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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Sep 16. 2018

늙은 노엘과 그의 팬

2018.08.16 Noel Gallagher 내한 공연 후기

3번째 공연

2018년 8월, 노엘 갤러거 Noel Gallagher의 내한 공연 소식을 듣자마자 이번에는 꼭 티켓팅을 해야겠다 다짐했다. 새삼 다짐까지 한 이유가 있었다. 3년 전, 그가 내한한다는 소식에도 '이젠 락 공연을 보기엔 늙었다'며 티켓팅을 하지 않고 후에 얼마나 후회했던가. 밴드 오아시스Oasis로 2번, 오아시스가 해체되고 자신만의 밴드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로 3번. 노엘은 도합 5번이나 한국에 방문했다. 나는 세 번째로 그를 만나러 갔다.


오아시스 해체 후 그가 처음으로 내한했던 6년 전 악스홀 공연이, 내겐 그를 마주한 가장 최근의 기억이다. 군대를 갓 제대하고 복학했던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열정적인 팬이었다. 훈련소 입소 전 날엔 A4 용지 세 장 양면에 빡빡하게 오아시스의 전 앨범 가사를 인쇄해 챙겨갈 정도였다. 꼬깃꼬깃 접어둔 종이를 군복 하의 건빵 주머니나 야상 안 주머니에 숨겨둔 채, 불침번을 설 때마다 가사를 읽으며 흥얼거리기도 했다.


이토록 오아시스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보컬 리암Liam의 청명한 목소리, 유려한 기타 리프, 서정적인 멜로디 등. 무언가에 마음이 기우는 이유야 사람마다 가지각색이겠지만, 나는 특히 노엘이 쓴 가사에 빠져 있었다. 웬만한 한국 노래 가사도 쉽게 잊어버리는 유명한 가사맹인 내게,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오아시스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건 자그마한 자랑거리였다. 그 가사에 적지 않은 위안을 얻었던 대학 시절부터 내 mp3 음악 리스트 한 켠엔 늘 노엘의 노래가 있었다. 


2009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2012년 악스홀 내한공연에서는 무대 앞 펜스를 붙잡은 채 그를 마주했었다. 나는 그만큼 젊었다. 온몸으로 노래가 주는 에너지를 받고 싶었나 보다. 어쩌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서 영국 아티스트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락덕들의 상징이 되어버린 '떼창'의 한가운데에 있다 보면 정작 방한한 아티스트의 목소리나 연주가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쩌면 팬들은 노엘의 음악을 듣기 위해 모인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저 서로가 들었던 음악에 취해, 한 데 모여 노래를 부르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나아가서, 그를 핑계 삼아 팬들이 모여서 노래 부르기 위해서 노엘의 내한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무척이나 노엘을 좋아했지만, 역설적으로 노엘의 노래를 생생히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 공연에서도 나는, 무의식 중에 노엘의 노래보다는 팬들의 그 에너지만을 기대하며 티켓팅을 시도했던 것 같다.  

2009년 지산 밸리 락 페스티벌(좌), 2012년 악스홀 내한공연(우)


양복을 입은 늙은 팬

과거에 열정과 대비되게도, 3년 전에는 내한 소식을 듣고도 티켓팅을 포기했었다. 그 후회를 발판 삼아 이번에는 티켓팅에 성공했지만, 고민 끝에 스탠딩을 포기하고 2층의 좌석을 예약했다. 마치 조용한 이소라 공연이라도 예약하듯 말이다. 과거의 나였으면 상상도 못 할 행동이었다. 


변명하자면, 30대에 접어든 나는 더 이상 학생도 열혈 락덕도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최신 앨범은 6년 전에 나온 싱글밴드 1집이었다. 6년 동안 노엘은 부지런하게도, 2개의 앨범을 더 낸 상태였다. 월드 투어 세트리스트 노래 제목 중 반 정도가 생경한 것에 경악하며, 나는 더 이상 노엘의 팬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옛 오아시스를 추억하는 볼품없는 늙은 팬. 


평소보다 조금 서둘러 퇴근하고 올림픽홀로 향했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 홀로 2열 좌석에 앉았다. 2009년 록 페스티벌에 오아시스가 왔을 때는 무더운 일요일이었지만, 양복 차림의 '어른' 팬들을 여럿 봤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아마도 일요일 근무를 마치고, 헤드라이너인 오아시를 보기 위해 경기도 지산까지 차를 타고 달렸으리라. 그들이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흥겹게 뛰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평일에 퇴근하고 심지어 서울에서 하는 공연에 다다른 나는,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잠시 눈을 붙였다. 부끄럽게도, 살짝 잠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조명이 꺼지고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자연스레 선잠에서 깼다. 팬들은 어둠 속에서 무대 위가 조금 일렁이기만 해도 환호를 연발했다. 몇 번의 환호와 그만큼의 실망이 자연스레 교차하던 어느 순간, 밝은 조명과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나의 오랜 영웅, 노엘 갤러거의 등장이었다. 앞선 두 번의 만남과는 다르게 그와 나 사이의 거리는 정말이지 너무도 멀었다.


늙은 노엘 갤러거

첫 곡을 부른 노엘은 연달아 일곱 곡을 쉼 없이 불렀다. 그중 오아시스의 노래는 하나도 없었고, 내가 알고 있는 노래는 많지 않았다. 그건 그의 공연에서 내가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었다. 드문드문 멜로디를 흥얼거리다 어느새 따라 부르기를 포기하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듣는 노엘의 목소리는 구슬프고 서정적이었다. 이 정도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아티스트라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Good Evening. Seoul.


곡과 곡 사이에 멘트 하나 없이 연주하던 노엘이, 드디어 인사를 건넸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아직 서울에 오아시스 팬이 남아 있는 것 같더라."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야 말았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일까, 나부터도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아서였을까. 분명 6년 전 기억에 비해 사람들의 호응이 조금은 줄어든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노엘도 나처럼 느끼고, 실망해서 저런 말을 한 건 아니었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 애써 믿어 본다. 그는 이제 호응의 수준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젊은이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만난다는 설렘에, 나는 그가 얼마나 늙었을지 가늠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주한 노엘은 무척이나 늙어 있었다. 

노엘의 첫 인사


첫 멘트 이후 'Little by Little'을 시작으로, 노엘은 점차 오아시스의 노래를 연주해 주었다. 이전까지의 관성으로 나는 더 이상 따라 부르지 않고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아까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노엘이 늙었다는 느낌을 여실히 받을 수 있었다. 세계를 씹어먹을 듯한 그만의 패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기대했던 거침없던 노엘 갤러거, 화끈한 공연, 그에 자극받고 싶던 나의 마음. 이런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오로지 서정적인 멜로디와 목소리만이 남았다. 


가장 인상적인 곡은 'Supersonic'이었다. 이번 월드 투어에서 세트리스트에도 들어가 있지 않던 곡이었고, 한국 팬을 위한 그만의 깜짝 선물이었다. Supersonic을 연주하자 여러 곳에서 저마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너무도 많이 들어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 위에 처음 느끼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노엘의 공연에서 위로받는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Supersonic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장으로, 스탠딩에서 좌석으로. 노엘의 무대와 나 사이의 거리는 우리가 늙어가는 만큼 멀어져만 갔다. 그 거리 때문이었을까, 혹은 더 이상 따라 부르지 않고 가만히 들어서였을까. 기대했던 패기와 열정, 에너지는 사라졌지만, 아름다운 멜로디와 목소리만으로 위안이 되는 공연이었다. 익숙한 노래와 그렇지 않은 곡들이 섞여 가며, 새삼 노엘이 얼마나 멋진 아티스트인지 알 수 있는 공연이었다. 그리고 오아시스의 가사를 되뇌며 새삼 추억할 수 있게 한 공연이었다.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행복했다. 


비틀즈의 노래로 마지막 앵콜 곡을 마치고, 어느새 공연이 끝나고 말았다. 노엘은 3년쯤 있다가 또 보자며 작별인사를 보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목소리도 쉬지 않은 채 집으로 가는 길. 늙은 아티스트의 늙은 팬은 그저 이 새로운 작별에 신기할 따름이었다. 



Set List

Fort Knox

Holy Mountain

Keep on Reaching

It's a Beautiful World

In the Heat of the Moment

If I Had a Gun...

Dream On

Little by Little (Oasis Cover)

If love Is the Law

Dead in the Water

Supersonic (Oasis Cover)

Be Careful What You Wifh For

She Taught Me How to Fly

Whatever (Oasis Cover)

Half the World Away (Oasis Cover)

Wonderwall (Oasis Cover)

AKA... What a Life!

- Encore :
The Right Stuff

Go Let It Out (Oasis Cover)

Don't Look Back in Anger (Oasis Cover)

All You Need Is Love (The Beatles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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