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오십 보와 백 보는 다르다.
선거철이다. 선거일이 바로 코앞(내일)이고 심지어 사전 투표일은 지나기까지 했지만, 이 글은 선거 전에 읽히는 게 나을 듯해, 늦은 감에도 불구하고 글을 올려 본다. 특별히 오늘은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고 조금 전 공동 합의문도 발표되었다. 실로 역사적인 날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겠지만 시작은 좋아 보인다.
이런 변화를 이끈(?) 주체가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점에 국민 다수가 동의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듯하다. 나 역시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과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이제는 우리도 이에 걸맞은, 바람직한 정치 및 사회 철학을 구축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선거철만 되면 흔히 듣는 얘기 중에 오십보백보라는 말이 있다.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 “뽑을 사람이 없다.” 이런 의미다. 흑색선전 혹은 네거티브가 도를 넘으면 사람들은 보통 그 진위를 따지기 전에 먼저 피로를 느낀다. 그러다 보니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투표는 물 건너가는 경우가 많다. 투표를 하지 않거나 그냥 아무나 선택하는 일도 일어난다. 물론 이를 노리고 일부러 그런 선거 전략을 꾀하는 정치 세력도 존재한다. 그래도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이가 정치에 눈을 뜨고 세밀한 관심을 기울이는 듯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오십보백보는 『맹자』의 「양혜왕」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그 이야기를 잠깐 만나 보자.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양혜왕이 어떻게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지 묻자 맹자가 왕에게는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이라며 나라의 부강에 대한 관심을 은근히 질책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전쟁에 나간 병사 중에 한 병사는 100보를 도망치고, 또 한 병사는 50보를 도망쳤는데 50보 도망친 병사가 100보 도망친 병사를 보고 겁이 많다고 비웃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양혜왕이 100보 도망친 병사나 50보 도망친 병사나 모두 마찬가지 아니냐고 하자 맹자는 모든 왕이 부국강병을 이야기하는 것은 도망친 병사들과 같으니 오로지 왕은 (부국강병에 힘을 쏟지 말고) 인의로만 정치를 펴야 한다고 설파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오십보백보를 ‘조금 낫고 못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라 설명하고 있다.
위 고사에서나 사전이 담고 있는 정의에서 알 수 있듯 이 말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경우에 쓰면 좋을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잘못 쓰이면 어떤 사안을 양비론(兩非論)으로 흐르게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용어가 되기도 한다. 실제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똑같다고 봐야 할 경우도 있겠으나, 분명 차이가 있는데도 이 용어를 이용해 같은 수준으로 치부함으로써 구분해야 하는 사안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서는 적잖이 일어난다. 물론 이 말을 어떻게 쓰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그 대표적 분야가 정치, 그중에서도 선거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국민이 나라의 일꾼을 직접 뽑는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선거라 함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때문에,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선거 풍토 때문에 이 생각을 논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적 사례 혹은 그 외 다른 분야에서도 이 고사성어를 선거에서처럼 민감하게 인식해야 할 일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보편적으로 다른 분야가 선거, 즉 정치만큼 대중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정치 분야에서는 왜 이 말을 민감하게 인식해야 하는 것일까? 조금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정치 전반에 대해 대중은 왜 이 고사성어를 민감하게 인식해야 하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 이 고사성어가 양비론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양비론은 제삼자로 하여금 그 사안에 관심을 끊고 멀어지게 만들거나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섣부른 판단을 유도하는 작용을 한다. 정치는 우리 일상과 매우 밀접하고, 우리 삶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섣부른 판단으로 낭비해서는 절대 안 되는 분야다.
정치에는 인간의 모든 욕망이 응집되어 있다. 권력욕, 명예욕, 금전욕은 기본이고 이런 욕구 내면으로 들어가면 개인의 사정과 관계에 따라 얽히고설킨 수많은 또 다른 욕망들이 마주하고 있다. 더욱이 그 직(職)의 쟁취 방식이 일반의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이 분야의 관계자들, 즉 정치인에게는 일반 대중에게 들이미는 잣대와는 확실히 다른 잣대를 사용해야 할 필요가 분명 존재한다. 조금 더 세밀하고 조금 더 엄격해야 하는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나라의 일꾼을 선택하는데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으로 판단해 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답이 없어지는 것이다. 먼지(흠)가 1개인 사람과 먼지가 10개인 사람을 오십보백보라며 같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어떤 일꾼을 뽑아야 하는가? 1개와 10개는 차이가 많이 나니까 이런 경우를 두고 양비론이 오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현실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 일반의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방법으로 이 직을 쟁취하려는 사람들의 교묘한 전략이 있기 때문에 먼지 1개와 먼지 10개가 똑같은 취급을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사회에 미치는 폐해의 측면에서 어떤 이의 먼지 1개가 다른 이의 먼지 10개와 같은 크기인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럴 경우에는 각 먼지에 비중을 정해 전체 크기를 판단하면 될 일이다.
먼지 9개와 먼지 10개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오십보백보라는 틀 안에 놓일 것이다. 그럼, 먼지 9개와 먼지 10개가 경쟁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엇비슷하니까 그냥 단순히 이미지를 좇아 끌리는 대로 뽑으면 될까?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먼지 9개와 먼지 10개가 경합하면 먼지 9개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선택에는 다른 요인도 작용한다. 당연히, 먼지 외 다른 요소에도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으로 먼지 9개 대신 먼지 10개를 선택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선거권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올바르게 활용해야 한다.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그냥 아무에게나 주어서는 안 된다. 기준이야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똑같은 사람들 중에서도, 뽑기 싫은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라도 더 나은 사람, 하나라도 덜 나쁜 사람을 뽑아야 한다. 다른 분야는 접어두고서라도 정치(선거)에서만큼은 오십보백보를 조금 더 세밀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오십 보와 백 보에는 엄연히 오십 보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