이성Sense과 감성Sensibility을 상징한다. (Sense와 Sensibility를 각각 이성과 감성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올바르고 도덕적인 판단을 중시하는 언니 엘리너와 감각적인 열정에 자신을 내던지는 동생 메리앤의 캐릭터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 대단히 인상적이다. 선명하게 대비되는 두 색이 마주할 때 그 경계면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제인 오스틴'은 한 지붕 아래에 사는 두 자매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며, 그들의 개성적인 색채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그들의 원래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면, 두 자매가 이별을 맞이하는 과정이야말로 그들이 어떻게 입체적으로 변모하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이별의 비보를 듣게 된 메리앤이 그 직후 큰 열병을 앓는 것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사랑이 아니면 숨도 쉬지 못할 것 같던 그녀의 행복한 모습은, 언니인 엘리너의 걱정 어린 시선을 거쳐 위태롭게 서술된다. 그녀의 원래 성정처럼 격정적인 열병을 앓은 후, 메리앤에게서 이전 같은 감적의 격동은 사라진다. 그녀는 보다 담대하고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마치 이러한 모습은 후에 그녀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브랜던 대령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불같은 연애를 끝마치고 자신과 주변을 돌볼 줄 아는 성숙한 그의 모습은, 마치 10년 후 미래의 메리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메리앤의 이러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작중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는 역시 엘리너이다. 시종일관 자신의 감정을 달래려 노력하는, 이 차분하고 확고한 여성은 21세기의 우리가 느끼기에 무척이나 고전적이다. 그의 자세를 통해 보이는 '이성'의 모습은 그저 냉철하다거나 계산적인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철저하면서 타인에게는 관대한, 남의 감정을 헤아려 자기 자신의 요동을 감출 줄 아는 그야말로 '고전적인 이성’의 표상인 것이다.


흡사 철인에 가까운 그의 모습에 숭고한 애정을 느끼던 독자들이라면, 실연이 찾아온 후 메리안의 힐난- 인간적이지 않다는 비난 -을 마주하며 무너지던 그의 요동침을 잊기 어려울 것이다. 그곳에는 특이한 종류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메리앤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위태롭던 엘리너가 일순간 스러지는 그 장면은 비극적이면서 애처롭지만, 일종의 안도감도 같이 제공한다. 무너지지 않고 계속해서 높아지기만 탑을 보던 불안감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엘리너는 무너진 후에야 오히려 후련하게 자신을 다잡을 수 있을 거라는 일종의 안도에서 였을까. 여하튼 이런 모순된 감정의 총체로써 말이다.


비등점 아래의 자신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탈리아에 방문하게 된 미국인 '올리버'는 '팔먼 가족'이 대접하는 첫 아침 식사에서 처음 접해본 유럽식 삶은 달걀 요리를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맛있게 먹는 것을 본 팔먼 교수가 더 먹을 것을 권유하자, 오히려 그는 권유를 단호히 물리치며 말한다. 


“저는 저를 잘 알아요. 하나를 더 먹으면 하나가 더 먹고 싶어 질 거예요. 그러다 보면 여러분들이 말릴 때까지 계속해서 먹고 말겠죠.”


어쩌면 영화 후반부에 등장할 올리버의 타오르는 사랑에 관한 복선이었을까. 내면에서 격정적으로 새어 나오는 감정을 비등점 아래로 애써 절제하던 올리버의 모습은, 소설에서 계속해서 서술되는 앨리너의 철인 같던 모습과 일견 닮았다. 


끝끝내 참지 못하고 정열적인 키스를 하게 되는 올리버의 모습처럼, 마지막에야 비로소 비통한 울음을 쏟아내던 엘리너와 그를 바라보던 메리앤의 장면만이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4월의 레슬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