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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은채아빠 Apr 22. 2023

이덕주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

[내 마음대로 책읽기] 초창기 믿음의 그리스도인

상대적으로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짧기 때문에, 교회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주로 서양의 교회 역사를 대상으로 삼는다. 당연할 것이다. 나의 학생 시절을 생각해 보아도, 초대교회사, 중세교회사, 근/현대 교회사, 그리고 한국 교회사, 이런 수업을 수강했던 것 같다. 교회사 교수님들 가운데 한분만이 한국 교회사를 전공했었고, 다른 한 분의 교수님은 교회사라기 보다는 조직신학 전공이었는데 교회사 수업도 진행하신 것 같다.


많은 교회에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외치는데, 이 책을 보면 한국 교회 역사의 초창기도 "초대교회"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선교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천년전의 초대교회와 한국 교회 선교 초창기의 모습은 여러 부분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 그리고 말씀과 삶의 일치라고 생각된다.


이천년전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은 자칭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타칭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들의 삶의 행동들을 보고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라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 한국 교회 초창기의 그리스도인들도 그랬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종을 해방시키고, 백정을 형제로 부르고,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당시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급진적인 삶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특별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물론 긍정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요즘의 교회는 긍정적으로 "특별함"을 보이고 있을까? 혹은 부정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이고 있을까?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님의 십자가는 믿을 수 있지만, 교회는, 교회의 교인들은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그러니 "가나안 교인"이라는 말도 나오는 듯 싶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다운 복음이 전해지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보여지는 교회일텐데, 그와 같지 않으니 교회 울타리 밖에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다.


지역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들을 보면, 열심히 봉사해서 성공했더라, 기도를 오랫동안 많이 했더니 물질의 복을 받았다더라, 금식을 오래 하면서 기도했더니 병이 나았다더라, 자녀를 위해 100일 기도를 했더니 일류 대학에 들어 갔다더라, 교회를 위해서 봉사를 많이 했더니 하나님이 가정에 필요한 것을 주셨고 자녀들을 형통하게 만들었더라, 는 것이 많은 듯 싶다. 한국 교회의 역사가 150년도 안되었는데, 초창기의 모습이 많이 변해버린 듯 싶다. 에베소 교회에 전해진 예수님의 책망이 오늘날의 한국 교회에도 해당되는 듯 싶다: "너희가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20대 초반의 나는 정말 열심이었다. 그토록 열심이었던 적이 그 이후로는 없었다. 지적인 성장은 이루었겠지만, 순수한 사랑의 모습은 남아 있을까. 한국 교회의 초창기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의 신앙을 돌아보게 한다. 이덕주의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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