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madland, 2020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은 노매드의 길을 택한다. 오랜 세월 함께 했던 남편이 떠나갔고, 그와 함께 오랜 세월 함께했던 도시도 전과는 다르기에 떠나기로 했지만, 그 첫걸음은 왠지 처연하게만 보였다. 첫 장면부터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관객을 압도했다. 순식간에 이야기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훌륭한 연기가 영화가 시작해서부터 끝날 때까지 가득했다. 심지어는 그것이 연기가 아닌 원래 자신의 삶이었던 것처럼, 주연인 그녀는 물론 조연으로 출연한 비전문배우들까지도.
집이 없는 것과 거주할 곳이 없는 것은 분명 다르지만, 단단한 지붕과 벽이 없는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그들끼리는 유쾌하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인적인 요소들, 비인적 요소든 펀이 가는 길에 언제나 시련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펀은 포기하지 않는다. 주저앉지 않는다. 시린 추위에 이불을 몇 겹을 덮고서라도 살아가고자 한다. 영화는, 카메라는 관찰자의 태도를 취한다. 노매드의 삶에 깊게 관여하거나 이입하지 않는다. 캠핑카라는 좁은 공간에서의 촬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거리를 유지한다. 대신 그런 펀을, 관객을 위로하는 건 펀이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고, 인간이 의도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대자연이다. 펀은 듣지 못할 배경음악도 크게 한몫을 한다. 비싸거나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서로의 물건을, 도움을 주고받는 이들의 모습,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대신, 언젠가 길 위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며 희망을 말하는 모습에서 그러하고, 지붕과 벽으로 가로막았더라면 보지 못했을 그 광활한 자연이 그러하다.
길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애초에 그런 선택이 피치 못했을 상활을 만들지 않았어야 할 시스템에 대해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차치하기로 하고. 돈과 시장의 원리에 휘둘리지 않을, 정해진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리기만 하지 않을, 때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여유를 잊지 않을 삶을 살겠노라 속으로 되뇌었다. 딱히 후대에 남길 대업을 달성한 것도 아니고, 오늘 하루 별 의미 없이 지나갔던 것 같은데, 행복이란 게 삶이란 게 그렇게 꼭 대단한 것만은 아니더라. 효율을 중시하며 다 똑같이 생긴 상자 안에 살고 있지만, 얼핏 비슷한 캠핑카들인 것 같지만, 그 삶의 모양은 모두 다르더라. 당연히 그 삶의 모양도 다를 것이고, 그래서 그 삶이 지나온 자리도 다를 것이다. 인간이 어찌하지 못할, 이렇게 저렇게 퇴적되고 침식된 돌의 모양처럼. 너무 정해진 틀에 나를 옥죄지 말고 흐르는 물에 내 몸을 맡길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맞고 저것이 틀리다가 아닌, 각자의 선택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출발한 날과 장소는 모두 제각각이지만 지나는 길 위에서 다시 만났다고 해서, 이곳으로 다시 왔다고 해서 제자리에 머무는 것은 결코 아닐 테다. 우리의 지나온 흔적을, 나아갈 길을 응원하며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합니다. 언젠가 다시 만납시다.
I’ll See You Down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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