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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Sep 13. 2017

이소라, 이석원 그리고 우원재

예민하게 흔들리는 정확한 서사

가수들에 대한 과도한 팬심을 담아 쓴 글입니다.


0. 정확함

 평론가 신형철은 그의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정확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문학의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는 정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문법적으로 틀린 데가 없는 문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문장을 말한다. 그러나 삶의 진실은 수학적 진리와는 달라서 100퍼센트 정확한 문장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학은 '근사치'로만 존재하는 것이리라. ('근사하다'라는 칭찬의 취지가 거기에 있다. '근사'는 꽤 비슷한 상태를 가리킨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2014, 신형철

 글쓰기와 노래는 얼마나 다를까. 노래를 듣다 보면 이따금 정확하게 위로받거나 공감되는 순간들이 있다. 노래를 듣는 목적은 저마다 다양하겠지만, 나는 간혹 그 정확한 어루만짐을 기대하며 노래를 찾는다. 깊숙이 침잠하고 싶을 때는 이 노래, 둥실둥실 들뜨고 싶을 때는 이 노래, 이런 식으로. 여담이지만 이러한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가 생기는 것이야말로 생의 소소한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음악이든 책이든 사람이든.

 주제로 돌아와, 이를테면 내겐 가수 김광석이 그러하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이 사람 노래가 내 마음을 읽는다'라고 느끼는 순간들. 그 짜릿한 순간들이 포개지고 겹쳐져 만들어진 '정확한' 경험의 역사들은 내가 그의 목소리, 읊조림, 떨림 하나까지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된다. (이전에 썼던 김광석에 대한 팬심 가득한 글을 아래에 첨부한다.)


1. 이소라, 그래서 근사한.

 평소에 TV를 잘 챙겨보지 않기에, 최근에야 가수 이소라가 방송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JTBC의 음악 예능 방송 <비긴 어게인>이다.) 자칭 팬으로서 자그마한 마음의 빚을 안은 채, 밀린 방송들을 보고 관련된 글들을 찾아 읽는다. 인터넷에서는 이소라에 대한 악플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그의 예민한 성격에 대한 비판들이다.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거나, 방송에 나오면서 예의가 없다거나, 사회성이 떨어진다거나 등등. 인물에 대한 호오는 매번 다양할 수밖에. 이를 별개로 볼 수만 있다면, 사람들의 그러한 혹평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이소라는 정말로 예민한 가수니까. 다만, 그렇기에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이소라의 예민한 성격은 예전부터 유명했다. 자신의 노래가 맘에 들지 않아 공연을 도중에 중단하고, 관객들에게 입장료 전액을 환불한다거나. <나는 가수다> 호주 경연 때에는 준비한 곡이 무대에 맞지 않는다며 공연 네 시간 전에 선곡을 바꾼다거나. <비긴 어게인>의 이소라 또한 여전하다. 곡을 연습할 때마다 - 남들은 모두 괜찮다 여기는 파트에서 - "다시"를 외친다. 자신의 노래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남들의 칭찬에도 신경질을 낸다. 날씨나 본인의 컨디션, 일행들 사이의 미묘한 심리 상태까지 남들보다 배로 신경을 쓴다. 그리고는 그런 자신에게 지쳐버린다. 출연진 중 가장 가까이하기 어려운 이는 틀림없이 이소라 이리라.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기에, 이소라야말로 노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정성을 들이는 가수이지 않을까. 이렇게 말한다면 다른 출연진-음악가들이게 실례가 되는 말일까. 약간의 팬심을 보태어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나는 가수다 - 호주 경연, 2011>, 이소라

 그 정도로 두텁고 모진 예민함을 뚫고서야 내게 도달한 그의 노래는 정말이지 근사하다. 이소라의 가사는 모호하지 않다. 어려운 단어 또한 찾기 어렵다. 평범한 소재들과 은은한 문장들로 짜인, 약간은 시시콜콜한 가사는 그래서 더욱더 듣는 이를 몰입하게 만든다.

 "더 외로워/ 너를 이렇게 안으면/ 너를 내 꿈에 안으면/ 깨워줘/ 이렇게 그리운 걸/ 울고 싶은 걸 난 괴로워/ 네가 나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만/ 웃고 사랑을 말하고/ 오 그렇게 싫어해 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 <SoRa`s 5 Diary, 2002>, 이소라)

 곡을 제대로 전달하려는 그의 노력은 결코 가사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노래 부르는 것을 듣다 보면, 기교를 부린다는 느끼기는 매우 힘들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소리의 공명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최대한 절제하며 부르려 애쓴다고 말했다. 그의 소극장 공연에 가면 관객들 모두가 숨죽인 채, 혹여 바스락 소리가 나지 않을까 긴장하며 공연을 감상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일견 그 모습은 엄숙한 사원의 정경과 유사해서, 꽤나 경건하기까지 하다. 마치 이소라의 성전에 들어온 도굴꾼인 마냥, 관객은 한껏 불안해하며 그녀의 숨소리 하나에 온 마음을 집중하게 된다.

 <비긴 어게인>에서 이소라는 그의 유명곡 '바람이 분다'를 불러달라는 출연진들의 부탁에 이런저런 변명을 하며 회피한다. 그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한 것인지, 나는 그가 서투르게 내놓은 변명들이 살짝 아리다. 그는 단지 유명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작품을 재생하는 데에 만족할 수 없다. 관객 앞에서 노래의 첫 운을 떼었다면, 한 곡이 끝날 때까지 온전한 형태의 위로가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가 닿지 못하는 노래를 참지 못한다. 그 깐깐한 성미의 가수가 전달하는 노래는 얼마나 감동적인지. 선물이 감동적인 이유는 그 선물을 고르기 위해 상대방이 팔았을 고민과 발품 때문이니까.  

유희열(이하 '유') : "이소라 씨는 꿈이 뭐예요?"
이소라 (이하 '이) :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에요."
유 : "잘 하시잖아요."
이 : "그렇지 않아요.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때부터 이제 더 못할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어요."
유 : "이소라 씨가 항상 녹음할 때나 공연하실 때, 왜 이렇게 못하나 자책하시고 항상 떠세요."
이 : "내가 부족할 때 뭔가 좋은 일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불안해하거나 부족하거나 못하고 이럴 때. 그때가 나쁜 때가 아니라 좋은 일이 생기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을 해요. 괜찮아,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런 거야 하고."
(유희열의 스케치북, 2011)


2. 이석원, 기대가 부담스러운.

  8월 6일 저녁,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이석원은 홈페이지에 공식 은퇴문을 올렸다. (이따금 업로드하는 이석원의 일기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던 홈페이지였다.) 언니네 이발관의 공식 은퇴 발표. 9년의 기다림 끝에 선보인 6집 신보 <홀로 있는 사람들>이 발매된 지 2개월 만이었다. 새 앨범을 발표하며 마지막 앨범이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발매 기념 공연 소식만을 기다리던 팬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비보였다. 나 역시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오랜만에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들으며 며칠을 보냈다.

 그런 이름의 밴드가 있다는 것만 알던 내가 이석원을 처음 마주한 건 '2008년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이었다. 앞서 무대에 오른 밴드들의 공연이 조금씩 지연되었고, 언니네 이발관은 애초에 배정받은 시각보다 훨씬 늦게 무대에 올랐다. 아마도 그날 나는 무대에 꽤 가깝게 서 있었나 보다. 이석원의 유달리 꽉 다문 입을 기억하니 말이다. 그는 매우 화가 나 있었다. 단 두 곡만 부르고 인사도 없이 퇴장. 처음 만난 이석원은 소심하고 까칠한, 그런 아티스트였다.

 이소라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예민한, 범상치 않은 완벽주의자. 팬들은 매년 희망을 가지며 다음 앨범을 기다리지만, 이석원은 광기의 가까운 편집증으로 앨범 발매를 연기시키곤 했다. 이제는 내겠노라 자신이 발표한 발매일을 수차례 번복하던 2008년 8월의 어느 날, 5집 <가장 보통의 존재>가 발매했다. 앨범과 동명의 첫 트랙 '가장 보통의 존재'는 신비로운 가사로 시작한다.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그대의 별에선 연락이 온 지 너무 오래되었지./ 너는 내가 흘린 만큼의 눈물/ 나는 네가 웃은 만큼의 웃음./ 무슨 서운하긴, 다 길 따라가기 마련이지만"
 (가장 보통의 존재, <가장 보통의 존재, 2008>, 언니네 이발관)

 기다림으로 오랜 밤을 지새운 당시 팬들에게는 실례일지 모르지만, 돌이켜 보건대 이렇게 반짝이는 앨범을 2008년에 만날 수 있어 행운이었다. 5집에 수록된 10개의 노래는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듯 천천히, 그리고 유려하게 흐른다. 너무 진부하지도, 너부 사변적이지도 않은 담담한 가사. 적절한 긴장감을 주는 멜로디. 트랙과 트랙 사이를 조심스레 연결하는 감각. 오랜 대학생활 동안 이 앨범에게 얼마나 많이 위로받았던가.

아름다운 것, <가장 보통의 존재, 2008>, 언니네 이발관

 그리고 올해, 9년의 산고 끝에 6집이 세상에 나왔다. 많은 음악 평론가와 팬들은 6집을 5집에 비견될 명반이라 평했지만, 나는 사회에 갓 나온 어린 어른이었다. 분주함을 핑계로 차분히 듣는 걸 차일피일 미루던 6집을, 은퇴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제대로 공을 들여 듣는다. 산책을 하며, 침대에 누워, 차를 운전하며. 여전히 쉽게 쓰인 좋은 음악. 내가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러고는 이것으로 그와의 이정이 마침표라는 사실에 자못 서운함을 느낀다.

 이석원은 은퇴문을 통해, 음악이 직업이 되어가는 고통과 팬들에 대한 의무감이 더해져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우리가 쉽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그는 얼마나 지쳤던가. 그래서 은퇴하겠노라고 차갑게 말하고는, 언젠가 고통이 좀 덜해지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며 애매한 희망을 남긴다. 그 다운 은퇴. 다행히도 그가 선물한 6개의 앨범은 언제나처럼 쉽고 정성스러운 문법으로 나를 위로해줄 테니. 그가 고통을 조금은 덜기를 바란다. 그리고 욕심을 보태어, 후에 소심스럽게 돌아와 마침표를 쉼표로 덧칠하고는 툴툴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은 쉽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아주 쉽고 좋게 느껴질 수 있는 음악이다. 그렇게 친절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우리들은 정말로 가진 정성을 다 쏟았다. 가사와 멜로디뿐만 아니라, 리듬과 사운드, 작은 악기 하나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한 것이 없다. 그 모든 것들이 다 들을 거리가 되어 줄 것이라 자신한다. 그러니 즐겨달라. 감사하다. (6집 수록 인터뷰)


3. 그리고, 우원재.

 앞서 말했듯 TV를 잘 보지 않기에, 유행의 첨단에 있는 방송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 역시 제대로 챙겨볼 기회가 적었다. 여느 때처럼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쇼미더머니 6>를 보게 되었다. 20대의 일반인 래퍼, 우원재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었다.  

"(다른 지원자들은) 화려하게 뱉고 하는 건 다 잘하는 것 같은데, 자신의 음악적인 색깔이 1차에서는 안 보였던 것 같아요."- 우원재

  검은색 털비니 모자가 인상적인 어둡고 왜소한 래퍼는 다른 지원자들을 향해 - 살짝 소심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의 통렬함에 자못 흥미가 동했다. 다들 제 잘난 듯 목소리를 높이는 경연 방송에서 눈을 내리깔고 인터뷰하는 그 통렬함의 방식도 신선했다. '자신만의 색깔'은 그는 어떻게 서사할지 궁금했다. 

쇼미더머니6 3차 예선 中, 우원재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이소라와 이석원은 고수 중의 고수다. 그에 비해 우원재는 경력이 일천한 신인. 지향하는 음악도 자신을 표현하는 문장도 그 둘과는 상이하다. 그럼에도 나는 우원재를 보며 익숙한 예민함을 느낀다. 정확하게  내 감정을 찌를 것 같은 기대감과 함께.

 그의 노래에는 솔직함과 절박함이 절묘하게 배어 있다. 그가 소개한 자신의 정신병력과 이를 향한 부정적인 사회의 시선들은 그를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으리라. 여유 있는 센 척과 자기애 넘치는 서사만 가득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그 신경질적인 날카로움은 인상적이다. 그의 가사에는 20년 남짓한 삶에서 그가 경험한 생채기들이 녹아있다. 누구나 저마다의 스펙트럼으로 각자의 고통을 감지하지만, 우원재가 포착한 아픔은 절묘하다. 그는 방송에서 선보인 모든 곡을 통해 끈질기게 '자신은 틀리지 않다'라고 외친다. 나아가, 세상을 향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먼저 들이받겠노라고 그르렁댄다. '아픔-부정-저항'의 서사는 울분에 찬 그의 래핑과 어우러져 격양된 감정선을 만들어 낸다.

  특출난 랩 실력이나 화려한 플로우, 혹은 안정적인 호흡 없이 그는 랩의 가장 큰 강점인 '자기 이야기에 집중시키기'를 오롯이 실현해 낸다. 어쩌면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정리되지 않은 호흡, 툭툭 뱉는 플로우, 시간이 흐를수록 격해지는 감정은 오히려 듣는 이에게 몰입감을 선사한다. (경쟁 프로듀서인 지코는 우원재의 공연을 보고 혀를 내두른다. '감정의 기승전결'이 완벽하다고.) 절대 남의 것일 수 없는 이야기를 절대 어렵지 않게, 절대 가르쳐 들지 않으며 뱉어낸다.

시차(We Are), <시차(We Are), 2017>, 우원재

 이소라처럼 상황에 따른 적절한 이야기를 풀지도 않고, 이석원처럼 정성들인 쉬운 말로 보여주는 것도 아닌 그만의 방식. 자신의 아픔을 최대한 정교하게 고찰하여 들이밀어 보여주는 방식은, 속마음을 돌려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힙합이라는 도구와 결합하여 최고의 시너지를 낸다. 

저는 그렇게 특별한 사연이나 일 없이 자라온 일반인입니다. 많은 것을 알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엔 저보다 훨씬 아파온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감히 그분들의 억울함과 여러 감정을 다 아는 것 마냥 보여지는 것 같아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중략) 제 음악을 통해 행동이나 생각을 바꾸지 말아주세요. 주제넘을 수 있지만 정말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 우원재 인스타그램

 그렇기에 낮밤이 뒤바뀐, 교수의 꾸지람을 들어야 하는, 한심해하는 시선을 견뎌야 하는, 알약 봉지가 필요한 어린 래퍼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근사한 위로를 받는다. 문신도, 정신병력도 없는 많은 (소위) 정상적인 이들이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공감과 매력을 느끼는 모습은 꽤나 흥미롭다. 수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하는 그의 매력은 다름 아닌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의 정확한 묘사'에서부터 시작하니 말이다. 앞으로도 우원재가 지속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그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길 바란다. 그는 나의 랩스타니까.

Now you are concerned about the way we are. - Rock N Roll Star, Oa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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