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4

11. 체벌이 필요한 이유

by 조종상

훈육의 중요성

마지막으로 훈육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훈육 방식이 되겠다. 주된 내용은 체벌이다. 그러다 보니 이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조금 조심스럽다. 하지만 육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훈육을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쳐 기름’이라 정의해 놓았다. 아이들에게 품성이나 도덕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쉽게 말하자면, 훈육이란 보편적 측면에서 아이에게 ‘해야 하는 것 그리고 해도 되는 것이 무엇이고 하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행위’라 할 수 있겠다. 이때 부모의 생각처럼 아이들이 잘 이해하고 따라 준다면 훈육에 어려움을 겪을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럴 때마다 부모는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한다.


나는 아이가 부모의 말을 알아듣고 이해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뚜렷이 표현하기 시작할 때 훈육도 함께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생각을 뚜렷이 표현한다는 말은 아이가 말을 잘하는 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아이가 고집을 피우기 시작한다고 하는 바로 그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아이가 고집을 피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바람을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므로 부모는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감안해서 아이와 본격적인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 전에도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해 왔을 것이다. 배고프거나 졸리면 울고 칭얼거리는 게 바로 그런 표현의 일환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때는 요구 사항이 단순할 뿐 아니라 특별히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상황도, 제어해야 할 행동을 하는 때도 아니므로 훈육의 시기라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훈육을 시작해야 할 구체적 시기는 언제일까? 나는 그때가 보통 첫 돌이 지나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는 아이마다 다를 수 있다. 생각건대, 부모와의 대립(?)이 시작되는 시기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부모가 이 시기를 잘 지나야 이후로 아이와의 관계를 원활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

실제 이 시기에 아이와 부딪치며 감정이 상하는 부모들이 많을 줄로 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땐 도서, 인터넷이나 TV 등 각종 매체에 나오는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되지만 그런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적잖이 존재한다. 더욱이 내 아이의 특성은 생각하지 않고 책에서 본 대로만, 어디에서 배운 대로만 훈육하다 보면 기대와 다른 반응이나 결과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아이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게다가 우리가 생활하면서 겪는 일들 또한 정형(定型)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며 역동적이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쉽지는 않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사례로 제시하는 해결책이 어떤 경우에는 매우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이렇게 하세요’라는 방식이 이론처럼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훈육하면서 강한 저항에 부딪칠 때, 아이를 통제해야 할 때, 제멋대로 하려는 아이에게 부모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큰일 날 소리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체벌을 권(?)한다.


체벌이 무엇인가? 체벌은 사전적 의미로 ‘몸에 직접 고통을 주어 벌함. 또는 그런 벌’을 말한다. 꼭 신체적 접촉, 즉 때리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얼차려’라고 하는 방법도 체벌의 방식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나는 체벌이 훈육을 위한 가장 어려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확실한 규칙이 필요하다.



체벌의 재인식

언제부턴가 자녀의 훈육 방식으로 체벌이 터부(taboo)시 되면서 부모들은 대체로 체벌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훈육을 하거나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에게 체벌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오죽하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이 나왔겠는가? 나는 실제 이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이 책이 나올 즈음부터—이때가 시작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그 후로 지금까지 사회적 분위기는 체벌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 같다. 사실 이 책 제목을 두고 나는 농담조로 “그럼, 당연하지. 꽃이 무슨 죄라고?”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실제 그 의미만 따진다면 이 말은 100% 맞는 말이다. 아무 이유 없이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폭력’이다. 하지만 단순히 때리는 것 즉, ‘폭력’과 ‘체벌’은 다르다.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체벌은 바르게만 적용한다면 필요한 훈육 방식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욱이 체벌은 그 의미처럼 처벌의 기능도 포함한다. 아이가 명백히 어떤 잘못을 했을 경우, 그에 대한 적절한 처벌은 분명 필요하다.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사회가 그 나름의 공동체로 유지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각 구성원이 공동의 규칙을 지키고자 노력함에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을 끌어내는 하나의 동인(動因)은 규칙에 뒤따르는 처벌이다. 부조리와 부패가 만연한 사회는 십중팔구(十中八九) 처벌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사회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공의에 따라 공정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라 함이 더 적절하겠지만, 아무튼 처벌이 올바르게 적용되지 않는 사회에 문제가 생기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어떤 이들은 체벌을 단순히 아이의 행동을 고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하면서 체벌이 아닌 방법으로도 아이의 행동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나 아이의 행동을 고치는 것이 훈육의 완성은 아니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훈육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훈육은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행해야 하는 일이다.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고 너그러이 감싸야 할 때도 있지만, 아이에게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책임지는 방법도 가르쳐야 할 때가 있다. 체벌은 단순히 아이를 때리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에 스스로 사리(事理)를 분별하지 못하고, 선악(善惡)과 시비(是非)를 구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부모가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때, 체벌이 적절한 훈육 방식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체벌은 육체에 고통을 가하는 벌로서 부모가 원하는 또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훈육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인데, 이를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사실상 나는 부모가 아이를 훈육하면서 혼낼 때, 자신의 감정이나 언어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보다 합리적인 체벌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적용하느냐다. 이제부터 그 방법을 말하려 한다. 나의 철학을 바탕으로 내가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전문가적 시각에서는 틀릴 수도, 다른 이들은 동의하지 못할 내용일 수도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우리는 보통 무언가를 배우면 그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바탕이 되는 본질이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이 아니다. 따라서 그 형식을 전부로 생각하고 똑같이 따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훈육도 마찬가지다. 관련 전문가들이 어떤 방법을 제시할 때는 그 방법을 제시한 본질적인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바탕으로 하나의 형식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이를 학습한 부모가 본질은 생각하지 않고 형식만을 따른다면 바람직한 습득이라 할 수 없다.

아울러 아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을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잘못으로 간주하거나 고쳐야 할 행동으로 볼 것인가는 부모마다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이때에도 단순히 현상을 보고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현상 이면에서 그 행동이 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체화(體化)될지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아이가 떼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보통 부모라면 어느 정도 아이의 떼를 받아 줄 것이다. 아이니까 떼를 쓰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러다 보면 아이의 떼는 점점 더 잦아지고 점점 더 강하게 표출된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는 ‘아이니까 할 수 있는 떼’에 불과하지만 그 이면에서 아이는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는 방법을 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조금 더 크면 떼를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떼를 씀으로써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켜 온 아이는 성장한 뒤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을 모색할 공산이 크다. 떼라는 의미 자체가 ‘부당한 요구나 청을 들어 달라고 고집하는 짓’ 아닌가. 아이의 떼를 어느 선까지 받아 주고 어느 선에서 제어해야 하는지는 부모의 자유지만 적어도 현상만으로 판단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를 가볍게 생각하고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감당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권(?)하는 체벌은 육체에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실질적 목적은 아이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고, 옳은 것을 배워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며 옳은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게 하는 데에 있다.


부모는 아이에게 사리(事理)와 선악 그리고 시비(是非)를 가르쳐 줄 의무가 있다. 사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부모가 아이와 함께 생활하며 경험하는 모든 상황마다 부모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일들일 것이다. 가르치기도 전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잘하는 아이는 없다.


나는 아이가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할 경우, 먼저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해 준다. 이때는 되도록 부드럽고 따뜻한 말로 하되 그것이 잘못이라는 점을 단호한 어투로 가르쳐 준다. 이때, 아이가 잘 알아듣고 행동을 고친다면 다음에 그 일로 아이를 체벌할 일은 없다. 하지만 보통은 그렇게 말해 줘도 몇 번씩 반복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당연히 그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가 어떤 잘못을 하면, 부모는 어느 때까지 말로 타이르고 어느 때에 체벌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세운 반복 횟수의 한계선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 행동이 무엇이냐에 따라 한 번만 가르쳐 주고 다음에 또 반복할 경우 체벌할 수도 있고, 서너 번을 반복해도 계속 말로만 가르쳐 줄 수도 있다. 이 역시 어떤 상황이고 어떤 행동이냐에 따라 부모가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대체로 부모들은 이것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훈육할 때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일관성이 형식을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본질이 중요한 것이지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형식을 아예 무시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다. 그 대신 체벌의 경고는 첫 번째에 하든, 몇 번째에 하든 명확히 한다. 이는 아이 스스로 다음에 자신이 또 잘못할 경우 체벌을 받는다는 점을 명확히 알게 해주는 동시에 그에 대해 서로 약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체벌을 경고했다고 해서 다음에 잘못을 반복할 경우 무조건 체벌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다. 이 역시 그때 가서 상황에 따라 부모의 판단 아래 적절히 실행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알게 해 주고 다음부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는 것이지 체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가 자신에게 다음에 같은 잘못을 또 하면 체벌한다고 말했는데, 그때 가서 체벌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가 부모를 거짓말쟁이로 인식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는 그 추가적인 용서(?)에 더 큰 행동 변화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경고하지 않은 체벌은 가능한 한 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의 원칙으로 삼아도 좋다. 아이가 체벌을 조금이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면 아이 스스로도 체벌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로 혼내든 체벌을 가하든 아이에게 잘못을 가르쳐 준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가 잘할 것이라는 기대의 표현을 하는 것이 좋다. 단순히 혼낼 때에도, 또는 체벌할 때에도 그때, 그 자리에서 확실히 마무리해야 한다. 돌아서서 서로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감정(感情) 조절이다. 아이의 잘못을 목격하면 부모는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기 마련이다. 이때, 그 당시에 어떤 반응을 보였든, 바로 또는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라도 부모가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 시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랬을 때, 자신의 반응에 감정(憾情)이 많이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아이에게 그 즉시 자신의 반응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사과를 표명하는 것이 좋다. 사과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면, 자신의 감정 표현이 잘못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더불어, 자신도 다음부터 안 그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물론 부모도 그 잘못을 반복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아이와 솔직하게 소통하면 된다. 기본적으로 부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아이에게는 교육이 된다.


angry-2191104_1920.jpg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화내지말고 혼내라.


체벌할 경우에는 가능한 한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면 안 된다. 아이의 행동 때문에 너무 화가 났다면, 그때는 체벌하면 안 된다. 체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의 감정이 이성적이고 냉철한 상태에서, 아이가 체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에서 진행해야 한다. 부모가 감정을 가라앉힌 다음에 체벌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이에게는 체벌이 부모의 감정을 푸는 수단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도 인간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순간적인 손찌검은 하지 말아야 한다. 체벌은 정확한 경고 후에 정확한 사유로 정확히 시행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가 자신에게 주어지는 체벌을 인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앞서 약속한 것을 상기시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며 적정한 강도로 체벌해야 한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그래서 체벌이 효과적이면서도 몹시 어려운 훈육 방법이라고 말한 것이다. 혹 도저히 감정을 가라앉힐 수 없다면 자신의 화난 감정을 아이에게 솔직히 전달하고 일단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 때문에 화가 났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잘못을 인식할 수도 있고, 아울러 부모가 화를 참고 가라앉히려는 노력을 하는 것에서도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혹 아이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더 화를 돋운다 해도 그런 상황에서 체벌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경우, 어떻게든 화를 가라앉힌 다음에 체벌하거나, 체벌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던 것인지 명확히 전달하고 아이에게 피드백(feedback)을 받아야 한다. 이때, 아이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부모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의 대화가 오간다면 모르지만 아이가 그렇지 못할 경우, 체벌이 경고된 행동이었다면 체벌하는 것이 좋다.

체벌의 방법은 부모가 아이의 입장에서 효과적인 방법을 찾되, 되도록 최소한으로 적용해야 한다. 내가 세운 원칙은 이렇다.


첫째, 매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이를 체벌해야 할 경우, 꼭 손으로만 때린다. 나는 사랑스러운 내 아이에게 내 몸의 일부(손)가 아닌 다른 것으로 아이를 체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남자다 보니 힘이나 강도 면에서 체벌의 효과를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니다. 사실 내 손으로 아이를 때리다 보면 나 역시 손이 아프다. 나는 그 아픔을 같이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를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경우는 다를 수 있다. 힘이 약하거나 자신의 손이 너무 아픈 나머지 손으로 충분한 체벌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이 역시 적절한 방식을 택하면 된다.


둘째, 아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부위를 때리거나 기분 나빠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절대 체벌하지 않는다. 신체 부위로 보자면 엉덩이나 손바닥 또는 발바닥이 적절한 체벌 부위라고 생각한다. 엎드려뻗쳐나 앉았다 일어나기 등 다른 방식도 충분히 가능하다. 체벌 방식은 아이와 상의해서 결정하는 것도 괜찮다. 아이가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체벌은 그 자체로도 체벌이 아닐 뿐 아니라 바람직한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요는 아이가 자신의 자존감을 바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더 좋은 방향으로 행동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어린 나이일수록 체벌을 하는 이유와 체벌에 대한 마음가짐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최소한으로 하되 체벌할 때는 아이가 신체적 고통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음이 아파서, 마음이 안 좋아서 대충하거나 약하게 해서는 체벌의 효과를 볼 수 없다. 체벌은 그냥 겁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는 형식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할 때, 다시는 그 잘못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는 하나의 훈육 방법이다. 아이가 체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누군가는 어린 나이에 아이에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심어 주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내 대답은 당연히 ‘옳다’이다.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이고 강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다르지만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아이가 느끼면 절대 안 되는 감정은 아니다. 더욱이 훈육의 과정에서 체벌이 주는 두려움은 안 좋은 감정이 아니다. 문제는 이 두려움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체벌에 대한 두려움은, 적정 수준에서 느끼고 완전히 해소한다는 전제 아래 훈육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나는 이 시기의 아이와 부모가 친구처럼 허물없고 편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편한 감정 이면에 기본적으로 아이가 부모를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 무서움이 사랑과 존중 속에서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그런 느낌 자체가 안 좋은 것은 아니다. 물론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이나 무서움은 절대 안 된다. 계속 얘기하지 않는가? 무엇이든 적당해야 한다고. 체벌할 경우 강도나 때리는 횟수는 부모가 알아서 정할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가 자신이 받아야 할 체벌이라고 느낄 수 있는 수준까지이다. 이를 과하게 벗어나는 순간 체벌은 폭력이 된다.


넷째, 체벌은 나이를 정해 놓고 그때까지만 하면 된다. 한계 나이는 부모가 판단하면 되는데 나는 8세 이전, 즉 7세까지만 적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체벌을 활용한 훈육의 시작은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고 본다. 어릴 때는 어린 수준에 맞게 체벌하면 된다. 아이가 말귀를 알아듣고 고집이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적절한 체벌로 훈육이 시작된다면 7세까지 아이는 기본적인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개개인 또는 가정마다 다른 경험과 특성이 작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생활을 전제로 했을 때, 체벌을 바르게 수행하고 아이가 확실히 소화—이해하고 받아들이는—할 수 있도록 훈육이 끝까지 잘 이루어진다면 이 확신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 경우, 8세부터는 진솔한 대화만으로도 훈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아이의 내면에는 사리를 분별하고 선악과 시비를 구별할 줄 아는 품성과 도덕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 후에도 꼭 체벌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는 있다. 그때는 또 그에 맞게 체벌하면 된다. 하지만 적어도 그 경우의 수는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내가 아이의 이해를 언급하긴 했지만 이 시기, 즉 7세 이하의 아이가 부모의 훈육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무슨 잘못을 해도 이해할 수 있게 말로 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시기 아이는 왜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이성이 완전히 자리 잡은 때가 아니다. 이성보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본능이 더 강한, 말 그대로 그냥 어린아이일 따름이다. 이런 아이에게 이성으로 부모의 훈육을 이해하길 바라는 것은 잘못된 기대이자 욕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 시기 훈육은 아이를 이해시키는 교육이라기보다는 아이가 자신의 본능을 제어할 수 있게 하는 훈련으로 이해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되고,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다 적절한 시기가 되면 아이가 궁금해하며 질문할 날이 온다. “왜요?” “왜 그러면 안 되죠?” “왜 그래야 하는 거예요?” 나는 이것을 아이가 이성으로 부모의 훈육을 이해할 시기가 시작되었다는 신호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때부터가 정말 말로만 가르쳐도 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미 자신의 본능을 제어할 능력을 키우게 된 아이들에게는 말이다. 아이마다, 가정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이 시기가 대략 6세에서 8세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래서 체벌이라는 훈육 방식은, 그릇된 방법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아이의 습성이 더 깊이 체화되기 전 가능한 한 일찍 시작하고 이 시기쯤 그만 두면 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매로는 안 되고 구슬려야만 한다.”라고 말하는 부모도 있고, 아이들 중에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제어가 안 되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는 모두 훈육 및 체벌을 제때 시작하지 못한 이유가 크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체벌을 활용한 훈육은 ‘너무 빠른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만큼 이른 시기에, 적절한 수준으로 시작함이 좋다.


체벌 때문에 아이가 부모를 무서워하거나 혹은 미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체벌을 꺼릴 필요는 없다. 아니, 그러면 안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평가를 듣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체벌은 아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알게 하고 그 대가를 치르게 함과 동시에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는 하나의 훈육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이지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활용하는 일상의 양육 방식이 아니다. 따라서 평상시 아이가 충분히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달리 말하면, 아이를 충분히 사랑해 주는 것이 기본이고, 아이가 명백히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만, 처벌의 의미와 함께 다음부터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체벌을 활용하면 된다는 얘기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 표현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보통 이 시기 아이들은 상황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거나 평가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따라서 부모가 어떤 경우에는 좋고 어떨 때는 싫으며, 또 어떨 때는 재미있는 사람이고 어떤 경우에는 재미없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부모의 다양한 모습 중 어떤 모습이 아이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느냐의 문제지, 아이의 한마디 평가가 부모의 전체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드물지만 어떨 때엔, 아이가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자신에게 잘해 주는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를, 또는 친구 엄마, 아빠를 더 좋아하며 그들이 자신의 엄마, 아빠가 되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근본적인 측면에서 아이의 감정이나 표현은 당연히 눈여겨보고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 자신이 바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전제하에, 부모가 아이의 평가(?)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나이를 먹어도 부모가 되어 보지 않는 이상 자녀가 부모의 깊은 뜻(?)을 제대로 알기란 어려운 일 아닌가?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육아 철학이다. 바른 가치관과 교육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세운 육아 철학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기본이다.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보편타당하고 부모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방식이라면, 그리고 어떤 경우라도 꿋꿋이 실천해 나갈 수 있고 효과적이라면 그렇게 하면 된다. 다만 단순히 체벌을 폭력으로 정의하거나 체벌은 무조건 안 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인간은 선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아이들 역시 다르지 않다. 성선설과 성악설 중 무엇이 맞는지는 차치하고, 우리 안에 내재된 선과 악을 모두 인정하고서 아이를 훈육하는 데에 필요한 방법을 선택하되, 부모 자신의 부족한 부분도 잘 감안해 적절한 방식으로 훈육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훈육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모에게 아이는 매우 소중한 존재다. 그 귀한 존재를 뱃속에서부터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낳고 어떻게 양육해야 할까? 모든 부모의 고민일 것이다. 부모라면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부모의 자질을 발견하고 조금 더 담대하고 능동적인 부모가 되려 노력해야 한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많이 부족한 아빠다. 내가 좋은 부모여서, 좋은 아빠여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나름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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