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빈은채아빠 Aug 24. 2021

[내 마음대로 책읽기] 장강명 <표백>

자족하는 삶으로

자살이 20 청년들의 사회에 대한 부당함과 불공정함, 부품으로 취급받는 것에 대한 마지막 몸부림이자 목소리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대 전에는 얼마든지 계급과 계층을 넘어 위로 올라가기가 수월했지만, 오늘날은 그러한  자체가 막혀 있어, 평생토록 좌절을 가진 실패자로 살아가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사회를 향해 "자살 선언" 하며 그들의 행위가 합당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주인공 "" 주인공 "세연"  주변 인물들의 자살을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오히려 그들의 무모함, 그들의 무책임함, 그들의 연약함을 꼬집는다. 주인공 "" 자살 사이트를 통해서, 4  자살한 "세연" 글과, 주변인들의 계속되는 자살을 보면서, 사회를 향한 집단 분풀이를 그만두고, 그들이 놓여 있는 곳에서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도 만족하며 기뻐하며   있음을 말한다.

   읽은 마이클 샌들의 <공정하다는 착각> 맞물려서 생각이 난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계단  높은 위치에 올랐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실패자라고 여기지도 말고,  위치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노력만이 아니라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환경적 유리함 때문임을 자각하고 겸손할 필요가 있음을  책은 말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끊임없이 주장하며, 그런 세상에서    없는 삶을 살기보다는, 그저 죽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이해한다. 지금 사회가 얼마나 불공평하고 불공정한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음으로서 세상이 바뀔  있을까? 소설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살 사이트의 회원이 되고, 자살자의 숫자도 늘어나는 아이러니로 끝을 맺는다. 그들의 단체 행동으로 인해서 세상이  공정해질까? 주인공 "" 아니라고 답을 한다.

성경에는 "자족하는 삶"에 대해서 말한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고, 모든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그 사회는 이미 사회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멋진 신세계>는 모두가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각자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족하는 삶 말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도, 불어오는 시원한 산바람을 느끼면서도, 평범한 식탁에서 가족들과 함께 웃으며 밥 한 끼 하는 것으로도, 사랑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나를 위로해주고 안아주는 것으로도, 감사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남들은 미국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내 삶을 부러워 하지만, 매일 기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고, 미래는 불확실하고, 나이는 들어간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매 끼니때마다 밥을 먹을 수 있고, 가족들과 함께 작은 집에서나마 같이 살고 있어서 감사하다. 여전히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그것은 내가 발버둥 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 하루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면, 언젠가 내게도 생각지 못한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소설의 첫 부분을 읽을 때에는,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지만, 중반부를 지나면서는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였다. 내가 예상한 결말은 아니지만, 주인공 "나"에게 감정 이입이 많이 되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대단한 일은 안 일어나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사는 그 삶 말이다. 장강명의 <표백>을 읽고.

작가의 이전글 [내 마음대로 책읽기] 박완서 <세 가지 소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