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인맥은 재능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인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삶을 시작한다. 가족, 친척, 친구, 선배, 후배, 동료 등으로 확장되는 타인과의 관계는 다양하고 때론 복잡하기도 하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요즘에는 ‘혼밥’이니 ‘혼술’이니,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먹는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가 유행어처럼 인구(人口)에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은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관계를 바탕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관계를 상당히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를 인맥으로 이해한다. 우리 사회가 인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람이 재산’이라는 말이나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그뿐인가? 특별히 어떤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친분 있는 사람이 많은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를 자랑거리로 여기는 사람도 물론 적지 않다.
나는 이런 인맥과 관련된 말이나 사람들의 인식이 틀렸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실제 이렇게 생각할 만한 일들, 즉 인맥의 도움을 얻고 혜택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런 인식이 권장되어야 할 가치는 아니라고 믿는다. 특히나 물질로 대변되는 피상적 목적을 위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피상적 목적이 인맥 형성의 주요 동기가 되는 경우, 인맥을 통해 얻는 혜택이나 이익이 어느 정도든 이런 인식은 결국 사람을 수단화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꼭 사람을 수단화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겠는가? 어차피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는 존재니까 도움을 주고받을 사람이 많으면 좋은 일 아닌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반문도 일리는 있다.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사람이 순수하고 무결하다면, 아니, 선하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순수하지도, 무결하지도 않다. 선하기만 한 존재도 아니다. 인맥 때문에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만 또 인맥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 얽매일 수도 있다.
인맥으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인식이 퍼져 있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나에게만 국한되는 얘기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어찌 나 하나로 끝날 일인가? ‘나’가 ‘너와 함께’가 되고,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이는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결코 도움이 안 되는 인식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건이나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 일명 장충기(전 삼성 그룹 미래전략실 사장) 문자 사건 모두 잘못된 인맥 활용의 예다.
인맥 자체를 문제 삼으려 함이 아니다. 인맥을 조금 더 진실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자는 얘기다.
어떤 이유로든 인간을 수단화하는 인맥 형성을 권장하고 조장하는 사회에서 순수한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를 맺고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 실제 이런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그 대상에게는 결코 기분 좋을 일이 아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대상이 된다는 말이니 이 역시 씁쓸하긴 매한가지다.
사실 이런 마음은,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이다. 더욱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은 없을 터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관계를 맺게 될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혹시 해를 끼치진 않을지를 생각함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극히 자연스러운 사유다. 문제는 오해다. 인맥, 즉 관계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거나 관계를 수단으로 인식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 무엇이든 과하면 문제가 된다.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더욱이 인간은 수단이 아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관계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 역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 쉽지 않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데 남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힘들어도 그래야 한다. 그래서 노력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올바른 인맥을 많이 구축함은 재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아는 사람을 늘리고 관계의 범위를 확장함이 재능이 될 수는 없다. 물론 누군가는 이 또한 능력이라 하겠지만 그런 관계 형성 기술(?)을 재능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직업 활동에 따른 공적 관계를 제외하고, 나와 맺어진 그리고 맺어지는 이런저런 사람들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까?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해야 할까? 우리는 살면서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능동적이건 수동적이건, 어떤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에 관계에 대해 자신의 철학을 바르게 구축함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관계의 기본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정오(正誤)의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1.
관계의 뿌리는 정의(正義)여야 한다. 여기서 정의라 함은 불의(不義)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즉 불의가 아니면 되는 것이다. 정의라는 개념을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상식 선에서 틀리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면 족하다. 따라서 그런 마음가짐이 없는, 상식을 벗어난 관계인 듯하면 빨리 청산해야 한다. 옳지 않다 생각하는 관계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 관계로 인해 어떤 혜택을 얻는다 해도 과감히 털어 내야 한다.
2.
관계의 줄기는 진심이어야 한다. 관계는 정의를 바탕으로 진심으로 대할 때 비로소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상대방은 내 마음과 다를 수도 있다. 진심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나를 속일 수도 있다.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이런 관계도 끊어야 한다. 접붙이기도 서로 맞아야 가능하다. 그 매개가 바로 진심이다.
3.
관계의 열매는 선(善)이어야 한다. 서로가 좋은 마음으로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관계는 쌍방향이다. 나만 좋아서도 안 되고 상대방만 좋아서도 안 된다.
관계를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하고 싶은 만큼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지, 사람이 재산이라 하니까, 인맥도 재능인가 싶어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 관계를 애써 만들거나 유지할 필요는 없다. 너무 매정한가? 불의한, 진실하지 못한, 나만을 위한 관계 형성이, 그런 관계 유지가 더 매정하다.
관계적 감정과 태도라 할 수 있는 사랑과 우정, 관심과 친절은 존재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상대방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노력할 때 그 빛을 발한다. 여기서 수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감당할 수준만큼 관계가 맺어지고 인맥이 형성되는 것이다. 인맥의 질은 총량이 좌우하지 않는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로를 위한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때때로 방송에 노출되는 연예인의 인맥 관련 내용, 현실 속 관계의 어려움. 관계와 관련해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진실하지만 냉철하게, 노력하지만 얽매이지 않는. 인맥에 대한 바른 철학으로 관계에 주체적인 사람이 되어 봄은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