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look back in anger
2017년 한 해를 돌아보며 글을 쓴다. 그저 한 해를 돌아보니 맥락을 잡기 어려워 작년의 나와 비교해서 달라진 점 위주로 고민해 보았다.
예전에 비해 고민을 많이 하는 상품기획자가 되었다. 업무 처리 속도는 빨라졌고, 업무의 진행이 더딜 경우 취할 수 있는 나름의 방편들을 개발하였다. 과거보다 업무에서 사심을 덜어내고 대할 수 있었고, 디테일은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고민했다. 계획적으로 업무를 쪼개는 능력은 올랐으되, 그렇게 파편화된 계획에 치여 허덕이기도 했다.
동일한 업무를 한 지 3년이 지났다. 회사-직무를 선택하며 최소한 3년은 투자하며 배우기로 생각했었다. 현재 나의 러닝 커브는 어떤가? 배우고 싶던 역량들을 충분히 함양하고 있을까? 다음 단계로는 어떤 것을 배우면 좋을까?를 2018년에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시간이 없어 고민이 부족했던 한 해를 돌이키며 '시간 관리'를 또 하나의 목표로 삼고자 한다.
프랑크푸르트 출장을 제외한 3번의 해외여행(런던/파리, 홍콩, 다낭)을 여자 친구와 다녀왔다. 매년 7-9번 정도 해외에 나가던 것에 비해 횟수가 많이 줄어든 편이다. 여자 친구와 나는 취향이 제법 다른 편이기에 계획을 세우며 이래저래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평소와는 다른 장소, 다르게 흐르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과정은,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여행의 새로운 매력이었다.
보다 더 알뜰하게 여행 가는 것에 대해 고민하려 한다. 또한 다낭에 다녀오며 '온전히 쉬기 위한 여행'이 얼마나 지금의 내게 절실했는지 알게 되었다. 충분히 쉬는 것,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적절히 배분하여 2018년 여행 계획을 세워야지.
많이 악화되었다. 커피를 늘 달고 살고 있고 수면은 부족하다.
많은 글을 썼고 내 이야기를 더 솔직하게 쓰게 된 한 해였다. 보통의 나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보다는 반 발짝 뒤로 물러나 객관적인 양 말하는 회색분자에 더 어울린다. 올 해는 어찌 되었든 최대한 내 의견을 쓰고자 노력했다. 당연히, 많은 실수들이 있었다. 맨스플레인까지 흘러가지 않으면서 적정 수준에서 내 의견을 늘 개진하고 싶다. 그 문장에 임팩트가 없을지언정 자기 검열을 위해서라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내 생각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브런치에 올린 대부분은 업무, 영화/노래 등 콘텐츠, 마음에 관련된 내 생각을 쓴 글들이다. 특히 '마음'에 관련된 글들은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트레바리'를 통해 마음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은 덕택이다. 내년 1분기에는 고전문학을 중점적으로 읽는 '옛책' 클럽을 시작한다.
'소소한 글쓰기 모임'은 시작한 지 곧 2년이 넘어간다. 2016년에 비해 올 해는 딱 2배가 되는 글을 썼다. (12개→24개). 내년에는 분기별로 10개씩 총 40개 이상의 글을 정리해보고 싶다.
금동이가 떠났다. 앞으로는 관계 맺음에 후회를 남기기 싫다. 그럼에도 남겠지만 말이다.
과거보다 남들의 삶에 신경 쓰는 비중이 많이 줄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더 뿌리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버린 것이다. 덕택에 시간을 구태여 내서 만나는 사람들은, 정말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뿐이다. 건강이 안 좋아지고 많이 바빠지는 바람에 예전보다는 시간을 적게 낼 수밖에 없어 서운함을 느꼈노라 토로하는 친구들도 늘긴 했다. 시간의 절대량은 줄었을지언정 비중이 더 늘어나며,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내가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새삼 그들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친한 친구들이 몇 명 결혼하긴 했지만, 올해 내가 소중히 여기는 친구 둘이 기혼자가 되었다. 결혼에 대해, 그리고 정말 가까운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내년은 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내 스트레스나 고민을 여과 없이 내보여도 되는 걸까. 이해와 배려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어느 시점에 감정을 전달해야 상대가 적절히 소화할 수 있을까. 등등
정치적인 기준은 예전보다 더 명료해졌다. 명료해진 만큼 어려움과 고민은 더욱 늘었다. 과연 말/글만큼 실천으로 옮기는가에 대한 엄중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과 동기들끼리 술을 마시다가 '형은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남자로 태어나 많은 권력을 누린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사람일까. 존재함으로써 범하는 폭력들, 무지하기에 뱉어내는 차별적 발언들. 어디까지를 스스로 용인하고 단단해질 수 있을까. 단단해지는 만큼 사고가 굳는 것은 아닐까.
엄청 더러워졌다. 예전보다 불평을 자주 하고 욕이 무진장 늘었다. 다소 위악을 해야 업무에서 나를 얕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위악이 아니라 내 본성이 본디 악하지 않았나 고민해본다. 관용, 특히나 모르는 사람 혹은 '내 사람'이 아닌 사람에 대한 관용이 많이 줄었다.
호오가 갈수록 분명해진다. 차, 커피, 맥주 등의 음료 중에 좋아한다 자신 있게 말하는 종류가 생겼다. 동아리 시절보다 재즈를 훨씬 더 많이 듣는다. 마초-꼰대에 반항하는 우원재를 좋아하게 되었다. 고전 문학과 고전 미술을 공부하고 싶어 졌다. 시집 선물을 사람들에게 줄 정도로 시를 많이 읽는다. 연대, 페미니즘, 노동, 민주주의, 영화 평론, 금융에 관련된 책들이 많아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전체주의의 기원', 영화는 '몬스터 콜', 연극은 '말뫼의 눈물', 만화는 '여중생A'였다.
최고의 공연은 Sting의 내한공연이었다.
내 안의 몇몇 측면이 비대해진 측면이 있어 얼핏 보기엔 기형적인 한 해였다. 내게 나름의 우선순위가 생겼고, 덕택에 삶을 보다 더 능숙하게 운영하게 되었다고 자평한다. 행복한 한 해였고, 내년에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조금 더 챙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