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Widow, 2021
한 해가 시작되고 7월이 되어서야 마블의 첫 영화가 개봉한 것도 새삼 놀랍지만, 마블에서 낸 <어느 가족>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1995년을 배경으로 하는 <블랙 위도우>는 <어벤져스>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서 가볍게 언급되곤 했던 나타샤(스칼렛 요한슨)의 과거를 다룬다. <블랙 위도우>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2014)의 서사와 유사하다. <윈터솔져>는 하이드라라는 나치의 잔존세력을 다뤘다면, <블랙 위도우>는 구소련의 잔존세력인 레디룸을 다룬다. 첩보요원으로서 알렉세이(데이빗 하버)와 멜리나(레이첼 바이스)는 위장결혼을 하고 위도우로 길러질 나타샤와 옐레나(플로렌스 퓨)와 가짜 가정을 이뤄 오하이오주에서 지낸다. 김이 새는 건 1995년이라는 시점이 냉전이 이미 끝나고도 3년이나 지난 시점이라는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그것의 흔적까지 모두 사라졌기야 했겠느냐만 굳이 큼지막하게 화면을 채운 1995라는 숫자가 설득력이 없다. 3년이라는 시간은 나타샤네 가족이 가짜였든 어쨌든 가족으로서 보낸 시간이기도 하다. 피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3년 간 함께했던 시간과 그간 쌓인 관계와 감정들을 조명한다. “나도 당했다.”라며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던 미투 운동으로 밝혀진 하비 와인스타인의 추악한 모습. 레드룸의 수장 드레이코프(레이 윈스턴)의 외모는 그를 떠오르게 한다. <007 문레이커>(1979)의 장면을 굳이 가져와선 3년 만이 지났으나 그것들을 과거의 것으로 쓸어내리는 인상을 준다. 단 3년이 아닌 꽤 긴 시간이었음을 말하는 것 같다. 그 3년 간 가짜로 시작했으나 어느새 진짜 가족이 되었던 “어느 가족”의 이야기처럼. 그렇게 첩보물로 시작한 영화는 가족으로 대표되는 관계에 대해 말하는 드라마가 되어있었다.
페이즈의 초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뛰는 헐크를 다스리는 모습은 시리즈에서 나타샤의 위치를 대표하는 모습이라 생각한다. 나타샤는 그렇게 주인공들의 곁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와 붙여놓아도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잘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마블의 세계관에서 각자의 캐릭터가 맡고 있는 역할이 조금씩 달랐다. 토르는 유쾌하고 경쾌한 액션을, 캡틴 아메리카는 슈퍼 히어로로서의 철학을 다뤘다면, 나타샤는 개인의 서사와 감정이었다고 본다. 문제는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 온 결과라기엔 <블랙 위도우>는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토르처럼 신적인 존재도 아니었으며, 헐크처럼 초능력이 있던 것도 아닌 나타샤의 서사에서 액션은 <본 시리즈>의 것을 떠오르게 한다. 부다페슈트에서 나타샤와 옐레나가 처음 만나 겨루는 합이라던가, 태스크마스터와 벌이는 카체이싱은 긴장감도 넘쳤다. 다시 문제는, 나타샤의 서사와 따로 노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블랙 위도우>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24번째 영화이며, 떠나는 나타샤를 기념하는 마지막 영화다. <엑스맨> 시리즈의 <로건>(2017) 정도 되는 역할이었을 거란 말이다. 다시,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캡틴 아메리카의 장례식에 비하면 그녀의 마지막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무려 3시간을 투자해 모든 인물들을 출연시킨 영화에서도 비중이 적었던 나타샤였다. 그런데 심지어 단독 주연작에서 겨우 묘비만 짧게 비추고 끝이라니. 오랜 세월 시리즈를 함께 해 온 그녀의 팬들에겐 기만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유니버스에서 나타샤 로마노프의 퇴장을 밀린 숙제처럼 서둘러 치운 느낌이다. 아니, 끝까지 이야기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조연으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고 퇴장했다고 봐야 하는가. 아쉽다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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