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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Mar 11. 2016

울림이 좋은 글귀들..

.. 을 쓰는 네 명의 작가들, 그리고 팬심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묵은 겨울이 내려앉고 초목이 싹튼다는 경칩. 계절의 경계에 왔음을 알리듯 소중한 주말은 봄비가 한가득이다. 새로운 다짐을 하기에 좋은 날이기에 - 새해를 맞은 1월에도, 설날을 지샌 2월에도 추우면 몸도 마음도 움츠려 들기 마련이다.- 3월에서야 올해의 목표들을 하나씩 나열해 본다.


 그중에 하나는 여기, 브런치에 꾸역꾸역 글을 써넣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내 생각과 감정을 문장으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보다 높은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내 안에 있는 언어로 정확히 표현할 수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책을 읽다 보면, 언어를 가지고 놀듯 문장을 내뱉는 작가들이 있다. 나도 경험했지만 문장화하지 못해 휘발되어버린 감정, 생각, 그리고 주변 상황들. 대가라 불리는 작가들은 이러한 휘발성이 강한 요소들을 문장으로 녹여 책 속에 담아내는 장인들이다. 그 장인들 중에서 내 심신이 피폐해질 때마다 찾는 단골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무라카미 하루키

 꽤나 익숙한 이름이 아닐까. 고등학교 때 처음 접한 하루키는 지금까지도 내겐 오묘하고 신선한 형과 같다. 가장 처음 하루키를 만났던 작품은, 그리고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노르웨이의 숲' (한국 한정, 상실의 시대라는 부제가 있다)이다. 하루키의 글인 -비록 상징이 범인의 범주를 벗어나는 경우는 많지만 - 문장만큼은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서사가 요동치는 시점에도 시종일관 잔잔한 물결 같은 문장이다. 마치 귀에 거슬리지 않게-하지만 리듬감이 느껴지는- 더블베이스 소리 같은 문장들. 그 잔잔한 변주감에 이끌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낡은 재즈바의 주인장 하루키가 있다.


난 네 말투, 진짜 좋아. 벽에다 흙을 깨끗하게 바르는 것 같은 느낌이야.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일본어 문장을 번역해서 읽는데, 리듬감이 느껴진다고 하면 지나친 팬심일까. 어렵지 않은 문장과 그 위에 빼곡히 상징으로 덧칠한 서사는 독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화려한 문양이 없는 깨끗한 흙벽이랄까.


 내가 이런 글을 쓰기 시작한 본래의 목적은, 한편으로는 외국에 있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둔화될 것 같은 내 의식을 일정한 문장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붙잡아 놓는 데 있었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자기 눈으로 본 것처럼 쓴다, 이것이 기본적인 자세이다. 자신이 느낀 것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안이한 감동이나 일반화된 논점에서 벗어나, 되도록 간단하고 사실적으로 쓸 것. 다양하게 변해 가는 정경情景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든 계속 상대화할 것.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먹은 대로 잘 써질 수도 있고 잘 안 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작업을 자기 존재의 수준기水俊器로 사용하는 것이며 또한 계속 그렇게 사용해 나가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그리고 고백하자면, 이렇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하루키의 영향이다. 나만의 수준기를 만드는 것.



2. 필립 로스

 팬심에 겨워 사진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어쩜 이렇게 본인 문장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까. 필립 로스이다.

 정감 있어 보이지만 속속들이 세상에 대해 자기 의견을 털어놓을 것 같은 동네 아저씨 상. 하지만 조금만 독해지면 무서울 것 같은 깐깐한 아랫집 아저씨 상. 나는 필립 로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이 사람이 무섭다. 얼마나 내 아픈 부분을 후벼 팔까 하고 말이다.


(글을 쓸 때 '즐겨 있는 독자들'을 염두에 두느냐는 질문에.)
아니요. 대신 종종 저를 싫어하는 독자를 염두에 둡니다. '그가 이 작품을 얼마나 싫어하려나!'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제게 필요한 자극입니다. - <작가란 무엇인가> 中 필립 로스 인터뷰 발췌


 흡사 정신병자처럼 몰아치는 속사포 같은 문장들. 끊이지 않는 독설 같지 않은 독설들. 리듬감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잔잔한 하루키와는 정 반대의 느낌인 게, 마치 쉼 없이 몰아치며 크레셴도만이 가득한-끝나지 않고 점점 음악적 오르가즘이 극대화되는- 일렉트로닉 음악과도 같다. 장문과 단문으로 빈틈없이 꽉꽉 채워 넣은 그만의 고집스러움. 건조하고 차가운 설명문과 그 사이 정말 간혹 날개 돋친 듯 튀어 오르는 탐미적인 찬사. 사람이 가지는 모순의 진폭-현실과 욕망, 진실과 거짓, 자아와 타인, 소통과 고독-을 극한까지 보여주는 작가.


거짓말은 정말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값싸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야. 다른 사람이 불완전한 정보에 따라 행동하는 걸 지켜보는 거야. 다른 사람이 수모를 겪는 걸 지켜보는 거라고. 거짓말은 아주 흔하지만, 당하는 쪽이 되어보면,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거야. 당신 같은 거짓말쟁이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은 수모를 겪게 돼. 그러다 보면 마침내 당신도 그 사람들을 전보다 하찮게 여길 수밖에 없어. 안 그래? 당신처럼 능숙하고 집요하고 사악한 거짓말쟁이들은 언젠가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심각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 상대한테 그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 필립 로스, <에브리맨>


3. 밀란 쿤데라

 리듬감 넘치는 재즈와, 극단으로 몰아치는 일렉트로닉과는 또 다른 울림이 있는 작가가 있다. 밀란 쿤데라는 원체 제멋대로인 작가들 중에서도, 특히나 고고함이 돋보이는 작가다. 세세한 표현은 여백에 대한 모욕이라도 되는 냥, 단출하고 장엄하게 맥을 짚듯 문장을 쓴다.  툭-툭. 무용수의 몸짓 하나하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듯,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정말 어렵게도 쓴다.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큰 오케스트라 홀에서 악기 하나만 연주하여 홀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다. 가끔 그 연주는 홀로 미친듯한 불협화음을 낸다. 전부 다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는 듯이. 사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무의미하게 작동한다. 그들은 인과관계에도, 균형감각에도 크게 관심 없다는 듯 제 멋대로 뛰논다. 처음 몇 번은 그들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그 탐정놀이에 매몰되고 말았다. 이제는 쿤데라를 읽는 나만의 즐거운 방법을 찾은 듯하다. 순간순간의 표현들을 탐닉한다. 섬뜩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녀는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장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갔으며 수영교사를 4,5 미터쯤 지나쳐 갔을 때, 문득 그녀가 그에게로 머리를 돌려 미소 띤 얼굴로 손짓을 했다. 나는 심장이 졸아들었다. 그 미소, 그 손짓은 바로 스무 살 아가씨의 것이 아닌가! 그녀의 손은 눈부시도록 가볍게 날아올랐다. 마치 장난으로 울긋불긋한 풍선을 연인에게 날려 보내기라도 하는 듯이. (중략) 그 부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그 순간만은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어떤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우리의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 밀란 쿤데라, <불멸>


누구나 겪었을 매혹의 순간을 표현하는 그의 문장을 감상해보자. 만찬을 즐기듯.


4. 니코스 카잔차키스

 마지막으로 소개할 이 기인은, 문장의 울림만으로 나를 뒤흔들 수 있는 작가다. 사람마다 취향의 차이를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대학시절 나와 가장 공명이 되며 전율시킨 것은 이 거장의 글귀였다. 사실 고백하자면, 많은 책을 읽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책 속의 주인공(화자)은 조르바를 만나며, 경탄하고 주저하고 선망하다 결국엔 조르바 같은 삶에 엄청난 갈등을 느낀다. 세상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곤 오로지 '언어' 뿐인 주인공에게 조르바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뭍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걷는 것. 그러다 문득, 기적이 일어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동화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오로지 표현의 질료라고는 언어밖에 없는 화자의 좌절이 구구절절 서술되는 글귀들에서 이리도 아름다운 아쉬움들이 진하게 묻어나는지. 언어로 후회하는 화자의 문장은 이리도 매력적인지.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마치 에게해를 내 눈으로 직접 봐야 할 것만 같은 진한 감정이 묻어나고야 만다. 팬심 가득한 글쓰기다. 나참.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영원한 나신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마치며

그리고, 그리고.

 세상 만물에 대해 대수롭지 않은 시선으로, 맛깔나게 문장을 만들어내는 - 내가 아는 재료들만 가지고도- 알랭 드 보통, 흑백 풍경사진 장면 장면마다 숨죽여 빛을 불어넣는 오르한 파묵, 숨결까지 턱턱 막힐듯한 답답한 세계를 구축하고는 독자들이 답답함에 익숙해질 때쯤 무게를 더 높이려 하는 프란츠 카프카, 장엄한 비극을 쓰기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알레이 드 호세이니, 인간이 갈등하는 순간을 쉴 새 없이 포착해내는 줌파 라히리, 매혹이라는 일상적인 감정을 광기로 점철시키는데 탁월한 파트리크 쥐스킨트...

 사실은 넘치듯 작가들이 많다. 다 쓰지 못한 이유는 여백과 노력의 부족이라고 변명하자.

 책 읽고 싶어 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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