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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May 21. 2017

'개혁의 낙수효과'에 대한 태클

<양손잡이 민주주의>를 읽고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동아시아 3국(한국, 일본, 중국)은 나라를 같은 방식으로 표기한다. '나라 국(國)'과 '집 가(家)'를 조합한 국가(國家)가 바로 그것이다. 용어를 통해 추측해보건대, 어쩌면 우리는 국가를 '가족'이라는 단위가 거대하게 확장된 개념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자주 사용되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옛 성어부터, 국가대표 선수나 국가적 재앙을 당한 희생자들을 '대한민국의 아들딸'로 표현하는 것까지. 이러한 추측을 할 만한 예시는 수없이 많다.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가족으로 여긴다는 가정이 올바르다면, 우리는 국민 개개인을 가족의 일원으로 사고한다고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국의 번영과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 '올바른 가장'의 리더십 아래서 일치단결해야 하는 그러한 일원 말이다. 이러한 '가부장적 국가주의'는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과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동아시아 3국은 이러한 기초 아래서 빠른 경제적 성장을 이루는 데 성공한다. 한 발 먼저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일본과,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가 되어버린 중국이 바로 그 예이다.

  한국은? '구국의 영웅,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성과인 '한강의 기적', 그리고 '낙수효과'의 신화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강의 기적'


 '박정희 패러다임'은 오랜 세월 동안 한반도에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가장 높은 어른인 가장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또 다른 나라의 어른들인 관료 엘리트, 재벌 대기업들과 밀실에서 공동체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올바른 결정에 따른 결과물은 '낙수효과'에 따라 국민들에게 전달된다. 나라의 큰 어른들이 고심한 '구국의 결정'에 대한 악의적인 의심은, 국론 분열을 자아낼 우려가 있기에 통제해야 한다. 책 <양손잡이 민주주의>는 이러한 '박정희 패러다임'이 그에 지친 시민들의 힘에 의해 기적처럼 금이 갔다고 서술한다.

유시민 "국민들 사이에 어떤 문제를 두고 의견이 (때로는) 격렬하게 갈라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국론분열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순간 문제를 처리할 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치적 경제적 낙수효과에 만족할 수 없었던 시민들은 지난 겨울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었다. 그것은 올바르게 작동하는 대의민주주의와 약자까지도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에 대한 갈망이었을 것이다. 국민 개개인이 동등한 주권자로서 사회적 문제 해결에 동참하겠다는 강한 의지였을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목마름은 사람들이 '노무현 정신'을 찾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다르게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중시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은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이었다. 이에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그의 친구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근무했던 법무법인 부산 옛 건물 간판

 JTBC TV 토론회(`17.4.25)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시 대통령 후보)은 '동성애에 반대한다'라고 말해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어쩌면 단순한 말실수에 불과할지도 모를 해프닝이 큰 파장을 일으켰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문재인 후보가 TV 토론회 이전부터 성소수자에 관련하여 논쟁이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TV 토론회가 있기 두 달 전,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포럼(`17.2/16)'에서 문재인 후보의 기조연설 도중, 성소수자 단체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소리치는 장면 (해당 링크를 아래에 첨부한다.)이 있었다.

 해당 단체의 한 사람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의견을 묻자, 그는 '연설 중이니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리겠다'라고 답했다. 장내의 청중들 중 일부는 '나중에, 나중에'를 연호하며 박수를 쳤다. 이 소식이 영상과 함께 퍼지자 인터넷에서는 많은 논쟁이 있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나중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과, 기조 연설 후 발언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를 과도하게 해석한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당시 포럼에 있던 청중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문재인 대선후보의 기조연설은 그동안 수많은 여성인권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였다. 유력한 대권후보(당시 대선후보 1위)가 자신을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고 선언한 상징적인 자리였고, 그런 역사적인 기조연설에서 발언권을 얻지 못한 단체가 소리치는 것은 사회적 상규에 어긋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혹여나 하는 의심과 두려움을 지우기 어려웠다


`17.2.16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7차 포럼-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 기조연설


 어쩌면 우리는 이전보다 '훌륭한 가장'을 뽑은 것에 만족한 것은 아닐까. 그 가장이 사회적 적폐 및 부패에 대한 개혁의지가 충만한 올바른 사람이기에, 우리는 그를 믿기만 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개혁을 행하는 우선순위에 있어서는, 그러한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믿고 맡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세월호 유가족이나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향한 그의 행보는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낼 만한 일이었다. 지난주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준 연설과 행동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 이전의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면서도, 그 이틀 전인 5월 16일 '성소수자 A대위'가 군형법에 의해 2년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 못내 가슴에 아린 것은 왜일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우상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을 낳았다고 여기는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사람들의 우상화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개혁적인 정부가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수많은 개혁을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그 정부의 뛰어남 때문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여 이뤄내기를 바란다. 단순히 대통령 한 명 혹은 정권의 '기적'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뤄낸 성취이길 바란다. 또한, 공동체의 전반적인 '개혁'이 앞서 나간다면, 개개인이 받는 혜택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어지길 바란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거나 '나중에'라고 말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단호히 그것을 '개혁의 낙수효과'라고 주장하겠다.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2015)> 中 '임모탄'이 군중들에게 물을 베푸는 장면

 '개혁'이나 '인권', 더 나아가 '올바름'이 낙수효과처럼 내려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무리 달콤한 것일지언정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애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일이라 여길지라도 깨어있기 위해 애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난겨울 간절히 바라던 '모둠살이'에 대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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