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소리엘 Jan 02. 2020

몇 가지 장면들로 회상하는 2019년

영화나 드라마, 유튜브와 글

벌써 작년이 되어버린, 2019년을 몇 가지 장면들로 돌아본다.


The Politician (드라마, Netflix)

미국 고등학교 학생 정치를 소재로 다루는 드라마, '더 폴리티션'은 2019년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석 같은 콘텐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인공 페이튼이 바에서 빌리 조엘의 노래를 연주하던 장면이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정치를 등졌을 때 그가 얼마나 풍부한 감정을 지녔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며 동시에, 너무도 맛깔나게 명곡을 소화하기에 그렇다.

광고 필터를 제거한 버전의 오피셜 영상이 없어 아쉽다



Chernobyl (드라마, Watcha Play)

HBO의 드라마 '체르노빌'은 2019년 한국 미드 팬들이 왓챠 플레이를 앞다투어 가입하게 된 최강의 콘텐츠가 아니었을까 싶다. 러시아 정부에서 이 드라마를 혹평했다는 후문이 있던데, 오히려 힘없는 소련의 일반인들이 얼마나 공동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고군분투했는지를 보여주는 '인간 찬가'에 가까운 작품이 아닌가 싶다.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은, 위험을 알고도 기꺼이 자원하는 소련 광부들의 모습이었다.

장관의 흰 옷에 묻히는 손자욱도 대단히 인상 깊은 연출이었다



왕따였던 어른들 (씨리얼 콘텐츠, Youtube)

남자 편, 여자 편, 학생들 편. 씨리얼에서 총 3편(*후에, 후기 영상이 하나 더 나왔다)으로 구성한 '왕따였던 어른들'은 나의 과거를 많이 돌아보게 한다.  만화 <여중생A>에서 느꼈던 그 먹먹함과 후회에 대해. 브런치에 공개적인 글을 유난히도 적게 썼던 2019년이었지만, 이 영상을 보고는 글을 하나 올리기도 했었다. 이후에 씨리얼 콘텐츠 관심을 더욱 쏟게 되었는데, 매번 좋은 문제 제기와 기획 덕에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받고 있다.

( 관련 글은 https://brunch.co.kr/@jongmulim/179 )

3가지 영상 중 남자반 영상을 가장 여러 번 보았다



Greta Thunberg at the Climate Action Summit 2019 (UN 오피셜, Youtube) 

버니 샌더스가 소위 '진짜배기'라는 말을 들었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메시지를 오랫동안 꾸준히 지니고 갈고닦았기 때문이었다. 툰베리도 마찬가지. 몇몇 비판적 미국 언론은 그가 대학 지원서에 적기 위한 쇼맨십 스펙을 원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지지 않던 영역에서 꾸준히 자기 목소리를 낸 툰베리는 많은 이들의 구심점이 되어 간다. 학생부 종합 전형의 여부로 아주 작은 영역의 공정성을 다투는 한국에서 바라보는 2019년의 영상 중 하나이다.

물론, 트럼프와 푸틴 등은 비아냥거리기 바빴다



블랙홀의 사진을 이해하는 법 (Veritasium, Youtube) 

2019년은, 유튜브를 지식의 창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몇몇 콘텐츠를 발견한 해이기도 했다. SF 콘텐츠를 그렇게도 좋아하면서 블랙홀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던 나였기에, 이러한 설명 콘텐츠는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완벽한 한글화(자막, 제목, 설명 등)도 인상적이었다. 

블랙홀의 사진이 발견된 해이기도 했지만, 영화 인터스텔라를 상상하며 이해했다



U2 : The Joshua Tree Tour 2019 (서울 공연, Youtube) 

락밴드 'U2'가 내한하기에 2019년 하반기는 이어폰에서 그들의 명곡만 수백 번 반복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마주한 그들은, 기대보다 훨씬 노회하고 장엄했으며 메시지를 적절히 다룰 줄 아는 레전드였다. 앙코르 공연 중 Ultraviolet (Light My Way)의 영상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아일랜드의 다 늙은 락 가수들에게 한국의 여성이 위로받을 수 있다니 말이다.

오피셜 영상이 없어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으로 대체한다



엑시트 (영화) 

2019년 최고의 영화를 뽑으라고 하면, 내겐 '엑시트'가 아니었을까. 힘든 순간마다 사람의 선한 면을 계속해서 조명해주는 이 영화는, 내게 보물과도 같았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여주인공 의주가 첫 헬기에 타지 못하고 조용히 울던 장면'과 '겨우 포착한 두 번째 헬기를 학원의 어린 학생들에게 양보하던 주인공 둘의 모습'이었다. 내가 영화 '조커'의 서사를 싫어하는 만큼이나, '엑시트'의 서사는 아름다워 보였다. 유일하게 두 번 본 영화.

의주를 용남의 예비 며느리로 그려지지 않도록, 엔딩에서 용남의 가족과 의주의 씬을 분리했다는 감독의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적어도 내겐, 2019년의 드라마가 아니라 인생 드라마 순위권에서 겨룰 작품이 아니었을까. 너무 사랑하는 장면들이 많아서 전체 장면을 모두 머리에 집어넣고 싶지만, 특히나 '옹벤져스'로 대표되는 옹산의 여성 조연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그저 너무도 좋았다. 특히 2019년에 읽은 협력과 민주주의에 관한 대다수의 책들은, 마을 단위의 소규모 협력이 결과적으로 거시적인 연대를 어렵게 만드는 아이러니에 대해 설명하곤 했다. 옹산의 주민들은 외지인들에게 배타적이고, 내부적으로도 수많은 따돌림과 편견에 따른 품평을 하는 현실 속 존재들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의 서사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나아가 극복하는 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조커'가 억눌리고 차별받은 자들의 분노를 긍정한다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그런 '까불이'들의 성토를 다시 한번 부정하고 바로잡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2019년 최고의 작품.

옹벤져스 사진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다



20대 남자 현상 기획 (천관율 기자, 기사, 시사IN)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20대 남자 현상 기획'은 2019년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데이터와 해석이었다. 특히 본문 중 사용된 '맥락이 납작해진 공정' 혹은 '맥락을 제거한 공정'이라는 표현이 뇌리에 남는다. 우리가 그토록 울부짖던 공정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까지 더듬이를 뻗어야 하는 것이었을까. 이리도 어려운 개념에 대해 한 두 번의 고민도 없이 일상적으로 말을 뱉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기사 링크를 찾고 싶었으나, 책으로 출간되며 온라인 기사 링크가 막힌 것이 아닌가 싶다
기사 링크가 소실되어 취재기 영상을 붙여본다 (이 글을 쓰며 처음 본 영상)



속물들 (3집, 브로콜리너마저)

브로콜리너마저의 3집이 나온 해이기도 했다. 무려 9년 만에 정규 앨범으로 돌아온 그들이기에, 반가우면서 약간의 낯섦이 있기는 했다. 적당히 속물스러워졌지만, 여전히 서투른 30대의 그들이 왠지 나를 닮은 것 같아 억지로 음악에 나를 투사해보기도 했다. 감사한 앨범 ( 감상글은 https://brunch.co.kr/@jongmulim/194 )

4집은 40대에나 나올까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조 시위

2019년 가장 아연했던 장면 아니었을까. 고민하다 모자이크 된 사진만을 올린다. 40년 전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앞서 나갔는가. 비슷한 시기, 제1 야당의 삭발시위가 뉴스의 대다수를 점유하던 시절, 두 장면을 겹쳐 보며 얼마나 아연했던가 돌이켜본다.

그들은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 박완서, <도둑맞은 가난> (1975)



그 외의 글과 책들

그 외에도 2019년 한 해동안 용기를 주는, 반성하게 하는, 시야를 더 넓히게 돕는 글들이 여럿 있었다. 연재 글로서 읽는 대부분의 글은 한겨레신문이었는데, 김원영 변호사의 [야!한국사회]와 이라영 연구자의 [공감세상], 그리고 김영민 교수의 [논어 에세이]는 닳아 없어질 정도로 읽지 않았나 싶다. 


페이스북 역시 타인의 글을 읽는 데 주로 사용했는데, 특히 정지우 작가님의 글은 따스하면서 유려해서 곱씹어 읽게 된다. 그중 가장 좋았던 전체 공개 글을 하나 퍼 온다.

https://www.facebook.com/writerjiwoo/posts/2197922300456931


그리고 그 외에 좋았던, 다시 읽는 글들.




그리고, 홀로 여러 번 본 보았던 영상들

스마트폰 유튜브 앱으로 조회해보니, 여러 번 본 영상들 중 예전 영상이 몇 개 있다.

막막함과 후회,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섞인 채 보던 영상들이다.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고 했다
그리고 2019년의 나는 무엇을 했는가





아이언맨이 발표하는, 블레이드 러너 시대

이 시대의 아이언맨, 엘런 머스크의 사이버트럭 발표로 글을 마무리한다. 2020년이 온다는 충격을, 가장 시각적으로 보여준 상품은 역시 테슬라의 '사이버트럭'이었으니까. 새 시대를 살 준비가 되어있는지, 나는.

창문에 금은 가지만 미래는 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 아침부터 퇴사를 외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