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e in for Love, 2019
관계에 있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상대방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되는 게 오히려 좋지 않을 때가 있다.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가 됨을 느끼고 싶은데, 그래서 왜 어떤 것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느냐고 속상해하지만, 막상 알고 나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그런 것. 상대방이 말을 하길 꺼려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이지만, 배려를 한답시고 말해줄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나의 비밀을 먼저 털어놨는데도 불구하고 말을 해주지 않았을 때에 기분이 상하거나.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나, 말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아느냐고 화를 내는 것이나.
<유열의 음악앨범>은 믿음에 대해 말하는 멜로드라마다. 이 영화의 모든 사건과 행위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떤 사연이 소개될지 모르지만 어김없이 그 채널로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는 건 그 DJ에 대한, 프로그램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다. 이제 막 소년원에서 나온 이를 시급 1,200원이나 주는 아르바이트에 채용하는 것도, 나간 이가 혹시나 돌아오지 않을까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것도, 누군가의 소개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그래, 일루 와. 기다릴게.”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위기 역시 그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그 믿음이란 것은 참으로 대단하면서도 얄팍한 것이다. 누군가의 과거를 아는 것은 쌓아온 신뢰를 두텁게 할 수 있지만 반대로 편견을 갖게 할 수도 있다. 누구나 마음속에 비밀을, 아픔을 숨겨 놓은 판도라 상자를 품고 있는데, 구태여 그것을 찾아 열 필요가 있겠는가. 열어 달라고 요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편견 어린 시선은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야를 좁게 하고, 그를 안을 수 있게 벌린 두 팔을 오므리게 한다. 그래서, 미수(김고은)가 현우(정해인)에게 하는 어린 말은 아프다. “뛰지 마, 현우야. 제발 뛰지 마. 다쳐.” 북촌의 굴곡진 언덕길, 비탈길을 내달린 후에 고개를 떨군 현우가 나는 그렇게 땅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았다. 미수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이 세상에서 딱 하나만이라도 바뀌길 바랐던 현우는, 이 세상에서 딱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의 과거를 모르길 바랐다.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사람을 바랐는데, 온 세상이 다 변하는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맛을 내는 은자(김국희)의 도나쓰처럼, 언제든 찾아가 기댈 수 있는 지하시장의 뜨끈한 수제비처럼.
현우에겐 소년원에서 나온 특별한 날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겐 어제와 같은 일상이었을 수 있다. 그런 일상 속에서 매일 듣던 DJ가 바뀐 것을 현우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모두들, 심지어 나를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나의 어두운 면을 알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기분 속에 미수만은 모르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기적을 바라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게 꼭 기적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신승훈의 목소리를 거쳐 핑클의 약속, 루시드폴의 위로 후에 콜드플레이의 <Fix You>가 나오는 건 단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자 함은 아닐 테다. 맨발로 외제차를 쫓아 달려온 현우를 두고 떠나간 미수는, 자신이 떠나온 거리보다 더 멀리, 더 힘들게 현우에게 돌아가야 했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그래서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는 마음을 갖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우는 빛이 잘 드는 곳에 미수의 사진을 붙여 놨었다. 이보다 더 후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함께 있으면 자신마저 밝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제과점에서의 기억처럼, 혹은 누가 더 어둡냐를 따지지 아니하고 함께 밝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Fix You>의 가사 속 후진 상황을 말하는 “Stuck in reverse”라는 대목이 있다. 자동차의 기어를 후진에 두고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현우와 미수는 그 후진 상황을 바로잡고자 앞으로 내달린다. 공들인 화장이 번졌을 지라도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땀 흘리고 있는 미수의 클로즈업은 여느 때보다 밝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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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rs stream down your face.”... “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nes. And I will try to fix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