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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Jun 04. 2018

시건방진 벌새의 도전

최연소 서울시장 후보 이야기

시건방진 벽보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퇴근 후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강남역에 가던 중에 서울시장 후보들을 홍보하는 여러 현수막을 마주했다. 여론조사 지지율만으로 판단하건대, 재미있는 드라마가 생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던 선거였다. 인상적인 현수막을 발견한 건 그때였다.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현수막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최연소 여성 후보, '신지예 후보'의 시장 당선은 요원해 보였지만 그것이 무어 대수랴. 지방선거 후보 출마를 포함한 군소 정당의 정치활동은 거대 정당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비단 당선 가능성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정치 활동도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후에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광장에 나오기엔 어려웠던 문장들이 선거 공보물에도 담아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에 순수하게 기뻐하며, 촬영한 현수막 사진을 친구에게 공유했다. 


하지만 웬걸. 오늘 저녁 뉴스를 통해 강남구 일대에서만 무려 20개가 넘는 곳에서 신 후보의 벽보가 훼손되거나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출마한 다른 10명의 후보들과 비교해도 독보적인 기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며칠 전의 성급한 기쁨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여당이나 거대 야당의 후보도 아닌, 군소 후보의 벽보를 구태여 훼손하려는 그 동인(動因)은 무엇이었을까. 누군가를 미워하기는 쉽지만 행동하기는 어렵다는 걸 상상해 본다면, 불법행위의 동인은 분명 강렬한 무언가 일 것이다. 물론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오늘 새벽 SNS에서 화제가 된 한 게시물이 그 답이었다. 해당 포스팅은 신 후보의 포스터를 '개시건방진 사진'이라 칭하며 '찢어 버리고 싶다'라고 표현했다. (개)시건방짐. 그것이 원인이었다.  



'감히'가 만드는 혐오의 문법

누군가에겐 멋지고 당당한 여성을 담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백번 양보해서, 불경한 캐치프레이즈 - 그들이 보기에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불경할지도 모르니까 -와 함께 당찬 표정을 짓는 젊은 여성의 사진은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안경을 쓰고 있다니!) 한껏 비아냥거리며 글을 쓰고 있지만, 두려운 점은 정말로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소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타 후보들에 비해 인지도가 딱히 높지도 않은 후보를 향해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선거 운동이 시작된 지 단 4일 만의 일이다.


각자의 호오를 차치하더라도, '시건방짐'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남다르다. 시건방짐은 필연적으로 '감히'의 문법을 소환한다. "감히 어디서! 고작 OO 주제에! 주제도 모르고!"와 같이 권력적 위계를 수반하는 문법 말이다. 박원순, 김문수, 안철수 후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있겠으나 그들에게 시건방지다는 말을 사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시건방지다는 말은 권력적으로 낮은 위치의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단어이다. 젊은 사람과 여성, 특히 당당한 여성들에게 말이다. 반사작용처럼 빠르게 분출된 불쾌감에 주목하자. 오랫동안 신 후보를 알고 싫어하던 이들이 저질렀다기에는 맥락도 약하고, 행동에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당당한 문구가 언짢았을 것이다. 주체적으로 보이는 어린 여성이 거슬렸을 것이다.


정치인의 미덕 혹은 존재 의의란 무엇일까. 나는 정치인이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경시하는, 음지에 버려진  부조리한 사안들을 조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공동체의 치부를 밀실에서 광장으로 끌어내어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이 있다. 말해질 필요를 판단하는 것이 권력이고, 말해질 기회를 차지하는 것이 권력이다.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과 거리가 먼 존재일수록 말해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말해지도록 길을 내는 언어가 절박하다. - 책 <웅크린 말들>, 이문영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어쩌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신 후보의 행보일지도 모르겠다. '명망 있는 후보들'간의 거대한 네거티브 공방이 벌써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신 후보의 시건방진 행보는 더욱 빛나 보인다. 그의 행보는 본질적으로 시건방짐을 불편해하는 '실로 오만한 이들'을 한 번 더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랫동안 기성세대 남성 권력이 주도적으로 자아낸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공백을 적나라하게 조명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벌새의 꿈

당연하게도,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녹색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신 후보의 선거 운동은 나의 기대보다 더욱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며 실패할지도 모른다. 비록 그렇더라도 녹색당과 신 후보의 도전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은 여성의 당찬 도전을 시건방지다고 조건반사처럼 외치는 낡은 시대가 잘못된 것이다.


그가 꿈꾸는 세상이 아직은 멀다고, 비현실적이라고, 그보다 우선에서 해결할 것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제시한 방향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이를 향해 '시건방지다'며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성질을 건드리는 단어가 있다고 해서 얕보며 벽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이런 당연한 상식을 어기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들을, 우리는신 후보의 행보 덕택에 이제야 새삼 마주하게 된다. 


영상 속 신 후보는 타인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관습이라고 칭하지 않는 서울을 말한다. 여성이 밤늦게 안전하게 귀가하고, 공공 화장실을 두려움 없이 갈 수 있는 서울을 꿈꾼다. 세입자가, 알바생이, 장애인이 동등한 이웃으로 지내는 서울을 부르짖는다. 


똑똑하다 자평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그렇게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른다.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상식을 입 밖으로 말하는 대신, 관성에 저항하며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덕택에 세상은 천천히 변화한다. 2년 전 신 후보가 말했던 말처럼, 벌새 같은 사람들이 모일 때 공동체는 변화할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

밀림에 큰 불이 나서 동물들이 달아나는 데 벌새 한 마리가 불을 끄려고 물을 머금고 오갔습니다. 코끼리가 물었답니다. 그 정도 물로 불을 끌 수 있겠어? 벌새가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벌새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국 사회를 바꿔나갈 때입니다. - 2016년, 신지예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발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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