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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Sep 10. 2017

당연한 질문은 당연히 아프다

꿈에 대한 질문이 불편한 요즘

왜?

 대학교 졸업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공대생 주제에 갑작스레 경영전략 동아리에 꽂혀 1년간 활동한 경험이 있다. 학교별로 경영전략 동아리가 매우 많아지던 시기였고, 리쿠르팅을 위해 각자 나름의 색깔을 홍보하려 애쓰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활동한 동아리는 크게 두 가지를 색을 지니고 있었다.

 1. 다양한 학교의 학생들이 모이는 연합 동아리
 2. Why에 보다 더 집중하는 동아리 (*상대적으로 How 보다 더)

 동아리 활동은 매주 주말마다 구성원들끼리 모여 진행하는 세션이 중심이 된다. 매주 한 개의 비즈니스 케이스를 선정하면, 일주인 동안 각자 케이스의 회사가 처한 문제를 정의한 후 솔루션을 찾는다. 세션에 모인 구성원들은 1주일간 준비한 자신의 고민을 공유하며 서로의 접근 방식과 논리 전개 과정의 빈틈을 찾아 토론을 한다. 길게는 10시간 이상, 짧아도 6시간은 넘는 마라톤 토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였기에 사고의 단초, 논리의 흐름, 결론이 맺어지는 형태는 매번 상이하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나와는 다른 결과물을 지적하며 무작정 질의를 던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상대방이 보여준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사고의 시발점부터 고민의 흔적을 유심히 들여다 봐야 한다. "왜(Why) 이랬을까?"에 집중하고 파헤치는 것. 동아리는 그렇게 타인을 바라보는 낯익지만 새로운 방식을 훈련할 것을 요구한다.


꿈에 대한 질문

 매 학기 마지막 세션의 토론은 다소 생경한 주제가 선정된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를 주제로 진행되는 마지막 세션 a.k.a. "드림 세션"

 한 학기 간 다양한 산업군이 직면한 문제를 풀던 구성원들은, 그동안 갈고닦은 질문 습관을 자기 자신의 꿈에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날 선 질문과 대답이 익숙한 동기 구성원들에게 그 꿈을 발표하고 질문을 상대해야 하는 자리. 1년간의 짧은 동아리 생활 동안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세션을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도 2번의 드림 세션을 선택하지 않을까.


 드림 세션을 준비하다 보면, 자기 자신과 자신의 꿈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평소 머릿속에서 막연히 떠오르던 자신에 대한 단상, 모호한 상념 등의 생각 뭉치들을 타인에게 설명 가능한 수준의 타당한 결과물로 바꾸는 작업. 돌이켜 보면 사실, 그 과정은 자기 자신에게 질문과 설득을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진정으로 그것을 원하는가?' '왜 그것을 원하는가?'
'많은 바람 중 우선순위가 있는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지는 않은가? 타인의 갈망에 비판 없이 동조하여 고민 없이 결정한 건 아닌가?'

 두뇌도 그 주인만큼이나 게으르고 잔꾀가 많기에, 사고는 대개 습관적으로 진행되며 합리화와 변명은 늘 충분할 정도로 만연하다. 습관적인 사고와 자기 합리화에 저항해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말랑말랑하고 성긴 꿈의 형태는 견고하고 촘촘해진다. 물론 내재적인 정반합을 걸친 결과물마저 동료들의 날 선 질문을 피할 수는 없다. 짧게는 한 학기, 길게는 1년 동안 주말을 함께한 동료들의 질문은 같이한 시간만큼이나 날카롭고 아리다. 예컨대 "저는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매력을 느끼며, 상대방의 가치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을 돕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미래에 HR 부문의 구루(Guru)가 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인사 부문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하고자 합니다."라는 모범적인 발표 뒤에는 이런 질문이 쏟아지는 격이다. '어느 부분에서 커뮤니케이션에서 매력을 느끼는지 모호하다'던지 '사람과 대화할 때의 매력만으로 HR부문이라고 단정지은 이유가 부족하다'던지 '심리상담사, 변호사, 스탠딩 코미디언까지 해당 항목에 해당하는 직업군이 많은데 HR을 선정한 다른 이유가 있는지'라던지 '다양한 산업군이 있는데 왜 대기업에서 시작하려고 하는지' 등... 눈치 빠른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위의 질문들은 수준의 차이는 다소 있겠으나, 실제 취업전선에서 구직자들이 직면하는 질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당연하지만 숨기고 싶던 질문'을 시민들에게 계속했다. 싫어할 만하다.

요즘

 나 역시 완벽하지는 않지만,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습관을 들여왔다.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타협하는 많은 선택에 대하여 구태여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자처하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 난해한 질문을 할 필요는 없다. 잊고 있거나 애써 무시하던, 하지만 당연히 해야 할 질문일수록 대답하기 무척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습관 덕택에, 나름 첫 커리어의 시작은 자신만만했다. 강한 확신, 그리고 확신이 틀렸을 때 가설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실행 플랜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직장을 다닌 지 3년. 요즘 간혹 회사일에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가 있다. 심신이 지친 채로 퇴근해 침대에 쓰러지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곤 한다.

 '내 길이 아닌 걸까? 아니면 방향은 맞지만 방법이 잘못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은 인고할 시기인데 내 각오가 부족했던 걸까?'

 이런 고민을 입 밖으로 꺼내면 당장 내 소중한 친구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그럼 왜 그만두지 않는지' 혹은 '다른 방향, 다른 방법을 고려해 본 것이 있는지' 혹은 '과거와 지금의 꿈이 같은지' 등등... 이런 질문을 마주하기 싫어 터져 나오려던 불평불만을 입 안에 잠근 것이 여러 번. 어쩌다 불평이 쏟아져버린 탓에 친구들이 저런 질문을 하게 되면 (놀랍게도) 화가 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질문들에 화를 내서는 안된다는 걸 안다.  불만을 제시한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그리고 그 불만에는 너무 당연하게도 파생되는 합리적인 순서의 질문들이 있다. 그리고 사실 친구들의 그러한 질문들은 -비록 마주하기 싫더라도- 내가 나를 향해서 매섭게 다그쳤어야 했던 것들이다. 뇌리에서 맴돌고 있던 성긴 질문-답변-해결책의 가닥들을 직면하기 무서운 것이다, 나는. 그래서 그걸 지적하자마자 방귀 뀐 놈처럼 크게 성이 나는 것이다. 더욱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연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명확히 하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는 나 자신이 답답하고 싫다. 그래서? 나는 불만을 아끼는 형태로 자라난다. 정반합의 습관을 자랑스레 내보이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어른들은 술을 마시는게 부끄러워서 술을 마신다.


 가벼운 상처는 절로 낫는다. 깊은 상처가 없는 사람은 그래서 모든 상처가 시간만 지나면 절로 낫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습관적으로 상처부위를 밴드든 붕대든 무엇인가로 덮어버릴 뿐이다. 꽤나 깊은 상처는 적절한 처방이 필요하다. 처방을 위해서는 때에 따라서는 환부를 도려낼 정도로 고통스러운 진단이 선행되곤 한다. 때때로 그 진단-처방은 사람을 아프고 고통스럽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치과를 가지 않고 끝까지 버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비겁하게도- 만연한 상처에 대한 치료법도 가끔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처방 이전에, 치료를 위한 체력을 키울 시간이 필요한 그런 만연한 환부 말이다. 메스부터 들이대기 전에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눈물 흘리며 아파할, 이제는 내 일부가 되어버린 소중한 상처.


판도라는 얼마나 용기있는 사람인가.

사실은 알고 있다. 거칠고 복잡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자신감은 삶에 대한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벼락치기가 아니라 실제로 공부가 다 끝난 채 보는 만전 상태의 시험 직전 상태. 그리고 나는 사실 그 정도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날카로운 질문들로부터 내 상처부위를 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를 발견한다. 혹자는 말한다. 세상에 다 준비 끝마치고 보는 인생이 어딨냐고. 사실은 알고 있다 그것도. 그래도 당연한 질문은 당연한 만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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