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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Aug 29. 2017

동네와 나의 민낯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잉여로운 칩거생활

 올해 여름휴가에는 여행을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매년 여름(7,8월) 중 5일 동안 여름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사원들부터 부장들까지 다들 짐을 싸고 동행을 구해서 국내나 해외의 여행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시즌이다. 덕택에 매해 여름이면 SNS 타임라인에는 전 세계에서 온 사진들로 가득 차곤 한다. 나도 신입사원 때는 미국 서부 종단 여행, 둘째 해에는 중국 원난-쓰촨 성을 여행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취업한 지 3년째 되어 사춘기 아닌 사춘기를 겪는 올해는, 금쪽같은 여름휴가를 집에서 뒹굴거리는 데 사용하기로 선언한 것이다. 


 여행을 가지 않기로 한 데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행을 통해 얻는 가치가 줄어든 것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역치가 높아진 것이다. 돈도 돈이겠거니와, 기나긴 이동시간, 북적북적한 공항, 휴가를 쓰기 위해 야근을 해온 몇 주간 누적된 피로 등 견디기 어려운 것들을 양껏 싸맨 채 부랴부랴 -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 여행지로 향하는 나 자신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여행지에서도 나는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분주하다는 감각에 취하는 사람. 분주함을 성실함과 열정으로 포장한 채, 회사 업무와 개인의 취미를 효율적으로 쌓아가는데 골몰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그 분주함의 타깃이 휴식의 범주까지 침투한 것이다. 더 멋진 뷰에서의 식사, 더 머나먼 곳으로의 여행,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스트레스 풀이, 그리고 SNS를 통한 자랑 등. 주어진 휴식시간을 알차게 쉬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기왕 쓴 시간과 돈의 효과를 효과적으로 누려야 한다는 강박감이 뒤섞인, 여행(旅行, 나그네의 발걸음) 아닌 여행.


 그래서 1주간의 칩거생활을 선언했다. 예전부터 배우고 싶던 집안 요리를 어머니께 배우고, 여름내 묵은 방의 청소를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로. 일상(日常)을 통해서 내 리듬을 찾겠다는 나름의 건방진 목표를 세운 것이다.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하자마자, 단번에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회비용'이라는 단어는 어쩜 그리도 얄밉게 머릿속을 헤집던지. 5일이나 되는 휴일을 왜 집에서 허비하는지, 한시라도 젊을 때 밖으로 나가 더 보고 즐겨야 한다던지 등등. 생각은 늘 습관적으로 작동한다. 조금이라도 평소와 다른 결정을 하면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상을 목표로 잡았지만, 사실 내 진정한 일상과는 거리가 먼 결정이었으리라.


 월요일 아침, 책 한 권과 노트북 하나를 끼고 동네의 카페로 향한다. 동네에 이사온지 몇 년은 되었을 진데, 주말이 아닌 오전의 동네의 정경은 너무도 생경하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간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야 동네에 들어왔던 것이다. 주말이면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집에서 쉬거나 약속을 위해 멀리 나가야만 했다. 늘 둥지를 드나드는 바쁜 사람들만 가득한 동네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휴가 때 처음으로 마주한 동네의 민낯은 꽤나 인상 깊었다. 아이들과 노인들이 동네에 얼마나 많았는지, 공원과 놀이터에서 쉬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지, 마을회관과 스포츠센터가 이렇게나 활기찬 곳인지, 환경미화원부터 집배원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네를 누비는지. 


장기하와 얼굴들 - 느리게 걷자


 민낯을 마주하는 건 동네뿐이 아니었다. 나 자신의 민낯을 처음 마주하게 된 건 헬스장이었다. 평소엔 야근하고 헐레벌떡 도착해서 얼마 남지 않은 영업 종료시간까지 애써 들고 당기고 뛰곤 했다. 오전에 시간을 들여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고, 이어폰에 의지하지 않은 채 힘을 쓰고 달려본다. 내 안에 생각보다 많은 잡념과 걱정으로 가득한 것에 내심 놀라게 된다. 평소에는 급하게 흡수해놓곤 미쳐 소화시킬 시간이 없던 생각의 파편들. 나중에 소화시키겠다며 쟁여놓은 그것들은 사고의 군살이 되어 습관 옆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진득하니 나 자신을 쳐다보지 않아서 놓쳐왔을 뿐.

 보고 싶었던 영화, 갑자기 가보고 싶어 향한 박물관, 스스로 내려 마시는 커피, 잘 갈무리된 이부자리에서 자는 낮잠 등. 자신과 함께하는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여러 각도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군살에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한상복

휴가 첫날 읽기 위해 옆구리에 끼고 다닌 책은 외로움에 관련된 책이었다. 우리는 왜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할까. 사람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에서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외로움은 그 연결고리와 동떨어진 감정이다. 남들과의 관계에서, 흐름에서, 상식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느낌. 지금의 나는 남들과 비교해 정상(혹은 그 이상)이라는 적절한 보장감이 늘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남들의 기대치 수준의 커리어를 쌓고, 서로 비슷한 수준의 취향을 기르기 위해 애쓰며,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대중매체를 찾는다. 연결된 느낌을 가장 강하게 갈구하는 곳은 SNS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타인의 엄지 손가락 갯수로 인정받는 느낌. 그 안정감이 실상은 미약하고 매우 짧은 유효기간을 가진다는 것은 그 순간의 외로움을 극복해야 하는 사람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나는 그 순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가.


 외로움을 극복하는 요체는,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자기 확신이다. 관계의 시스템에서 잠시 떨어져 움직여도 된다는 강한 자기 확신. 관계의 시스템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지만, 그것에 종속되지 않고 떨어져 사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꼭 필요한 단계이다. 사실 최근 들어,  '시스템에 필수적이지 않은 나'를 찾으려는 움직임은 도처에 존재했다. 마음의 연금술, 힐링, 웰빙 등등. 사회에 암묵적으로(사실 공공연하게) 합의된 필수성에서 멀어져 자신만의 속성을 찾기 위한 움직임. 우리는 그러한 필요 이상의 속성을 '잉여'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이미지 출처: http://trendinsight.biz/archives/3765


남들에게 (사회에) 꼭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잉여'라고 유행처럼  지칭하던 시절이 있었다. 잉여야말로 어쩌면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가 아닐 까 싶다. 나와 내 주변의 민낯을 마주할 기회, 더 나아가 마음의 군살을 확인하는 순간, 그리고 그 중요한 순간에 남의 눈치를 보다가 동력을 잃지 않을 의지. 우리에게 잉여로움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여름휴가를 집에서 보내기로 결심한 진짜 이유일 것이다. 자기 합리화는 필수 영양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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