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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Jul 09. 2018

이따금 글을 쓰기 무서울 때가 있다.

꾸준히 글을 쓴지 어느새 2년이 훌쩍 넘었다

쟁여둔 '글감들'을 바라보며,

돌이켜 보니 브런치에 꾸준하게 글을 쓴 지도 어느새 2년이 훌쩍 넘었다. 2016년 봄, '소소한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이래로 내 생각을 활자로 쉽게 정렬하는 방법을 익혔다. 지금껏 나는 내가 취미가 많은 사람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일천한 행동력 덕에 취미 다운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글쓰기는 취미이자, 위로이자, 스트레스 해소의 장이였다.


글쓰기 모임에서 서로 약속한 것은 '분기별 업로드할 글의 개수'가 전부였다. 보다 참신한 시도를 해볼까 고민한 적도 더러 있었지만, 우리는 결국 자유롭게 글을 쓰는 데 더 방점을 두기로 했다. 분기별 목표는 계속해서 늘어갔으되 글의 주제도, 내용도, 형식도 자유로웠기에 즐겁게 쓸 수 있었다. (후에 카테고라이징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이 생긴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글을 규칙적으로 쓰며 생긴 습관 중 하나는, (생소하거나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어딘가에 기록하는 것이다. 아직은 미처 영글지 않은 녀석들이 일상에 휘발되지 않도록 스마트폰 메모장에 끄적여 두는 것이다. 그렇게 묵혀둔 글감들은, 글을 쓰겠다며 노트북 앞에 앉는 주말이 되어서야 드디어 마주하게 된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쟁여둔 글감들을, 시간이 지난 후에 마주하면 대부분 민망할 때가 많다. 그러한 인식의 시차는 가끔 놀랍기까지 하다. 묵혀둔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 철이 들어버린 ‘현재의 나’는 '과거의 글감'을 향해 혀를 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의 풍화는, 보잘것없긴 해도 여러 측면에서 글감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고 나면 정말 소수의 소재만이 살아남아 살과 근육이 붙는다. 어떻게든 '그럴싸한 형태'의 글을 만드는 것이다.

 사색이 그 낚싯대를 강물 속에 드리웠습니다. 그것은 몇 분간 물 위에 비친 그림자와 수초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물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했지요. 마침내 (아시다시피 미약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지자) 낚싯줄 끝에 어떤 생각이 갑작스럽게 응결되었습니다. 그래 그것을 조심스레 잡아당겨 살짝 펼쳐 놓았지요. 아아, 풀밭 위에 내려놓자 나의 이 사고는 얼마나 작고 하찮게 보였는지요. 사려 깊은 어부라면 언젠가 살이 더 붙어 요리해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도록 다시 물속에 놓아줄 만한 정도의 물고기였습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슬럼프

슬럼프는 게으름과 무관하게 찾아온다. 예를 들자면, 2018년 2분기에는 7개의 글을 쓰겠다고 내 나름의 목표를 세웠다. 3개월이면 13주이니 2주에 글 하나 꼴로 쓸 수 있겠거니 계획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5월 중순부터 약 2주 동안은 쉴 새 없이 6개의 글을 써 내려갔지만, 나머지 11주 동안은 끙끙대며 겨우 1개의 글을 썼을 뿐이다. 매주 주말마다 꾸준히 키보드 앞에 앉았으니 나태가 원인은 아니었다. 글이 잘 써지는 주가 있던 반면, 어떤 주는 미친 듯이 글이 안 써졌을 따름이다.


무언가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어디에서 올까. 나의 경우엔, 대부분 나의 견해가 모호할 때 글로 써보고 싶어 진다. 모호함의 대상은 영화나 소설 같은 컨텐츠이기도 하고, 일상의 한 면모일 때도 있으며, 사회적인 이슈인 적도 있다. 중구난방하게 흩어진 머릿속 사료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싶을 때, 나는 글쓰기를 찾아 노트북 앞에 앉는다.


바꾸어 말하면 무언가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을 땐, 이미 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론 관심이 과해서 뉴스 기사나 관람평, 논문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컨텐츠를 마구잡이로 읽기도 한다. 그럴 때엔, 관심사에 대한 남의 컨텐츠를 꾸역꾸역 폭식한 채로 글을 쓰려 시도하는 내가 있다. 읽고 들은 내용들과 내 생각을 버무려 소화시키기 위해, 낑낑대며 말이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건 어찌 보면 자명하다. 사고의 흐름 속에 타인의 생각들로 가득하니 그러하다. 나도 모르게 그 던져진 생각을 그저 베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이미 잘 정리된 타인의 사고에 내 생각을 맞출까 하는 불안감. (이미 글을 써낸) 남들에 비해 정제되지 않은 내 글을 내놓는 무서움 등. 이러한 공포 때문에 글감을 개화시키지 못하고 사장시키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후회할 글을 많이 쓰자.

내가 쓴 글을 다시 한번 들추어서 읽어보면 늘 부끄럽기만 하다. 그렇더라도 후회를 하며 글을 쓰자고 다짐한다. 공교롭게도 2년 전에 브런치 아이디를 처음 만들며 프로필에 적은 글귀도 이와 같다. 글을 쓰며 타인의 생각을 가로챌까 두려워하는 나를, 나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아직은 생각에 줏대와 힘이 없는 '내 민낯'을 거울처럼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게 내가 앞으로 쓰려는 글에, 그리고 나의 글쓰기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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