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책읽기]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교회
15여년 전, 유학을 간다고 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아가서 추천서를 부탁드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만 해도 교수님들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었지만, 부끄러움과 수줍음을 무릅쓰고 교수님께 앞으로의 나의 꿈을 짧게 나누었었다. 사실 그다지 공부에 탁월한 학생이 아니었음에도 교수님은 기쁨으로 (나는 그렇게 믿는다) 추천서를 써 주셨다. 그리고 5년 후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돈까스를 사주셔서 같이 먹었고, 10년 정도 지나 교수님께서 미국에 오셨을 때, 하루 종일 좁은 차에 앉아서 캘리포니아의 복잡한 도로를 달리며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하고 교제를 나누었던 기억이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교수님이 최근에 신간을 내셨다.
(서평 모드) 조직신학자인 저자는 하나님 나라와 광장신학 (또는 공공신학)에 대해 크게 두 가지의 범주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앞부분은 성경신학적인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 - 아우토 바실레이아 - 를 설명하고, 뒷부분은 조직신학적 인 관점에서 그것을 설명하며, 여러 명의 조직신학자들의 입장을 소개하며 저자의 논지를 구체화시켜 나간다. 성경신학적 관점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형성될 수 없음을 확증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핵심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언급 해나간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 구속의 열매인 그리스도인 개인, 그리고 그 개인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구현됨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를 발현하는 곳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죄인들의 모임인 교회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하나님의 흔적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조직신학적 의미에서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에서, 저자는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가 몇몇의 주요한 조직신학자들을 통해 어떻게 이해 되는지 설명하고, 저자의 주장을 펼친다. 즉, 기독교는 세상을 "변혁"시키는 주체가 아니라 세상과 "공존"해야 함을 말한다. 이는 저자가 말하는 "광장신학", 또는 근래에 많이 논의가 되고 있는 "공공신학"이 주장하는 길과 유사하다. 지역 교회가 울타리 안에 갇혀서, 울타리 밖의 사람들로부터 이기적인 친교 모임으로 치부되거나, 타종교인과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배타적인 교만한 사람들로 여겨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지역 교회 자체가 하나님 나라와 완전히 일치되지는 않겠지만, 교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환경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도록 동기를 유발하는 일에 부름 받은 공동체"(p. 273)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은, 내세의 하나님 나라만을 믿음으로 현재의 고통을 묵묵히 견디어 내면 천국의 황금 길과 거대한 맨션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극단은, "십자군"이 되어서, 타종교의 회당이 지역 사회에 들어오는 것을 몸을 불사르며 막아내고,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전도를 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도 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는 이미 이곳에 있고,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의 어느 곳에서도 발현될 수 있도록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 역할은 한때 유행했던 "고지론"의 주장처럼,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겸손과 낮아짐,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함없는 사랑을 이웃에게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교회가 게토화되어, 일정한 사회적, 경제적 수준이 안되는 사람들은 교회의 문을 열지 못하도록 경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을 향해 닫히지 않는 문을 열어 놓는 것이 교회의 역할,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스승님의 책을 리뷰한다는 것은 사실 객관성이 결여될 수 밖에 없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전반부의 성경신학적 관점의 하나님 나라보다는, 후반부에 집중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반부의 설명이 더 간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저자는 "노정"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사용한다. 어쩌면 그 말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살아가는 과정을 잘 표현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태화의 <하나님 나라와 광장신학>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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