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of Hummingbird, 2018
벌새. 빠르면 1초에 50번이나 날갯짓을 하는 새. 에너지 소모가 심해서 꿀 같은 고열량 음식을 섭취하는 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에너지 보충이 안 되는 수면 시간 동안 죽을 수도 있는 새. 위태롭기만 한 은희(박지후)의 상태를 이렇게나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몇 살이냐고 물어봐도 ‘중학교 2학년이오.’,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해도 ‘중학교 2학년이오.’라고 답하는 아이들. ‘내가 몇 살이냐고 물었지, 몇 학년이냐고 물었어?’라고 다그치고 싶지만 그만큼 생각이 통제되는 아이들. “나는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간다.”라는 구호를 수업 중에 외치게 하던 선생이란 작자와,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켜줄 거란 희망을 안고 철문은 녹슬고, 벽에는 금이 쩍쩍 간 아파트로 모여든 어른들이 만든 동네에서 아이들은 성장을 강요받지만, 동시에 성장이 제한된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했던 아이들은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같은 하루들을 보내며 그 어떠한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물리적 나이만 먹어갈 뿐이다. 그것의 대표 격이 은희의 엄마(이승연)와 언니 수희(박수연)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연스레 커진 반항심에 아이들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생각을 일상처럼 한다. “가끔 그런 생각한다? 내가 자살하는 거야. 괴롭힘 당해서 못 살겠다고.”, “다들, 우리한테 미안해는 할까?”
영화가 시작하니 초인종을 누르는 은희의 모습이 보인다. 집 안에서 반응이 없자 은희는 문을 두들기더니 이내 왜 문을 열어주지 않느냐고 괴성을 지른다. 그러더니 순간 멈칫한다. 카메라는 한 발자국 물러서 902라고 문에 적힌 호수를 담는다. 은희는 그 길로 계단을 오르더니 1002호의 초인종을 누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 안으로 들어간다. 카메라는 점차 멀어지더니 비슷하게 생긴 아파트의 많은 문들을 담는다. 오프닝은 은희가 사건들을 대하는 태도를 암시한다. 불현듯 감정이 폭발하기도 하지만 은희가 착각을 해서든, 외부의 어떤 요인에 의해서든 아무 일 아니었다는 듯 지나간다. 그 아파트의 문을 열고 그렇게 하나의 기억을, 에피소드를 보는 식이라면, 두더지 게임처럼 불쑥 튀어나왔다가 들어가는 식이다. 다시, 카메라가 아파트로부터 멀어진 것인가, 아니면 은희가 겪은 사건들이 그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인가.
어린 은희가 보기에도, 2019년의 관객이 보기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영화 속에서, 그리고 실제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벌어졌었다. 공부는 하기 싫고, 한 장 짜리 만화를 그리길 좋아했던 은희에게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건 김보라 감독이 투입시킨 한문 선생님 영지(김새벽)였다. 영화를 본 지 하루가 지나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김보라 감독과 김새벽 배우가 가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았더랬다. 단짝 지숙(박서윤)과 싸운 후 어색해하는 아이들에게 수업 진도를 나가는 대신 가만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 아이들이 과연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싶은 <잘린 손가락>이라는 운동권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 이상하긴 했어도 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람. 영화가 pc적인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그저 일상처럼 여겨지던 오빠의 폭행을 비롯해 은희를 둘러싼 부당한 일들이 당연한 게 아님을 알려주는 인물로 등장할 뿐이다. 은희의 주변에 있던 엄마와 언니는 그 부당함에 침묵하거나, 일탈을 할 뿐이지 맞설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동권이었다는 영지의 설정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면으로 맞선다는 것이 중요하겠다.
영지는 우리를 둘러싼 “말도 안 되는 일” 중에도, 때로 너무나 무력하다고 느낄지라도, 아무리 힘들고 우울할 지라도 가만히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했던 은희에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알려주는 영지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은희는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으나 본능적으로 안다. 집보다 집 밖이 더 편하다는 것을. 은희는 오빠가 자신을 폭행할 때 가만히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반항하면 더 때리니까.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말해도 “싸우지들 마”라고 하는 가정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래서인지 은희네 집엔 빛이 잘 들지 않는다. 곰팡이가 가득가득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둡다. 그나마 있는 창문엔 화초들이, 커튼이 가리고 있다. 이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은 은희가 귀 밑에 난 혹을 제거하기 위해 입원했던 병원이었다.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던 집에서의 식탁과도 달리 빛이 가득한 병실에서의 식사 시간은 은희가 절로 미소를 띠게 했다. 하지만 은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곧 떠나야 할 곳임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은희는 혹 제거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덜 깬 상태로 간호사에게 묻는다. “제 혹 어디로 갔어요?” 간호사가 답한다. “버렸지.” “어디로요?” “그게 왜 궁금해?” “어디로요?” 분명 떼어내야 할 혹이었지만, 너무 오래 간 당연하다고 여겨온 그 혹의 행방이 궁금했던 것이다.
영화 속 어린 은희는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을 오가는 일상 속에서도 많은 이별을 겪는다. 한숨만 내쉬다 간 외삼촌을 떠나보내야 했고, 방앗간 집 딸이라고 무시하는 엄마 앞에 힘없이 무릎 꿇고만 남자 친구가 끌려 나갔고, 이유 없이 그냥 좋다던 아이는 유통기한이 다 된 듯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라고 하며 떠나갔다. 그런 와중 은희는 영지와 두 번 이별을 한다. 영지가 학원을 관두고 떠나갔을 때 원장 선생님의 잘못된 정보로 처음 이별하고, 불가항력 같은 사고에 다시 한번 이별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알다가도 모르겠다”던 영지는 다음에, “그때 만나면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라고 하더니 영영 떠나갔다. 은희는 전하지 못한 고마움과 물어보지 못한 질문, 이별로 인한 슬픔은 그렇게 끝없이 은희의 마음속에 침잠한다.
은희는 그 길로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외삼촌 보고 싶어?” 엄마가 답하길, “그냥 이상해. 너네 외삼촌이 이제 없다는 게.” 그때 영화에서 처음으로 카메라가 은희의 엄마를 클로즈업한다. 카메라는 내내 파스가 덕지덕지 붙은 어깨나 닳아 해진 스타킹 사이로 보이는 발바닥의 굳은살 같은 걸 담더니, 그때 처음으로 그녀의 표정을 보게 해 준다. 하지만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였든 버스가 지연돼서 사고를 피했던 수희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없듯, 새벽녘에 그 무너진 다리를 보고 비통해할 수 없듯, 현수막치고 재개발 반대 농성을 하던 이들처럼 지나간 엄마의 세월을 동정할 수 없기 때문이겠다. 카메라는, 은희는, 김보라 감독은 그렇게 엄마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나이는 먹었으나, 아직도 어린 시절의 생각에 갇혀있는 이들이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묻어뒀던, 수장시켜뒀던 일들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영지의 퇴장으로 1994년의 은희에겐 앞으로 해야 할 숙제가 남겨졌지만, 2019년의 우리에겐 지나온 시간을 건강하게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생각도 하지 않았음에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음에도 이따금씩 꿈에 나타나던 그 일을 아무렇게나 덮지 않고 지나온 유년 시절에 떠나보내기 위해. 살기 위해, 꿀을 먹기 위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가던 벌새처럼 은희는 1994년 자신이 겪은 사건에서 또 다른 사건들로 옮겨가며,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를 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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