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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Oct 05. 2017

쟁여놓았던 음악을 꺼내먹어요

새벽 핑계로 적어 보는 나만의 음악 플레이리스트 40곡

 All these banalities, they're suddenly turned into these beautiful, effervescent pearls.
- Movie <Begin again>

 바라던 해외여행에 왔다고 가정해 보자. 여행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보이는 기억'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간편하고 일반적인 방식이다.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된다. '쓰인 기억'은 조금의 수고를 동반하지만, 서사가 함께하기에 미래에까지 보다 상세하게 기억을 담을 수 있다.


 사진이나 글과는 다르게 냄새가 과거의 기억을 돌이키는 방식은 다소 불친절하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에 이끌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냄새를 통해 과거로 향하는 과정은 '보이는 기억'과 '쓰인 기억'과는 다르게 통시적이다. 한 순간에 깊은 곳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방식은 '소환되는 기억'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독특한 짠내를 매개 삼아 어린 시절의 부산 바다를 떠올릴 수 있다. 겨우내 얼어있던 흙이 녹을 때 나는 습습한 향은 봄을 기억하게 하고, 오래된 책에서 나는 퀴퀴한 향은 고등학교 때 집처럼 지내던 학교 도서관을 추억하게 한다. 


 음악은 어떨까. 굳이 저 분류법을 따른다면 음악 역시 '소환되는 기억'의 용기에 알맞다. 하지만 냄새(혹은 향)와는 다르게 음악은 보관이 간편하다. 덕택에 현대인들은 저마다의 추억을 몇몇 음악 속에 용해해 놓는다. 때때로 그 순간을 반추하고플 때는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그 간편함 덕택에 자신만의 플레이 리스트는 내밀한 개인의 서사가 된다.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영화 <건축학개론, 2012>


늦은 밤, 4곡.

 소문난 잠탱이인 내게도 잠 안 오는 밤이 이따금 온다. 새벽이 다 되도록 잠이 오지 않는 건 우울함을 만끽하고 싶다는 내 내면의 의사 표현인 것이다. 그럴 때엔 쟁여놓았던 플레이리스트에서 Antony & The Johnsons의 <Hope There's Someone>를 찾아 듣는다. 새벽은 오롯이 개인적인 순간이기에, 내 기분에 딱 맞는 음원을 찾기란 좀체 쉬운 일이 아니다. 바꿔말하면 그럼에도 고르는 노래들은 보물과도 같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피아노의 선율과 그보다 더욱 불안한 목소리가 만나는 순간, 불면의 멜랑꼴리함은 오롯이 나만이 음미할 수 있는 무언가로 변모한다.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로는 구하기 힘든 음원이기에, 애플 뮤직이 나오기 전까지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의 앨범을 찾아 헤매곤 했었다. Antony의 목소리는 추상적이고 근원적인 우울함을 자극한다면, 보다 현실적으로 몰아치는 우울함은 Lauryn Hill의 <I Gotta Find Peace of Mind>와 어울린다. 정규 앨범도 훌륭하지만, 보다 침잠하고픈 밤에는 MTV Unplugged Live 앨범 버전을 추천한다. 시작할 때는 매력적이기만 하던 허스키한 목소리가 8분의 시간이 지나면서 갈라지는 과정은 언제 들어도 짜릿하게 우울하다.

Antony & The johnsons - Hope There's Someone, 2005, live


 새벽의 메뉴판에는 우울함만 있는 건 아니다. 우울하기보다는 건조하고 모던한 느낌을 찾고 싶어질 때면 모든 불을 완전히 끈 채 암실 안에서 음악을 듣곤 한다. (우울한 밤에는 불까지 끄면 너무 무서우므로 패스!) 가사 하나, 음표 하나를 곱씹으며 듣는 Daft Punk의 <Something About Us>는 섹시하다. 도시의 야경 속에서 깜빡거리는 네온사인 하나하나가 천천히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Daft Punk는 이 노래 하나만으로 노벨상(평화상이든 문학상이든 뭐든)을 줘야한다는 철없는 입장을 가진 나로서는, 수십 번 반복재생을 해도 전혀 질리지가 않는다. '불 꺼놓고 음미하기' 장르에 어울리는 음악들은 많지만, 끝판왕은 늘 Spiritualized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가 차지하고 만다. 충만하게 틀어놓은 음악과 함께 암실에 있으면 제목처럼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암흑으로 가득한 방 안에서 조그마히 깜빡이는 스피커의 충전상태 표시 불빛마저 인공위성처럼 보이게 하는 마력의 음악이다.

Spritualized -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 2012, live


야근

야근은 당연히 싫지만, 홀로 하는 야근에는 나름의 애호를 가지고 있다. 혹자는 여럿이서 야근하는 것이 덜 외롭다 말하겠지만, 나는 외로울지언정 이어폰 하나에 의지한 채 홀로 일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마감일에 쫓기며 일하는 날에는 빠른 비트가 귀를 두드려주는 것이 적당하다. 특히 편애하는 곡은 Guns N' Roses의 <Sweet Child O'Mine>과 Santana의 <Smooth>가 되겠다. 야근으로 지칠대로 지친 내 심신에 강제로 엔돌핀을 주입해주는 기타 선율도 선율이지만, 통속적이고 고전적인 가사들 역시 편애의 주된 이유가 된다. 사랑스러운 연인을 바라보기만 해도 울 것 같다는 영국 롹커와 할렘의 모나리자를 찾아 헤매는 멕시코 기타리스트라니. 기타의 명반인 주제에 가사마저 반칙인 지경이다. 커피도 안 통하는 마지막 순간의 처방전은, 반대로 가사 하나 없는 기타 연주곡인 Neil Zaza의 <I'm Alright>이다. 야근하는 주제에 듣는 음악이 '나는 괜찮다'라는 곡이라는 건 대단히 역설적이고 자조적이다. 어쩔 수 없다. 자기 자신이라도 비웃으며 힘을 내야 나의 야근 시간다운걸.

Neil Zaza - I'm Alright, 2013, live


 마감에 쫓기는 날이 아니더라도 야근을 해야 하는 순간은 더러 존재한다. 그런 날엔 술만큼이나 취할 수 있는 그루브한 곡이 필요하다. Amy Winehouse의 <You Know I'm No Good> 같은. Adele의 전생일 것이 분명한 그녀의 악마같은 목소리가 귀에 울려 퍼지면, 술로 스트레스를 푼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든다. Amy Winehouse가 이름처럼 와인같은 노래라면, Eliot Smiths의 <Between The Bars>는 독한 칵테일같은 풍취가 있다. 목을 넘기고 나면 의외로 아늑한 느낌이 드는 칵테일처럼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홀로 남겨진 사무실은 안락한 바처럼 변하게 된다. Feist의 <Gatekeeper>는 처음 맛보는 맥주의 느낌이라고 포장할 수 있겠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캐나다발 노래는, 추천이 빈곤해진 날에 비장의 패로 친구들에게 맛보여주고 싶은 그런 노래다. 

Amy Winehouse - You Know I'm No Good, 2007, live


달리기

 어릴 적엔 몰랐다. 운전이 얼마나 엄청난 스트레스와 피곤을 동반하는지, 또한 역설적으로 운전이 얼마나 사람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하는지를. L'arc en Ciel의 <Driver's High>는 고속도로 운전자를 위한 모범 선곡 같다.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할 때 선곡하면 사운드의 터보감을 느낄 수 있다. 기타의 음이 찢어지게 올라가는 도입부에서는 나도 모르게 엑셀을 짓이기게 된다. 밤 운전으로 신경이 곤두서고 졸음을 내쫓을 때는 델리스파이스의 <항상 엔진을 켜둘게>를 선곡한다. 특히 창문을 열고 맛보는 고속도로의 밤공기와 간이 맞는 노래다. 여전히 천평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국도를 너털너털 달릴 때에는 김광석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진다. 특히 <변해가네>는 혼자 운전하며 따라 부를 때 그 매력을 더한다.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라는 가사에서 "우" 부분의 그 독특하고 여운 있는 울림을 사랑한다. 

L'arc en Ciel - Driver's High, 2015, live


 학창 시절 가장 많은 신세를 진 대중교통 이기에, 지하철을 타고 있노라면 다양한 선곡을 할 수 있다. 역 간 간격이 넓어 한적하게 달리는 1호선을 탈 때면 아소토 유니언의 <Think About' Chu>가 떠오른다.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논밭이 보이는 지상철 모드일 때에 특히나 음원의 여유작작함과 잘 어울린다. 지하철이 한강을 건너는 순간, 다리의 철근 사이로 건물들이 필름처럼 흘러갈 때면 이승열의 <기다림>을 찾는다. 멈춘 듯 흘러가는 한강에 어울리는 적막감이 가득한 노래다. 사람이 가득한 환승역에서는 Gotye의 <Somebody that I used To Know>를 되뇐다. 서로 부딪히고 치이는 와중에도 귀에서 이 노래만 들리면 짜증이 덜어지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아소토 유니언 - Think About'chu, 2004, live


여행

 비행기를 타면 늘 장난 삼아 David Bowie의  <Space Oddity>를 준비한다. 노래 속 카운트 다운에 맞추어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정말로 내가 우주까지 가 닿을 것만 같다는 상승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혼자만의 놀이에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OST 음원 버전을 준비하기도 한다. 아마도 영화의 감독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해 보면서. 구름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에서는 아무래도 재즈가 끌린다. 태양빛을 한껏 받은 황금 구름 위를 날 때는 Miles Davis의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의 노래가 반짝거린다. 어둡고 푸르스름한 밤하늘을 날 때는 Billy Holiday의 <I'll Be Seeing You>를 들으며 와인 한 잔을 굳이 걸쳐본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中 Space Oddity


 특히나 애착이 가는 여행지에 갈 때면 늘 챙겨가는 음악이 있기 마련이다. 홍콩은 최근 가장 자주 -5년 동안 4번- 간 여행지인데, 국제공항에서 홍콩 시내로 들어가는 공항 철도에서는 Mamas and Papas의 <Californian Dreamin'>을 청해 듣는다. 영화 <중경삼림>의 아름다운 미장센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영원히 세기말일 것 같은 홍콩의 혼잡한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상하이의 멋들어진 스카이라인과 트레이드 마크인 가교 아래의 푸른 등을 볼 때면 영화 <Her>의 OST였던 <Song on the beach><Photograph>를 연달아 선곡하게 된다. 근 미래적인 느낌과 구닥다리 사이버 펑크의 느낌은 영화 속 상하이를 연상시킨다. 도쿄에는 갈 때마다 시간을 들여 오다이바로 발걸음을 돌린다. 우리로 치면 여의도 공원 같은 한적한 장소에서 Ravel의 <Bolero>를 듣기 위해서이다. 특히 도쿄시를 배경으로 유유자적 움직이는 모노레일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곡이다. 

영화 <중경삼림> 中 California Dreamin'


특별한 장소와 시간

 평일에 박물관에 방문할 때면 첫 곡은 Aracade Fire의 <The suburbs>로 시작한다. 박물관 여행에서 가장 필수적인 적당한 보폭과 가벼운 마음가짐을 선물할 수 있는 노래다. 비 오는 날이거나 종료 시간 직전의 약간은 어두컴컴한 박물관에 들어갔다면 3호선 버터플라이의 <깊은밤 안갯속>이 제격이다. 미술관의 높은 천장과 하얀 바닥, 그리고 작품 이외의 장소를 어둡게 만들어놓은 조명을 보고 있노라면 Nick Mulvey의 <Cucurucu>를 듣기도 한다. 이 노래를 들을 때는 걷기보다는 미술관 한편에 자리 잡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듣곤 한다. 미술관에 딸려 있는 분위기 있는 카페에 앉아서는 ego-wrappin'의  <老いぼれ犬の セレナ-デ>가 필요하다. 언젠가 일본 다큐멘터리에서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이후로 미술관 카페에서는 늘 이 노래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Nick Mulvey - Cucurucu, live, 2016


 계절마다 어울리는 노래는 늘 있지만, 나는 계절에 맞추어 노래를 듣기보다는 지금과 다른 계절을 느끼고플 때 그런 노래를 찾는다. 이를 테면, 겨울에 봄을 소환하고 싶다거나 여름에 가을을 찾는다거나. 봄의 노래는 Deapape의 <いい日だったね>이다. 두 기타가 협주하는 선율을 듣다 보면 어느새 봄으로 가득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쓸쓸한 가을은 Proco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을 들을 때 느낄 수 있다. 아직도 가사의 뜻 하나 알지 못하는 이 노래는, 정말 아닌 게 아니라, 오르간의 첫 도입부만으로 낙엽을 뚝뚝 떨어지는 심상을 구현하고야 만다. 한없이 하늘이 높은 여름밤은 Damien Rice의 <Elephant>로 대표된다. 어느 방향으로 누워도 청초하고 쏟아질 것 같은 여름 밤하늘과 이 노래는 어울린다. 보통 겨울 노래하면 캐롤이 떠오르지만, 나는 겨울 곡으로는 Ella Fitzgerald의 <Misty>와 Bon Iver의 <Skinny Love>를 특히 편애한다. 노래가 가지는 특유의 포근함은 어느 순간이라도 흰 겨울 같은 정경을 자아낸다. 

Procol Harum - A Whiter Shade of Pale, 2006, live


 천성이 타고난 바다 페티시인지라, 우울하고 힘들 때는 바다를 보고 싶어 진다. 무척이나 바다가 보고플 때는 Barcelona의 <Please don't go>가 필요하다. 오키나와의 수족관과 고래상어를 배경으로 한 동영상의 배경 음원으로 사용된 이후, 내게 이 노래는 바다 그 자체다 되어 버렸다. 별과 달이 그대로 비치는 밤바다가 그리울 때는 The Czars의 <Paint The Moon>로 대신하곤 한다.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이미 머릿속으로 밤바다와 그에 비친 달이 떠오르는 음악이다. 

Barcelona - Please Don't Go, 2011, live


사람

 어떤 노래는 특정한 사람을 그립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OST로 사용된 <How Long Will I Love You>를 들으면 영화를 함께 본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 놀랍게도 랜덤 플레이로 이 노래가 나오더라도 바로 연락을 하고 싶어지게 되는 것이다. 윤종신의 <오르막길>도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노래이다. 소소하고 다양한 잘못을 저지르던 시절 알게 된 노래지만, 지금도 즐겨 듣는 노래가 되었다. 스웨덴 세탁소의 <그래도 나 사랑하지>도 마찬가지다. 마치 둘 만의 암호처럼 작용하는 이 노래는, 멀리 떨어져 서로 듣더라도 공모하는 웃음을 같이 짓게 한다. Asaf Avidan의 <Reckoning Song>은 신촌 어느 누군가의 버스킹을 통해 알게 된 후, 소중하게 챙겨 다니는 노래다. 별 거 아닌 작은 추억이지만 인상에 깊게 남아 버렸기 때문이다. Cloud Cuckoo Land의 <다시>는 대학교 시절 같이 밴드를 하던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단 한 번의 합주도 해보지 못한 비운의 노래다. 남들은 잘 알지 못하는 나만의 추억이 가득한 노래다. 

Asaf Avidan - Reckoning Song, 2013, live


Don't Look Back In Anger

그리고 마지막 최애곡은 역시나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가 될 것이다. 대학교 입학 이후로 매년 마지막으로 듣는 건 늘 이 노래였으니까. 

Oasis - Don't Look Back in Anger, 2005,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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