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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은채아빠 Dec 04. 2021

김훈 <공터에서>

[내 마음대로 책읽기] 용납, 화해, 용서

나는 아버지와 대화를  기억이 별로 없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미국 와서 사는 13 동안, 한달에 한번 정도씩 전화 통화를 하곤 했는데, 그럴 때도 엄마를 통해서였다. 내가 어렸을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는 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많이 가난했고, 밥해 먹을 것이 없을  엄마는 이웃에서 적은 액수의 돈을 빌려다가 쌀을 사곤 했다. 그런 아버지와의 거리는  멀어졌다.


석사로 영성 신학을 공부했다. 과목 가운데 자신의 10살때의 기억을 일인극으로 보여주는 시간이 있었다. 40여명 정도가 수업에 참여했고, 유학생은 4명 정도, 그중 한국 유학생은 2명이었다. 내 기억속의 10살은 술취한 아버지가 단칸방에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말이다. 그 장면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그들이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 주었다.


김훈 작가의 <공터에서>의 주인공 마장세는 그의 아버지 마동수로부터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일제 시대를 거쳐 해방, 한국 전쟁, 가난을 겪은 아버지 마동수는 가정을 돌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두달에 한번씩 집에 들르기는 했지만, 아들 마장세와 마차세는 그런 아버지에게 별다른 애정이 없었다. 1979년 마동수가 죽었을 때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뒤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괌으로 간 아들 마장세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둘째 아들 마차세에게도 아버지의 존재는 혈육으로 겨우 맺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고도 슬퍼하거나 안타까워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사람에게서 자신이 태어났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 부자는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그들은 외모가 닯아 있었고, 어쩌면 그들의 힘겨운 삶도 닯아 있었다.


김훈 작가의 다른 소설과는 결이 조금 다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체도 부드럽고 쉽게 쓰였고,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삐꺽거리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소설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간의 삶이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하루 하루의 모음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듯 싶다. 매일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가정을 지키려고 발버둥 치기도 하고, 그런 삶 속에서 찾아내고 발견하는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은 아닐까 싶다.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 왔는데, 관계의 단절 보다는 용납과 화해, 용서를  앞세워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부자가 나의 삶과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 한켠이 무겁다. 김훈의 <공터에서>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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