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책읽기] 문학은 어려운가
예술의 세계는 대중적이지 않은 것일까. 문학의 세계는 대부분의 대중을 설득할 수 없는 것일까. 세계 3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는 작가가 2024년 노벨 문학상을 받자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 손에 쥐어졌다. 나도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에 살지 않아 동네 도서관을 통해 대출한 <채식주의자>는 작가의 다른 소설, <소년이 온다> <검은 사슴> <흰> <작별하지 않는다>가 주었던 난감함을 훨씬 더 뛰어넘는다. 한국의 한 지역에서 청소년 유해 도서로 지정했다는 것이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을만큼 <채식주의자>는 주제를 발견하기가 난감했다.
책은 3개의 중편으로 구성되었다. 첫번째 "채식주의자"는 주인공 영혜의 남편 이 화자이고, 두번째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가 화자이고, 세번째 "나무불꽃"은 영혜의 언니가 화자이다. 어느 날 갑자기 꿈을 꾼 영혜는 더이상 육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영혜는 철저한 채식을 하게 되고, 그것은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큰 장애물이 된다. 영혜의 채식은 가족의 불화를 가져왔고, 어렸을 적부터 반복되었던 영혜 아버지의 폭력성은 고기를 거부하는 영혜의 뺨을 때렸고, 영혜는 과도로 손목을 긋는다. 화자가 영혜의 형부로 넘어가면서 난감함은 과중된다. 예술가인 영혜의 형부는 영혜를 향한 가족간의 애정을 뛰어넘어 예술의 힘을 빌어 영혜의 몸을 탐하게 되고, 예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포르노는 영혜의 언니에게 발각된다. 영혜는 남편에게 이혼 당하고, 영혜의 형부도 언니에게 이혼을 당한다. 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를 돌보며, 영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친 삶을 되짚는다. 영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결국 죽음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영혜의 채식에 대한 아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어쩌면 아버지의 억압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영혜의 형부의 집착은 예술가의 이름을 빌어온 가면이지 않을까. 영화든 문학이든, 개연성이 결여되면 관객이나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마치 내용과 상관없이 생뚱맞게 ppl 이 등장한다거나, 지나친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지속적으로 보여준다든지 하면서 말이다. 문학가들의 시선에 내가 전혀 닿을 수 없으니,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하기가 꺼려진다. 대학생 아들에게 추천했는데 취소해야겠다. 부커상까지 받았는데, 내가 너무 무지한 것일까.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이기적이다. 영혜의 아버지는 자식들을 억압하며 이기적이고, 영혜의 남편은 자신의 사회적 신분 유지에 급급하며 이기적이다. 영혜의 형부는 처제를 품고 싶어 안달이 나게 이기적이고, 영혜의 언니는 정신병원의 영혜를 돌보면서도 끊임없이 갈등을 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지만, 이기적인 것을 지속하면 결국 관계가 끊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책을 읽고 가만히 앉아 소설을 되뇌일수록, 이해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