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육헌 Sep 03. 2017

모닝글로리 볶음은 원래 짜다

소비자는 갑질을 그만 멈췄으면, 생산자에게는 이제 원칙이 있었으면



어제 점심에 강남역에 있는 '에머이'라는 베트남 음식점에 갔었다. 양지 쌀국수와 분짜를 시켜다 놓고 푸짐한 점심식사를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컴플레인하는 내용이 귀에 꽂혀 들어왔다. 모닝글로리 볶음이라는 메뉴가 너무 짜다며 종업원을 불러다 새로 조리해달라고 한 것. 한국어가 어눌해 보이는 종업원은 말없이 음식을 가지고 주방으로 돌아섰고, 이내 새롭게 볶온 음식을 내었다.


그렇게 상황이 종결되기는 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며 든 꺼림칙함이 가시질 않았다. 음식에서 비위생적인 물질이 나왔다거나, 조리 상태가 부족했다면 모를까. 단지 음식이 내 입맛에 짜다는 이유로 다시 주방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마 해당 손님이 짠맛에 더 예민했을 수도 있고, 또는 정말로 음식의 간이 과히 짜게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자였다면 주문 전에 짠맛에 예민하니 음식이 얼마나 짠지 미리 확인하는 게 순서다. 후자라면 뭐 공깃밥이나 하나 더 시켜서 곁들여 먹으면 될 일이고, 그게 싫으면 그냥 에이 이번 주문은 실패네 다음에는 시키지 말아야지, 정도 생각하고 말면 되겠다. 내게는, 별 고민 없이 이거 너무 짜니 새 걸로 내어달라고 하는 고객이나 군말 없이 이를 가지고 들어가는 종업원이나 참 신기해 보였던 이유였다. 내 입맛에 짜다는 이유로 음식을 새로 조리시켜 내어오게 할 수 있다면, 반대로 내 입맛에 달아서, 색깔이 맘에 안 들어서, 냄새가 별로여서, 음식을 돌려보낼 수도 있는 것일까.


돈을 내고 제품/서비스를 제공받는 계약관계지만, 그 속에서도 모호한 영역들은 분명 있을 테다. 아직 돈을 내기 전이고 그 모호한 영역들이 내게는 중요하게 생각되는 영역이라면 그 부분을 확인하는 게 먼저겠다. 그러나 비용 지불 이후에 내가 미리 확인하지 않은 모호한 영역에서 이슈가 발생하고 분쟁이 일어난다면, 이를 명확하게 알리지 않은 생산자의 책임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책임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놈의 본전 생각은 내려놓자. 우리는 내 의사결정이 때로는 실패할 수도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알량한 몇 푼 돈 내어놓고는 소비자-나의 정체성에 스스로 도취되어 행하는 갑질은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충분한 사전 정보 전달 또한 중요하긴 하겠다만, 하지만 소비자의 오만가지 개인적 취향에 대해 일일이 미리 설명해줄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생산자 된 입장이라면, 소비자의 단짠단짠 타령에 일일이 휘둘리기보다는 단호하게 이 제품/서비스는 원래 이런 것입니다 하고 얘기할 수 있는 대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모닝글로리 볶음은 밥과 같이 곁들여 먹는 반찬이라 조금 짜게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동네와 나의 민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