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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Feb 06. 2018

다시 가족에게로 (Remember Me)

영화 <코코>를 보고

변방을 중앙으로

 늘 생각했지만, '디즈니'와 '픽사'는 정말 기가 막히게 이야기를 잘 풀어간다. 픽사의 올해 첫 작품인 <코코>는 멕시코 전통문화인 '죽은 자의 날(Día de Muertos)'을 소재로 한다. 지구 상에 별처럼 많을 흥미롭고 아름다운 소재를 수집하여 능숙하게 엮어내는 상상력과 서사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그저 소재의 신선함으로 치부하기에는, 공인된 이야기 장인 픽사의 수완은 놀랍다. 


 전 세계의 이야기를 물줄기라고 상상해보자. 심하게 말하자면, 멕시코의 전통 축제는 절대 주류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변방'의 매력적인 물줄기를 단숨에 글로벌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어쩌면, 픽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역량은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코코>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월트 디즈니 컴퍼티가 멕시코 '죽은 자의 날'을 트레이드 마크 신청을 하고, 다양한 콘텐츠 상품을 만들려 시도했다는 이야기는 그런 두려움을 코앞에 다가온 현실로 느끼게 한다. 물론 그 시도는 내부의 반대로 해프닝에 그쳤지만, 디즈니/픽사식(式) 이야기 수집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찌 되었든, 이전작 <모아나>가 폴리네시아 민족들에게 비난을 받았던 것과 대조적으로 <코코>는 멕시코 시네마 역사상 최고의 흥행가도를 갱신 중이다.  



두 가지 기억의 방식, 신발과 기타

픽사는 '죽은 자의 날'을 어떻게 풀어낼까. 일 년에 한 번, 죽은 자의 날에는 저승의 망자들이 이승을 방문할 수 있다. 모든 망자에게 왕래가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이승의 누군가가 망자를 추모하며 그의 사진을 제단에 올려놓을 때에만, 비로소 망자들은 이승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널 수 있다. 이렇게 '기억되는 것'은 망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 망자들이 '진정한 죽음'을 맞는 설정도 여기에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오래도록 기억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픽사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 째, 오랫동안 가족들에게 기억되고 추모되는 것. 둘째,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스타가 되어 모든 사람에게 잊히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두 개의 갈림길은 주인공 '미구엘'에게 신발과 기타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신발과 기타의 갈등이랄까


 신발 공방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음악가를 꿈꾸는 어린 소년 '미구엘'. 주인공에게 신발과 기타는 상호 존립하기 어려운 물건들이다. 신발이 고조할머니부터 내려오는 가족의 이어짐을 상징한다면, 기타는 그런 가족에게서 도망간 고조할아버지를 상징한다. 신발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현실적인 책임이었다면, 기타는 가족의 족쇄에서 벗어난 개인의 꿈이기도 하다. 


 책임과 꿈, 현실과 소망, 가족과 개인. 21세기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이분법은 익숙하면서도 꽤 고루하다. '기회가 있다면 꿈을 움켜쥐어야 한다'는 작중 대사처럼, 기타와 꿈은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반면, 그 꿈을 발목 잡는 신발과 가족은 주인공이 극복해야 할 현실로서 작동한다. '미구엘'이 손쉽게 받을 수 있는 고조할머니의 축복을 거절한 채, 고조할아버지의 축복을 받고자 나서는 것이 서사의 핵심이기에 이러한 이분법은 더욱이나 간명하다. 이러한 의도적이고 안일한 이분법은 이야기에 쉬이 몰입하기에 용이하지만, 어느새 진부해지기 쉽다. 그리고 그것이 진부해질 즈음 이야기 장인은 빛나는 솜씨를 발휘한다.



Re(다시) - Member(가족에게로)

간명하기만 했던 이분법은 작품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복잡하게 섞이기 시작한다. 증조할머니는 마냥 음악을 싫어한 사람이 아니라 딸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던 노래를 포기한 인물이었다. 증조할아버지는 그저 꿈을 좇아 가족을 등진 것이 아니라, 그에 후회하고 사과하려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꿈을 움켜쥐라던 세계적인 스타는, 자신의 꿈을 위해 타인의 꿈을 짓밟는 사람이었다. '미구엘'을 물속에 건져주는 사람은 그가 도망치려 했던 그의 가족이었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가족은 '극복해야 할 현실'에서 '돌아가야 할 어딘가'로 변모한다.  


 소외되고 잊히는 것에 대한 망자들의 두려움은, 이러한 가족에 대한 재해석에 일조한다. 이승에 누구도 기억하고 추모해주지 못해 저승의 빈민촌으로 모여든 이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부르고(형, 삼촌, 이모 등) 대한다. 전통적, 배척, 억압의 이미지로 이해되던 가족은 희미해진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돌아갈 수 있는 곳, 사과를 해야 하는 곳, 나를 기억해주는 곳으로써의 가족이 등장한다.

미구엘이 물에 빠지며 분장이 지워지는 순간, 그려져 있던 이분법이 사라진다.


 영화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OST인 <Remember Me>의 변화야말로 단적이다. 모든 사람이 따라 부를 정도의 최고 인기곡은 사실 인기 스타의 노래가 아닌, 한 작곡가가 자신의 딸을 향해 바치는 지극히 개인적인 메시지였다. 가족에게서 벗어나 스타가 되려던 주인공의 '꿈을 향한 노래'는, 이제 가족을 떠났던 아버지의 딸을 향한 뒤늦은 사과로 변모한다. 글자 그대로 다시(Re-) 가족(Member)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메시지로.


영화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OST인 <Remember Me>의 변화야말로 단적이지 않을까. 모든 이가 따라 부르는 최고의 유행가는, 사실 한 작곡가가 자신의 딸을 향해 바친 지극히 개인적인 메시지였다. (이 점에서 영화 <비긴 어게인>의 OST였던 <Lost Stars>와 매우 흡사하다.) 가족에게서 벗어나 스타가 되려던 주인공의 '꿈을 향한 노래'는 사라진다. 그리고 가족을 떠났던 아버지의 딸을 향한 뒤늦은 사과만이 남는다. 글자 그대로 다시(Re-) 가족(Member)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메시지로 말이다. 

 영화는 주인공 '미구엘'이 <Remember Me>를 부르며, 뒤늦은 메시지를 대신 전달하는 장면으로 서사를 마친다. 어쩌면 이 장면을 위해 앞의 90여분의 시간을 할애했을지도 모르겠다. 


Remember me / Though I have to say goodbye
Remember me / Don't let it make you cry
For even if I'm far away / I hold you in my heart
I sing a secret song to you / Each night we are apart

Remember me / Though I have to travel far
Remember me / Each time you hear a sad guitar
Know that I’m with you / The only way that I can be
Until you’re in my arms again / Remembe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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