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use of Us, 2019
소방관이나, 우주비행사나, 과학자 같은 꿈은 너무 오래전 이야기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처럼 어렵고도 간절한 것이 있을까. 열두 살의 나이가 가장 많은 세 아이의 집 지키기 프로젝트를 지켜보는 동안 뭔지 모를 것이 마음을 쿡쿡 찔러댔다.
윤가은 감독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제사 준비로 바쁜 엄마를 대신해 콩나물을 사러 여정을 떠난 <콩나물>(2013)의 다섯 살 난 보리(김수안) 이야기는, 친구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선과 윤, 지아(설혜인)의 <우리들>(2015)로 나아갔다. <우리들> 이후 4년 만인 <우리집>은 <우리들> 이야기의 확장이기도 하면서, <손님>(2011)의 확장이기도 하다. 어린아이 한 명의 여정으로 시작해, 어린아이 세 명의 연대를 담더니, 그들이 속한 울타리에 대한 얘기를 했다. 어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윤가은 감독의 우주에서 펼쳐질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까.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집>을 보는 내내 <손님>이 떠올랐다. 씩씩거리며 카메라 앞에 등장한 자경(정연주)은 아홉 살 난 기림(송예림)과 나루(이지우) 남매가 있는 집으로 향한다. 남매의 엄마에게 화가 난 것이 있었던 그는 시간이 지나며 남매에게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자경은 기림, 나루 남매의 집에서 위로를 받고 나온다.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나온다. 불청객으로 등장한 자경은 아이들에게 “모르는 사람한테 절대 문 열어 주지”말라고 한다. 나루가 “근데 언니는 누구야?”라고 물으니 자경은 “모르는 사람.”이라 답한다.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 없으니 모르는 사람이라 둘러댔지만 왠지 자경은 남매네 집에 손님으로 자주 찾아갈 것만 같았다. 왠지 모르게 자경과 기림, 나루는 가족이 된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겼었다.
숨죽이고 부모님의 말다툼을 들어본 적, 나만 있을까. “좋은 기회 다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또 희생하라고?” “설거지 한 번이나 해봤어?” 영화가 시작하고 아직 화면에 아무것도 등장하지 않았을 때, 조용히 유리 소재의 밥그릇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긴장한 듯한 숨소리가 들려오고, 초등 5학년인 하나(김나연)가 가족들이 먹을 아침밥상을 차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말다툼을 하는 엄마 아빠에게 “엄마, 아침밥 먹어. 아빠도 밥 먹자.”라고 한다. 출근하는 엄마를 돕는 기특한 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어 들려오는 엄마의 말, “왜 시키지도 않은 부엌일을 해.” 흔들리는 하나의 눈빛. 화면은 어두워지고 <우리집>의 제목이 나오지만 여느 영화처럼 사운드가 꺼지지 않는다. 다른 배경음악이 깔리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부모님은 아직 못다 푼 분을 서로에게 던지고 있다. 이런 하나의 아침은 대체 몇 번이나 반복된 것일까. 하나네 부모님 수진(최저인)과 민호(이주원)가 싸우는 이유는 너무도 흔한 것이었다. ‘바빠서.’ 너무 바쁜 나머지, 그 바쁜 삶에 치여 가족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싸운다. 사실 화살을 서로에게 겨눌 게 아닌데, 다른 이에게 겨눌 수 없어 서로에게 겨룬다. 그리고 그 싸움의 불꽃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튄다.
하나는 그 불꽃이 튀어 집이 불에 타버릴까 걱정한다. 불이 번지기 전에 불씨를 꺼뜨리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보고자 한다. 그렇게나 바쁜 부모님의 일들 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라도 덜어주기 위해 ‘부엌일’을 한다. 직장에서 바빴더라도, 집에 와서 그렇지 않다면 안 싸우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바쁘지 않으면 화목해질 거란 마음에. 학교에선 방학을 맞이하며,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선행상을 시상한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선행상은 하나에게로 돌아간다. 상을 받았으니 용돈을 달라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거나, 평소에 갖고 싶었던 걸 사달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하나는 가족여행을 가자고 한다. 열두 살의 나이도 어리지만, 더 어렸을 때에도 부모님이 다퉜었는데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에 사이가 좋아졌다는 기억 때문이다. 수진과 민호는 다시 한번 바쁘다며 하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하나는 여느 때처럼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꼼꼼하게 구매할 것을 메모까지 해오는 것이 초등 5학년생의 야무 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 그런 하나의 눈에 유미(김시아), 유진(주예림) 자매가 들어온다. 유미 역시 하나처럼 장을 보고 있는데 어린 유진이에겐 마트가 그렇게 재밌는 놀이터일 수가 없다.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유진은 이내 유미의 손을 잃어버리고 만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하나는 그런 유미를 발견하고 유진을 찾아주고자 한다. 마트에서 구매한 것들을 품에 한아름 안고서. 야속하게도 그 동네엔 오르막길과 계단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 오르내림의 반복에도 하나는 짐을 내려놓을 수 없다. 유미 찾아 삼만 리를 관두고 놀이터에 있던 유진이에게로 유미가 온다. 언니 손을 붙잡고 가던 유진이는 놀이터 모래에서 찾은 자그마한 소라껍데기를 선물이라며 쥐어주고 간다. 유진이가 하나에게 건넨 소라껍데기는 너무 작아서 차마 귀에 대고 바닷소리를 들어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조금 더 컸더라면 분명 귀에 가져다 대고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소라껍데기를 귀에 댔을 때 바다의 소리가 나는 건 소라 안에서 공기가 울리는 소리다. 한쪽 면이 막혀있으니 마치 파도처럼 왔다 가는 것처럼 들릴 뿐이다. 놀이터 모래에 소라껍데기가 있던가? 괜히 집 앞에 있는 몰이 터를 뒤져봤다. 유진이는 왜 하나에게 소라껍데기를 줬을까.
그렇게 하나와 유미, 유진 자매와의 관계는 시작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는 언제나 한아름 짐을 들고 다닌다. 요리를 하기 위한 장바구니가 그랬고, 가족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하나만의 비밀 상자가 그랬고, 의도치 않게 빌려온 책들이 그랬다. 부모의 불화는 어린아이들에게 부담이 되고 짐이 됐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너무 일찍 안게 된 하나는, 부모의 애정이 고픈 하나는 유미와 유진이의 엄마 역할을 자처한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에서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 린다. <손님>에서 기림은 아홉 살의 나이에 집안일을 이미 다 하고 있었고, <콩나물>의 다섯 살 소녀 보리는 엄마를 대신해 시장으로 향한다. <우리들>에서 역시 고사리 손으로 김밥용 김에 밥을 꾹꾹 펴 바르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와서, 바쁘지 않아서 원할 때 같이 있을 수 있고, 싸우느라 기분이 상해 밥을 거르지도 않으니 하나는 집에서의 결핍을 자매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다. 하나가 그것을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저 친구처럼 함께 노는 것일 수 있지만, 마냥 그렇게만 보이진 않는다.
도배장 부모를 둔 유미와 유진이는 상자를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다. 갖가지 장난감 대신 늘 주변에 있던 벽지를 가지고 놀았던 것이 그 시발점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이 꾸민 상자는 모두 텅텅 비어있다. 색색의 포장지로 덮고, 알록달록 색을 칠하기도 하지만, 바쁜 부모님과 함께할 수 없는 집. 직업 특성상 이사를 자주 다니며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손님조차 뜸한 집이기에, 유미와 유진이는 외롭다. 자매의 부모가 그걸 원하진 않았겠지만, 자매는 자신들만 있는 집이 비어있는 것처럼 느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집에 매일같이 찾아와 맛있는 음식도 해주는 하나가 절대 싫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우리집>이다. 영어로는 <The House of Us>. 어렸을 땐 흔히 그랬다. “너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을래?” ‘우리’ 집. 상대방이 그걸 부를 땐 ‘너네’ 집. 우리말의 특징이겠지만 ‘나의’ 집, ‘너의’ 집이 아닌 우리와 너네가 쓰인다. 하나와 자매에겐 ‘우리’라는 의미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의미가 위태롭다. 가족의 상태가 화목하지 못하고 온전하지 못하니, 가정이라는 의미의 Home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아이들은 그들의 이상인 House를 만든다. 이 영화에서 하나의 이름이 처음 불린 건 그들의 부모도, 친오빠도 아닌 학교에서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선행상을 주기 위해 아주 잠깐 등장했던 엑스트라로부터였다. 유미와 유진이에게 있어 부모님은 단 한 번도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였고, 그 역할을 대신하는 삼촌이라는 인물조차 그러하다.
하나에게 있어 우리 집은 불화가 가득한, 그래서 해체될 수 있는 집이다. 하나는 그래서 집이 갖는 본연의 의미인 House가 중요하고, 자매에게 있어 House는 유지되지만 부모님이 집에 있는 날이 별로 없고, 집으로 찾아올 손님조차 없으니 가정의 의미인 Home이 중요하다. 하나와 자매가 추구하는 이상은 다르고, 아직 어려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기력해지지 않는다. 무력하나,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시도한다. <우리집>의 아이들이 매력적인 건 주체적이기 때문이다. 주체적 행위의 대표는 역시 자신들의 작은 상자를 쌓아 만든 집 모형이다. 모형에 불과하지만 자신들의 이상을 나타내는 집을 가지고 부모님들에게 보여주려 여정을 떠난다. 더운 여름날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그래서 뺨엔 잔머리가 가닥가닥 붙어있는 날의 연속이었지만,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집을 지은 후 그것에 감탄할 때 뒤로 비치는 석양은 아이들에게 행복이 드리운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들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 같았지만, 아이들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한계라는 것이 있다. 영화는 그 한계를 위해 차근차근 나아갔다. 하나는 지금의 요리 실력을 갖추기까지 자의로든 타의로든 수많은 반복이 있었고, 레시피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자매는 부모님의 일을 보고 자연스럽게 터득해 상자를 예쁘게 꾸민 게 몇 번인 지 셀 수조차 없다. 그런 아이들이 기존에 전혀 학습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들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건 작은 핸드폰의 인터넷이 전부인 상황. 아이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극명하게 드러낸다. 너무나 자명한 실패 앞에 지치고, 절망스러워 자신이 만들었던 집을 부순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를 통해 한 단계 나아간다.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을 위로하고자 그들이 쉴 수 있는 텐트를 선물한다. 한적한 해변에 캠핑을 왔다가 갑자기 출산의 조짐이 보여 병원으로 향한 이들이 너무나도 급하고 어색하게 퇴장한 것인데, 그 어색한 연출이 윤가은 감독의 의도라고 확신한다. 텐트엔 아이들이 집 모형을 처음 만들고 행복해하던 그때의 따스한 색감이 가득하다. 실패 앞에 좌절했지만 아이들은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얻는다.
하나는 그토록 원했던 가족여행을 가진 못했으나 자매와 여행을 다녀왔다. 준비 단계가 시끄러웠고, 과정에서 어떤 실패를 겪었더라도, 원하던 결과는 아니었으나, 새로이 알게 된 것이 있고 성장을 이뤄냈으니 그 또한 여행이 주는 묘미겠다. 하나의 짧은 여행 동안 부모의 사이는 좋아지지 않았고, 사춘기의 오빠는 여전히 쌀쌀맞다. 영화가 시작할 때의 모습과 별반 다름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엔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는다. 하나가 소원했던 화목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루어냈다. 화면은 어두워지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시작하지만 오프닝처럼 사운드는 계속 유지된다. 밥 위에 올린 달걀프라이를 뒤적이는 소리가, 밥을 한 숟갈 뜨는 소리가 들린다. 대체 어딜 갔다 온 거냐며,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냐며 다그칠 수 있다. 부모님은 또 싸울 수 있고, 오빠의 태도는 부드러워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이 그러지 않을 가능성보다 월등히 높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식탁에서 가족들에게 말한다. “진짜 가족여행 가야지.” 하나가 아직도 가족여행을 가자고 조르는 건 아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눈에 띄진 않지만 하나가 이뤄낸 성장을 가만히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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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진 역을 맡은 주예림양. 근래 봤던 아역 배우 중 귀여움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다. 그리고 그의 명대사. “똥이나 많이 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