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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Sep 19. 2017

<몬스터 콜>, 이야기의 힘에 대하여.

모순된 자신을 위로할 수 있도록.

영화 <몬스터 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13살 소년의 앞에 나타난 괴물.

 맨체스터에 사는 13살 소년 '코너 오말리'에게 삶은 힘겹기만 하다. 어머니는 계속되는 항암 치료로 점차 야위어가고, 아버지는 재혼하여 LA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다락방에서 찾은 오래된 영사기로 영화 <킹콩>을 보던 코너는 어머니에게 묻는다.

"사람들은 왜 킹콩을 괴롭히죠?"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거든."
...
"나도 킹콩처럼 다 부수고 싶어요."

 어머니는 이미 잠들었기에 코너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한다. 어쩌면 코너는 어머니가 듣지 못하기에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환자인 어머니 앞에서 늘 '착한 아들'이었으니까. 스크린 속 킹콩은 끝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추락하고 만다.

영화 <킹콩, 1933>

 가만히 그 추락을 바라보는 소년 그날 밤, 악몽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코너에게 나무괴물이 나타난다.   


"코너 오말리! 너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왔다.
내 이야기가 모두 끝나면 네가 네 번째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너의 악몽 이야기를!"



1. 외할머니로부터 날 구해줘.

 코너는 외할머니가 불편하다. 가끔 집에 방문하는 그녀는 코너를 볼 때마다 모질게 대한다. 마치 자신의 딸을 버리고 달아난 코너의 아버지를 바라보듯. 외할머니는 늘 어머니의 죽음을 상정한 채, 코너에게 자신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외할머니가 집에 방문한 어느 날, 자기 방을 그녀에게 내주고 거실에서 잠을 청하던 코너에게 괴물은 첫 번째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번째 이야기. 좋은 사람은 누구인가.

 첫 번째 이야기는 뒤죽박죽이다. 왕비는 마녀였지만 왕을 독살하지도, 왕자의 애인을 살해하지도 않았다. 왕자는 계모인 왕비를 모함하였지만 훗날 훌륭한 왕이 되어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린다. 누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지 혼란해하는 코너에게 괴물은 말한다.  

"항상 좋은 사람도, 항상 나쁜 사람도 없지.
대부분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단다."


 코너에게 그것은 마치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렸으리라. 외할머니에게 미움받는 아버지도 말하지 않았던가. "외할머니는 코너가 보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만은 아니라고." 외할머니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코너에게 첫 번째 이야기는 오지랖만 넓은 쓸모없는 조언일 뿐이다. 하지만 괴물은 사실 이때부터 코너에게 말하고 있었다. 소년이 진정으로 견디지 못하는 건 외할머니가 아니라 그의 마음속 '나쁜 생각'이라고. 자신 내면에서 발견한 '나쁜 생각'마저 너는 인정해야 한다고.



2. 아버지는 나와 함께하기 싫어해.

 결국 어머니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입원하게 된다. 코너는 외할머니의 집에서 바라지 않던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영국을 방문한 것이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재회하며 행복을 느끼는 코너. 모처럼의 행복을 지렛대 삼아 코너는 아버지에게 자신을 LA로 데려가 달라고 요청한다. 어쩌면 코너는 그것을 구원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지긋지긋한 현실로 가득한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도피. 하지만 그가 바란 구원은 완곡한 방식으로 거절당하고 만다. 시키지 않아도 싱크대를 닦고, 화가 나도 쓰레기 봉지를 뒤엎는 게 전부였던 '착한 아들'도 소용없었다. 아버지에게 거절당한 코너는 분노한 채 괴물을 부른다.

두 번째 이야기. 믿음이 없는 자는 누구인가.

 괴물이 들려주는 두 번째 이야기는 난해하다. 이야기 속 목사의 딸이 죽은 것에 대해 코너는 치료를 거절한 약제사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괴물은 믿음을 저버린 목사의 탓이라고 말한다. 치료의 절반은 믿음인데, 타인의 믿음에 기대어 사는 목사가 역경을 마주하자마자 자신의 믿음을 저버린 것이다. 괴물은 목사를 이기적이고 비겁하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그를 벌주기 위해 목사관을 같이 부수자고 코너에게 제안한다.  

 소년은 목사를 보며 외할머니나 아버지를 떠올렸을까. 어린 그의 눈에, 주변의 어른들은 어머니의 치유를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크리스마스에 미국에 놀러 오라는 아버지의 말은 그의 맘에 들지 않는다. 그는 애써 크리스마스에 어머니를 혼자 두기 싫다고 담담히 답한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 속에서 목사관을 부수던 코너는, 자신이 부수던 것이 사실은 외할머니의 집이라는 걸 깨닫는다. 자신의 손으로 난장판이 된 방 안에서 코너는 공포를 느낀다. 이번에도 괴물은 코너에게 말한 것이다. 코너의 믿음이야말로 이기적이고 비겁하다고. 부서진 것은 목사관이 아니라 코너가 지낼 집이었고, 벌은 목사가 아닌 코너가 받을 테니 말이다.



3. 아무도 내게 화내지 않아.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난장판을 목격한 외할머니는 아연해 하지만, 그를 혼내는 대신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식장을 자신의 손으로 넘어뜨려버린다. 다음날 아침 코너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나를 벌주지 않는 거야?"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니?"

 사실 예전부터 그랬다. 어머니의 병이 학교에 알려진 후, 선생님들은 자신을 혼내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려도, 시험시간에 헤드폰을 끼고 있어도 그를 질책하지 않았다. 그저 괜찮냐며 과하게 친절을 베풀 뿐이었다. 친구들 역시 그를 멀리했다. 그나마 코너의 눈을 바라보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그를 괴롭히는 동급생 '해리'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리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너는 누군가 널 괴롭히길 바랄 뿐이야.
그러니 이젠 난 그러지 않겠어.
 안녕, 코너. 난 더 이상 네가 보이지 않아."


세 번째 이야기. 아무도 자기를 봐주지 않는다면, 나는 존재하는걸까.

 세 번째 이야기는 그 순간 현실에 맞닿는다. 아무도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것에 분노한 투명인간의 이야기. 이야기 속 투명인간처럼 코너는 괴물을 현실에 불러낸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해리가 병원에 실려간 후였다. 해리에게 폭력을 휘두른 후, 전교의 학생들은 모두 코너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그는 더 이상 투명인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코너가 바란 것이 아니었다. 교무실에 부른 선생님은 역시나 코너를 혼내지 않았으니까.



4. 너의 진실을 이야기할 차례야.

 어머니에게 쓴 마지막 치료법마저 차도가 없다는 소식을 듣자, 코너는 괴물에게 어머니를 낫게 해달라며 울부짖는다. 그러나 괴물은 자못 엉뚱한 소리를 한다.

"나는 어머니가 아닌 널 치료하러 왔다.
이제 네 악몽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코너는 늘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버티는 꿈. 다시금 펼쳐지는 악몽 속에서 괴물은 진실을 말하라고 소리친다.

"더 늦기 전에 진실을 말해라. 코너 오말리."
"싫어."
"진실을 말해."
"싫어. 말하면 난 죽고 말 거야."
"말하지 않으면 내가 죽일 테다."

 괴물의 협박 앞에 코너는 외친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어. 다 끝났으면 좋겠어." 악몽 속에서 코너는 늘 어머니의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건 진심이면서 진심이 아니었어. 어떻게 모두 사실일 수 있지?(How can both be truth?)"




 코너를 괴롭힌 건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악몽 속에서 그는 어머니를 구하려 노력하지만, 동시에 매우 고통스러워한다. 반복되는 악몽 끝에 소년은 늘 어머니의 손을 놓고야 만다. 소년은 외할머니를 미워했고 아버지에게 실망했지만, 사실은 자신부터 어머니의 회복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견디지 못하며 자책했다. 자신에게 폭력적으로 대하는 유일한 존재인 해리를 무서워했지만, 끝내 고자질하지 않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리라. 그는 무거운 벌을 받기를 원했다. 왕비에게 죄를 덮어 씌운 왕자처럼, 믿음을 져버린 목사처럼. 

 괴물의 말처럼 인간은 고통스러운 사실보다는 받아들이기 쉬운 이야기를 믿는다. 코너 역시 두 가지를 믿고 바랐다. 어머니와의 행복했던 과거의 삶을 희구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 어머니가 빨리 죽기를 바랐다. 스스로 덮어버린 모순의 실타래를 껴안은 채, 소년은 그저 누군가 자신을 벌주기만을 바란다. 그런 소년에게 괴물은 말한다. 

"너의 수많은 생각들은 큰 의미가 없단다.
너의 행동이 중요하지. (중략)
지금처럼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니?
너는 진실을 말할 바에는 죽겠다고 했었지."


 우리의 마음은 너무도 쉽게 모순을 품는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올바른 모습을 상정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그와는 전혀 다른 생각들이 샘솟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깜짝 놀라 자신을 채근한다. 이러한 놀람-자책의 굴레는 불행을 마주할 때 더욱 선명하게 자욱을 남긴다. 불행은 그 자체로도 무서운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불행을 마주한 순간 자신 내부에서 피어나는 '나쁜 생각'(혹은 우리가 나쁘다고 일컫는 생각)들에 지레 자신을 자책하는 것이다. 어쩌면 거대한 불행의 진정한 무서움은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자신을 향한 자책의 칼날은 사람을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킨다. 

 괴물의 말처럼 자신의 추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어렵다. 어쩌면 사실대로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그 잔혹한 통과의례를 마친 코너의 얼굴에는, 스크린에서 처음 비추어지는 후련한 감정이 엿보인다. 피로함과 함께 그는 처음으로 악몽이 없는 긴 잠에 빠진다.



5. 괴물의 서사.

 어머니의 치료가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코너는 어머니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외면하고 있던 상황을 마주한 자신에게 화가 났고, 내면 속 죄책감과 슬픔 사이에서 종잡을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외면하는 아들을 향해 어머니는 말한다. 표현하지 못해도 알 수 있으니 너 자신을 자책하지 말라고. 지금도, 훗날에도.

훗날 지금을 돌이켜보며, 분노와 슬픔 때문에 말하지 못한 너 자신을 자책하지 말거라. 네가 말하지 않더라도 나는 알 수 있단다.

 네 번째 이야기를 괴물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고 나서야 소년은 '너무 늦지 않게' 치유된다. 어머니의 임종을 마주하기 직전 코너에게 마지막으로 괴물이 나타난다. 진실을 말하라는 괴물의 말에, 코너는 어머니에게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고백한다. 마음속 여러 상념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자신을 질책하느라 중요한 순간을 놓치는, 그런 실수를 13살 소년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진실을 고백하기 위해, 소년은 영화 내내 방황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코너는 죄책감 없이, 오롯이 순수한 슬픔만으로 어머니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할머니는 줄곧 잠겨있던 다락방을 코너에게 열어준다. 이제 코너의 방이 된 그곳은, 어머니가 어린 시절을 보낸 방이었다. 어머니의 옛 스케치북에서 코너는 그녀가 그린 나무괴물의 그림을 마주한다. 

 영화 속에서 나무괴물의 정체는 '코너', 그 자신이었다. 괴물이 목사관을 부수는 순간 코너도 방을 부수었고, 괴물이 분노한 순간 코너는 해리를 때려눕힐 수 있었다. 하지만 괴물의 또 다른 정체는 바로 '어머니와 코너가 공유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머니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방황하는 순간, 둘만이 공유하던 환상은 괴물의 모습으로 코너에게 나타난다. 괴물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실 코너의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코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오해하고, 괴물을 통해 다시 정정해 나간다. 세 가지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비로소 소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말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누구나 힘든 때는 찾아온다. 그리고 사실, 그 순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은 우리 마음속에 이야기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 이야기는 때로는 뒤죽박죽이고, 어떨 때는 난해하며, 심지어는 죽기보다 더 마주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 말하고, 오해하고, 계속해서 고쳐 말해야 한다. 말을 내뱉는 순간에야 드러나는 자신의 민낯이 있다. 그리고 그 민낯을 마주하는 순간이야말로, 모순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긴 여정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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