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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은채아빠 Apr 22. 2023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내 마음대로 책읽기] 수용소의 고통의 경험

누군가 내게 그리스도인이 정말 읽어야 되는 책 몇권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꼭 포함되는 것이 랭던 길키의 <산둥수용소>이다. 2차 세계대전, 중국의 산둥 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저자가,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를 탐구한 책으로, 인간의 내면 깊숙히 숨어 있는 본성을 깨닫게 하고, 그로 하여금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면서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랭던 길키는 자신의 경험을 신학적으로 파헤쳐 보고 있어서 신학생들은 꼭 읽기를 추천하곤 한다.


<죽음의 수용소>는 신경정신과 의사로서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4군데의 수용소에서 3여년을 보낸 빅터 프랭클의 경험담이면서, 그 경험을 통해 저자 스스로 인간의 정신 세계에 대해 탐구하는 책이다. 추천사를 쓰신 분의 말처럼 읽기를 멈출 수 없을만큼 저자의 경험이 너무도 강렬했다. 그렇다고 수용소 경험을 기록한 많은 책들처럼 수용소에서의 견디기 힘든 고난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저자는 수용소 경험을 통해서 인간이 고난과 고통에 반응하는 3가지 단계를 언급한다.


첫번째 단계는 놀람과 충격이다.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음이다. 야간 열차를 타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온 사람들은, 수용소에 들어왔을 때 자신들의 현실을 인정할 수 없으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두번째 단계는 무관심, 또는 무심이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옆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어도, 그것에 대해 무심해 지는 단계이다. 오로지 자신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려 하거나, 물집과 동상으로 가득한 발을 조금이라도 더 낫도록 도와주는 신발을 찾거나, 추위를 조금이라도 막아줄 수 있는 낡은 담요를 얻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 세번째 단계는 비통과 환멸이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비참함에 자신들만큼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돌아간 고향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고통을 견디었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음에 대해 비통해 한다.


저자는 자신의 수용소에서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난뒤, "로고테리피"라는 '정신치료'애 대한 이론을 설명해 준다. 아마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정신질환자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정립한 듯 싶다.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이 가진 희망은 일정한 한계를 정해놓고, 예를 들면 크리스마스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가, 그 시간이 지나가면 극도로 몸이 약해지면서 죽음에 도달하게 된다. 오히려, 미래의 희망과 더불어 오늘의 현재를 보고,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삶을 더 유지시켜 주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약간의 '긴장'이 사람들을 더 활력있게 만든다고 말한다. 아무런 걱정과 근심이 없이 사는 것보다, 일정한 '긴장'이 있는 삶이 더 활력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어쩌면, 아무 문제가 없기를 기도하는 것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그 문제들을 발판으로 더 성숙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의 삶은 아우슈비츠와 비교했을 때는 천국과 같은 삶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긴장'은 언제나 있고, 나름대로의 삶의 어려움도 있다. 이러한 어려움이 없어지도록 바라기 보다는, 이 어려움을 통해서 내가 더 성숙해지고,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실 일들이 무엇일지 묻고 발견하는 시간으로 삼으면 좋겠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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