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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Jan 23. 2018

홍콩과 아일랜드를 향한 나만의 선곡

돌로레스 오리오던(Dolores O'Riordan)을 추모하며

그 나라가 떠오르는 음악

 음악을 듣다 보면 이따금 어떤 나라가 떠오르는 때가 있다. 한 번이라도 방문한 나라라면 음악 덕에 기억을 반추한다고 할 수도 있으련만, 가끔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나라의 정경을 상상하기도 하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출발하는 이러한 심상 여행은 회화에서 출발하기도, 시나 소설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이따금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도 그러한 상상을 돕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익숙하게 방문하는 플랫폼은 여전히 음악이다. 음악을 들을 때는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담백한 심상을 떠올리게 된다. 


 '이 음악이 왜 그 나라를 떠올리냐'라고 묻는다면 답은 가지각색이다. 그 나라 출신 아티스트의 작품이라서, 노랫말 이야기의 배경이 그 나라여서, 때로는 여행에 갔을 때 길거리에서 가장 뇌리에 박혔던 음악이어서. 등등. 가끔은 소설에 등장하는 노래를 찾아 들으며 작중 배경이 되는 나라나 도시를 떠올리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는 주인공 '와타나베'가 '레이코' 여사의 기타 연주를 듣는 장면이 있다. 클래식과 재즈, 락 등 장르를 불문하고 계보의 클래식이라 할 만한 주옥같은 음악들이 이 장면에서 여러 곡 소개되지만.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Antonio Carlos Jobim'의 <Desafinado>이다. 누구에게도 이해를 구하긴 힘들겠지만, 좋아하는 소설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브라질 보사노바를 들으며 도쿄의 겨울을 떠올리는 것이다. 

Antonio Carlos Jobim - Desafinado


홍콩과 중경삼림, <Dreams>

 음악에 마음속 정경을 담아두는 건 평소에는 새벽에 침대에서 청승 떨기에나 좋은 버릇이지만, 홀로 여행을 갈 때에 만큼은 꽤나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오랫동안 차곡차곡 담아둔 노래들을 스마트폰에 한아름 챙긴 채, 여행하는 도중에 틈틈이 꺼내먹겠다는 다짐을 하며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음악을 통해 그리던 머나먼 이국은, 코앞에서 마주할 때는 실제와 꽤 많이 다른 법이다. 그 때문에, 기대하던 BGM으로 충만한 여행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내 여행은 분주하게 음악을 준비한 딱 그만큼이나, 사기를 당했다는 기분을 느끼며 상상과는 전혀 다른 타지를 걸어 다니는 역사의 집합이다. 


 그런 점에서 홍콩은 꽤나 특이하다. 홍콩을 상상하며 고른 선곡들은 21세기 지금의 홍콩에서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20대를 거치며 꽤나 자주 홍콩을 방문했음에도, 아직도 90년대 홍콩영화-천장지구, 영웅본색, 종횡사해, 용형호제 등-를 반복해서 찾아보는 내 취향 탓도 분명히 있으리라.) 홍콩을 방문할 때면 늘 영화 <중경삼림>의 OST를 찾아 듣는데, 메인 주제곡인 'Mamas&Papas'의  <California dreamin'>과 더불어 가장 홍콩에 어울리는 노래가 바로 'The Cranberreis'의 <Dreams>다. 보컬 '돌로레스 오리어던 Dolores O'Riordan'의 몽환적이면서도 신경질적인 음색은 홍콩-특히 90년대- 특유의 적백 네온사인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Dreams>라는 곡 덕택에, 나는 21세기 홍콩에서도 축축하고 번쩍이는 세기말의 홍콩을 떠올릴 수 있다. 게다가, 'The Cranberries'라는 밴드도 덤으로 알게 되었다.  

The Cranberries - Dreams


아일랜드와 크랜베리스, <Zombie>

 <Dreams>를 부른 밴드 The Cranberries는 'U2'와 함께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락밴드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변방의 유럽 국가를 상상하기 위해 나는 기네스 맥주와 얼스터 신화, 'Enya'와 U2의 노래를 소환해야 한다. The Cranberries 특유의 서글픈 노래들과 함께 말이다. 


 영화의 OST로 처음 접한 후 늦게나마 제대로 듣기 시작했지만, 나는 The Cranberries의 노래를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개그콘서트'에서 도입부 일부를 사용한 곡 <Ode to My Family>가 유명해졌다. 개그콘서트에서는 썸남썸녀의 풋풋한 연애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가사를 제대로 읽으면 섬뜩할 정도로 슬픔과 외로움이 잘 표현된 명곡이다. 이렇듯 The Cranberries의 장점은 보컬 '오리어던'의 우울하면서도 호소력 깊은 목소리이다. 그 특색 있는 목소리에 반전과 저항의 메시지가 아로새겨진 서글픈 가사를 덧씌우면 The Cranberries만의 매력으로 변모한다. (아일랜드는 90년대 초까지 영연방 소속의 북아일랜드와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간의 테러와 분쟁으로 가득했기에, The Cranberries의 가사들은 그러한 지역적 특수성이 여실히 녹아있다.)


 반전의 메시지와 슬픔의 정서가 가장 잘 반영된 노래는 밴드의 대표곡 <Zombie>다. 보컬 '돌로레스 오리어던'은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일이 아닌 것에 눈 감는 사람들을 가리켜 좀비라고 외친다. 비극적인 현실을 바꾸려고 생각하지 않는 건 그저 정체된 시체일 뿐이라고 부르짖는다. '오리어던'의 서글픈 목소리와 밴드의 웅장한 사운드, 그리고 담백하고 솔직한 메시지의 콜라보는 테러로 지친 아일랜드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The violence caused such silence who are we mistaken.
But you see, it’s not me, It’s not my family
In your head, they are fighting
- <Zombie> 가사 中 
The Cranberries - Zombie


아일랜드에 테러는 거의 사라졌다. 지금의 그곳은 과거 내가 즐겨 듣던 The Cranberries, U2, Enya의 노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아일랜드에 처음 방문하는 날이면, 나는 <Zombie>가 연주되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더블린 곳곳을 돌아다니며 뮤직비디오에 그려져 있던 IRA의 그라피티들을 찾으려 바삐 눈동자를 굴릴 것이다. 마치 경험하지도 못한 추억을 다시금 찾겠다는 양 말이다. 


물론 그 수탐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을 것만 같다. 지난주부터 출퇴근길 내내 The Cranberries를 듣다 보니, 일주일 내내 홍콩과 아일랜드라는 서로 다른 두 장소를 수십 번은 여행한 기분이 든다. 축축하고 더운 동양의 도시국가와, 춥고 우중충한 서양의 변방 섬나라의 정경을 같은 목소리에 담아준 The Cranberries와 '돌로레스 오리어던'에 대한 내 나름의 팬심의 발로일 것이다. 그 정도면 내겐 충분하다.



The Cranberries의 보컬 '돌로레스 오리어던'은 46세의 나이로 2018년 1월 15일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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