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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Sep 09. 2017

마음의 피로파괴

작은 스트레스로도 언제든 균열은 생길 수 있다

 유달리 큰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걸 계기로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평소라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누군가의 지나가는 한 마디, 살짝 엇갈린 일정, 어쩌다 마주하게 된 누군가의 표정, 더럽게 꼬인 여느 하루의 일진까지. 술잔을 넘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처럼 그 작은 계기는 마음속 수많은 둑 중 하나를 무너뜨리곤 한다. 그럴 때는 자기 자신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벅차오르는 감정에 허덕이게 된다. 원래부터 그러했으리라. 다만 서른이 되고 사회생활의 경험이 쌓이면서 더욱 잦아지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공학 용어 중에는 '피로 파괴'라는 용어가 있다. 모든 재료는 특정 크기 이하의 힘*을 견디고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보통은 재료의 한계 수준보다 작은 힘으로는 재료가 파괴되지 않는다. 다만 작은 힘이더라도 반복적으로 가해지면 재료가 파괴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러한 현상을 '피로파괴'라고 부른다. 피로파괴는 성수대교를 비롯한 무수한 건축물, 비행기, 배, 기계제품 등을 파손시키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구리선을 한 번에 손으로 끊기는 어렵지만, 위아래로 반복하여 휘다 보면 쉽게 끊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이러한 힘을 재료의 최대 하중이라고 하며, 최대 하중을 단면적으로 나눈 인장강도는 재료별로 상이하다.


 

 마음도 재료의 일종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외부의 다양한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자 노력한다. 큰 굴곡이나 비틀림이 생기지 않도록, 나아가 마주하게 될 자잘한 상처들로 말미암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항상 버팀목이 될 만한 단단한 마음을 추구한다. 보다 큰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명상이나 운동을 하고, 건강한 관계를 구축하며, 성공의 경험을 축적하거나, 종교를 통해 믿음을 공고히 하기도 한다. 


 실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열의 위험이 늘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하게 단련된 마음도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한 작은 스트레스들은 그들만이 지니는 특유의 유비쿼터스함으로 전방위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압박한다. 현대인은 다른 현대인이 존재하는 어느 곳에서나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관계는 긴장을 수반하고, 긴장은 누적되어 마음을 약화시킨다. 피로파괴로 인한 균열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순간, 우리는 아무런 대비도 못한 채 자아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로파괴의 무서운 점은 파괴 직전까지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초기 균열이 내부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잦아 손상이 커질 때까지 알아차리는 것이 늦는 것 또한 두려운 점이다. 어떤 이가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으로 큰 외상을 당하는 경우는, 매우 불행한 사건이지만 그것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다소 쉬울 수 있다. 그와 반대로, 피로가 만들어내는 파괴는 중요한 마음의 축 한 두 개가 무너지고 나서야 상처를 깨닫게 된다.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마음의 균형이 꽤나 무너진 후가 대부분인 것이다. 우리는 그제야 자신의 기억을 최근부터 역순으로 더듬어 가지만, 그다지 고통의 원인이랄 만한 큰 사건이 없다는 사실에 당황하게 된다. 설마 내가 이런 사소하고 유치한 스트레스에 무너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고를 부정적으로 하다 보면 이 정도 사소한 일로 마음을 다친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기존보다 더욱 강한 재료를 덧대는 것이다. 한껏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복원키 위해 사람은 종종 더 강한 마음에 기대곤 한다. 강한 마음은 나보다 자기애가 더 강한 지인일 수도 있고, 과거 위인의 일대기일 수도 있다. 문장의 형태만을 띠기에 약해질 수 없는 동서고금의 명언이나 금언, 경전들 또한 그러하다. 나아가 돈, 도덕, 관습 역시 많은 이들의 공고한 믿음을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기에, 개인의 마음보다 훨씬 강하다. 이러한 것들에 몰입하면서 우리는 손상된 부위에 강력한 부목을 덧댈 수 있다. 솜씨가 좋다면 큰 동공 몇 개를 얼추 기울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방식은 이미 누적된 피로를 제거하고 강도를 복원하기 위해 재료의 배열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초기와 같은 배열을 만들기 위해서는 높은 열과 함께 지난한 재가공의 과정이 필요하다. 칼을 예로 든다면, 다시 벼리는 과정이 이와 같을 것이다. 리프레쉬를 위한 며칠의 휴가만으로 갈래갈래 나뉜 마음의 사금파리를 조각 모음하기는 쉽지 않다. 조금씩 비틀리고 마모된 마음을 모루에 오롯이 올릴만한 배짱과 이를 녹여낼 충분한 마음의 열(熱)이 필요하다. 최종적으로는 직면한 마음을 향해 세찬 망치질을 할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 후에야 우리는 다시 한번 이전의 강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덧대거나 새로 벼린 마음마저 지속적인 스트레스의 공세 앞에서는 파괴된다. 피로라는 건 늘 그렇게 별 수 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후에 마음의 비명을 다시 듣게 되는 그 순간, 마음 구석진 곳에 방치되어 있던 먼지 쌓인 용기를 다시 한번 사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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