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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Oct 28. 2017

감히 '마음'에 '과학'을 들이대는 마음

책 <마음의 과학>을 읽고

<마음의 과학>

이번 달 독서모임에 선정된 책은 <마음의 과학>이라는 꽤나 두터운 책이다. 제목을 접하고 든 첫 느낌은 호승심이었던 것 같다. '감히! 마음에 과학을 들이대다니!' 대충 이런 느낌이랄까. 중세 시대의 독실한 신자들이 연금술사를 흘겨보듯 나는 그렇게 깐깐한 심정으로 책의 서문을 읽어 내려갔다.

두껍기는 또 얼마나 두꺼운가


휴대폰 카메라로 달 사진 찍기

이와 비슷한 감정을 언제 느꼈을까 회상해 본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달을 바라보며 걷는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좀체 일찍 집에 들어가지 않는 타입이기도 했거니와, 귀갓길에 바라보는 달은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지. 둥그렇게 차 있든 조금 덜 여물었든, 달무리로 뿌옇든 토끼 모양까지 선명하든. 달은 저마다의 매력으로 나의 귀갓길을 위로해주는 친구였다. 양산형 위로-봇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스마트폰도 아닌 피쳐폰 시절, 휴대폰 카메라의 화질이 지금보다 꽤나 안 좋던 그때엔 달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어차피 하얀 점에 진배없었다. 그때의 기억이 쌓여서일까. 소중한 순간이나 자랑할만한 기억들은 종종 사진을 찍어두는 SNS 중독자인 나에게 달은 영원히 미답지 상태였던 것이다.

'아이폰으로 달 사진 찍기'가 검색어 자동 완성되는 시대


멋스러운 카페에 가면, 오랜만의 친구들을 만나면, 고궁에라도 방문했다 치면 스마트폰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못된 버릇을 지닌 나에게 달 사진은 쉽사리 다가가기 어려운 경지였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화질은 이전에 비해 일취월장했지만, 여전히 내가 보는 달의 매력을 담기엔 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다른 아름다움에 비해 달만큼은 휴대폰을 챙기며 시간 낭비하지 않고 그저 넋을 놓고 온전히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기에 누군가 달을 사진으로 찍으려 하면 괜스레 훈수질이 두고 싶은 것이다. "허허. 달의 풍미를 감상할 줄 모르는 사람이 로고." 하면서 말이다.


감히 마음에 과학을 들이대고 싶어 하는 마음

과학이란 게 또 무엇인가. 경험과 측정에 근거한 증거를 활용하여 현상의 원리를 밝히는 과정, 즉 과학적 방법론을 활용한 학문이다. 현상의 범위를 규정하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현상의 인과관계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차후 통제된 변수를 통해 결과를 예측한다. 나아가 그 지식을 활용해 규정된 범위의 현상을 통제하는 것이 과학이다.


나의 부정적인 마음은 어쩌면 여기에 기인했을지 모른다. 마음은 마치 달과 같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존재, 금줄을 치고 소금을 뿌리며 외간의 기웃거림을 타지 않아야 하는 존재로 여긴 것은 아닐까. 과학 나부랭이가 현미경을 들이밀며 요리조리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쾅쾅!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마음 곳곳에 라벨링 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은 아닐까. 아무리 변수를 파악한다손 쳐도 마음을 감히 통제할 수 있겠냐고 믿었더랬다. (사실은 아직까지도 꽤나 그러하다.)

<もののけ姫, 1997>


먼 나라, 이웃나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우였다. 


책 속의 석학들은 - 존경받는 석학들이 늘 그러하듯 - 탐구 주제를 대할 때 조심스럽고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 탐구욕은 왕성했고 가설은 도발적이었다. 380장이 넘는 페이지 동안 그들은 꽤나 치열하게 기억과 행복, 성격과 감정의 결들을 더듬어 간다. 가설-검증의 프레임과 정-반-합의 논리 싸움은 꽤나 깊숙한 부분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 인간은 우주의 구조와 먼 행성의 움직임부터 미생물의 호흡 방법까지 알고 있다. 인간이 홀로 있을 때와 다르게 군집을 이루어 모둠살이를 할 때 어떤 군상들이 나타나는지를 연구하고, 골프공이 더 흐트러짐 없이 나아갈 수 있게 고민하기도 한다. 이러한 호기심을 동력 삼아 지식의 외연을 무진 넓혀가는 우리에게도, 아직 마음은 이 정도로 미답지구나 라고 새삼 깨닫는다. 이리도 가까운데, 어쩌먼 이처럼 머나멀까.


책 속에 넘치는 많은 담론들과 치열한 논쟁이, 외려 나의 미신적인 믿음을 더 굳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렇기에 친구가 자랑스레 내민 달 스마트폰 사진에 아직 여유롭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달 사진이 아직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마냥, 마음의 이해는 여전히 머나멀다. 아직은, 아무리 있는 힘껏 변수를 이해한다손 쳐도 마음의 미약한 경향성도 규정하기 어렵다.


 마음을 탐구하고 분석하는 개척자들을 비웃자는 게 아니다. 나는 여전히 마음이 우리의 깜냥보다 크고 광대한 세계이길 막연히 바란다. 나의 이런 다분히 변태스러운 요구마저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로 마음의 세계가 거대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래서 있는 힘껏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두꺼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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