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u D'Ane, Donkey Skin, 1970
영화를 보고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아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 새벽에 산책을 나갔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너무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스토리라고만 생각이 드는 와중, 다른 한편에선 ‘이거 자크 드미 영화야! 분명히 좋은 점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저명한 감독의 작품이니 당연히 좋아야 한다는 어린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어쨌든 나는 이 영화가 곱씹을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다시, 좋아지고 있다. 진행형이다. 쓰는 동안에도 점점 더 좋아진다.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스토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파란 나라의 왕이 왕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재혼을 하라는 말을 기어코 들어주고자 한다. 자신이 너무 빨리 죽어서 오랜 세월 외롭게 보낼 남편이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자신은 딸 하나밖에 낳지 못해서 왕국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왕비는 사족으로 “저보다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면”이라고 덧붙였다. 왕은 재혼을 하지 아니하고 왕비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으나, 신하들의 간청으로, 또 왕국의 미래를 생각해 재혼을 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왕비보다 아름다운 여인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되는데, 역시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왕과 신하들이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 와중 궁의 정원에서 딸의 노랫말이 들린다. 공주는 왕비에 필적할 만큼 아름다웠고 지성과 매력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왕은 아무런 고민 없이 자신의 딸과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니, 동화라면서 근친상간이라니? 아빠와 딸의, 엄마와 아들의 결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기시된 것이 아니던가. 오늘날 합법화를 논의하는 동성혼과 같은 문제가 아니지 않던가. 아주 어렸을 때야 농담처럼 할 수는 있어도 이 영화는 실제로 그것을 하려 하고 있다. 헛웃음이 나왔다. 왕이 공주와 결혼하고자 마음먹은 장면에서 정작 공주는 사랑에 반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랑은 해진 옷깃이에요. 사랑은 미쳤어요. 네 개의 팔이 껴안아요. 영혼은 행복하네요. 매듭지어진 사랑. 사랑, 사랑. 나를 미치게 하네요. 때로 사랑은 절규해요. 젊음 속에서 울부짖고 찌르네요. 거짓 서약을 약속하고요. 연인들은 고통을 받아요. 어느 누가 페이지를 돌려놓을까요.”
공주 역시 그것이 죄악임을 알았지만 워낙 강성한 왕의 태도에 난처해하며 자신의 대모인 요정에게 조언을 구한다. 아버지의 강성한 태도를 막기 위해 조건을 걸기로 하고, “좋은 날씨” 색의 드레스, “달과 햇빛” 색의 드레스를 만들어달라는 식의 시도를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최후의 수단으로 왕이 애지중지하는 당나귀의 가죽을 벗겨달라고 한다. 그 당나귀는 매일 변으로 금은보화를 쏟아냈었다. 공주의 청을 들어주면 왕국의 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왕은 기어코 당나귀의 가죽을 벗겨 공주에게 선물한다. 이쯤 되니 공주는 아버지의 정성에 감동해 결혼을 하겠다고, 본인도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공주가 말하는 사랑은 이성에 대한 것이 아닌 가족에 대한 것이었다. 요정은 공주에게 당나귀 가죽을 뒤집어쓰고 이웃한 빨간 나라로 도망가라고 하기에 이른다. 공주는 아버지와의 혼을 통해 금기를 깰 순 없었기에 순순히 따르기로 한다. 일국의 공주였던 이가 한순간 최하위 신분인 부엌데기가 되고야 말지만, 호화스러운 궁전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숲 속의 오두막에 살게 됐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 사랑, 무척 사랑해요. 왜 제 방문에 노크하시나요.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제게 행복을 가져다주세요.”
공주가 노래하는 걸 빨간 나라의 왕자가 우연히 듣고 사랑에 빠진다. 상사병에 시름시름 앓던 왕자는 공주가 만든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고, 공주는 그런 왕자의 청에 따라야만 하는 신분이기에 기꺼이 케이크를 만들어준다. 단,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안에 넣어서. 왕자는 케이크를 먹다 반지를 발견하고 그 반지의 주인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빨간 나라의 모든 여성들이 신분을 막론하고 왕비가 되기 위해 반지를 끼러 궁으로 향한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그 반지가 손가락에 꼭 맞는 이를 찾겠다는 명목 하에 나라 안의 모든 여자들을 궁으로 불러 모은다. 뭇 여성들은 괜히 자기 반지도 아니면서 손가락을 반지에 맞게끔 얇게 만들고자 알 수 없는 약을 바르기도 하고, 맷돌에 갈다가 손가락이 잘리기까지 하는 괴상한 상황이 펼쳐진다. 일국의 왕이 될 사람의 발언이 이유가 뭐가 됐든 이렇게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695년에 샤를 페로가 쓴 콩트를 자크 드미가 각색한 <당나귀 공주>는 1970년 세상에 공개됐다. 자크 드미가 <쉘부르의 우산>(1964)과 <로슈포르의 숙녀들>(1967)을 거쳐 <당나귀 공주>에 이르는 사이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혹은 68 혁명)이 있었다. 68 혁명의 목적은 경제 성장에 따른 과소비, 비인간화에 따른 물질주의, 인간소외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들이 내세운 구호 중 <당나귀 공주>와 연결 지어 주목할 만한 건,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한다.”, “굶주릴 지라도 권태로운 것은 못 참는다.” 등이 있겠다.
프랑스의 국기의 파랑, 하양, 빨강은 차례로 자유, 평등, 박애를 의미한다. 그리고 파란색은 자유주의를, 빨간색은 공산주의를 의미하기도 한다. 극 중 너무도 극명한 색의 대비는 의식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조차 불가한 수준이다. 주요 인물이 아니라면 온몸에 페인트를 뒤집어쓴 것 같은, 심지어 동물의 털마저 파랗고 빨가니 말이다. 그런 와중 파란 나라의 공주와 빨간 나라의 왕자가 결혼을 약속하니 하얀 나라가 된다. 성대하게 치러진 결혼식에 여러 이웃 나라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공주의 아버지가 헬기를 타고 등장한다. 그런데 그 옆에 공주의 대모인 요정이 왕과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오는 게 아닌가. 공주를 이웃나라로 내보낸 후 본인이 왕을 취한 것이었다. 왕은 공주에게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하며 동화는 끝난다. 하지만 눈여겨봐야 할 건, 이 동화는 파란 나라의 동화다. 헬기를 타고 등장한 자본주의 국가의 해피엔딩. 빨간 나라의 교통수단은 기껏해야 마차였다. 매일 보석을 배출해내던 당나귀에 힘입은 자본주의 국가의 기술력. <지옥의 묵시록>(1979)이나 <플래툰>(1987) 같은 영화를 떠올려보자. 캄보디아로, 베트남으로 향한 미군들은 모두 헬기를 타고 등장했었다. 1955년 11월부터 1970년 4월 30일까지 분단된 베트남에서 벌어진 전쟁. 남과 북으로 분단된 베트남의 내전이기도 했으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했던 전쟁. 그리고 그 시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지속됐던 냉전 시기의 사이에 있다.
<당나귀 공주>는 자크 드미가 지나온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동화처럼 만들어놓은 셈이다. 동화라면서 설정이 왜 이따위고, 17세기를 배경으로 한 동화에 헬기가 웬 말인가 싶지만, 표면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의도가 드러난다. 자크 드미의 필모에서 눈에 띄는 괴작에 이유는 분명히 있으리라.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 중에 하얀 나라, 모두가 평등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크 드미의 필모그래피를 보자. 어느 한편도 행복한 결말로 맺는 영화가 없었다. <롤라>(1961)의 인물들은 슬픔을 안은 채 낭트를 모두 떠나갔고, <로슈포르의 숙녀들>(1967)은 모두 로슈포르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꿈과 낭만을 찾아 떠났다. <도심 속의 방>(1982)은 처참한 결말이었다. <당나귀 공주>라고 다를까. 동화라고 해서 해피엔딩일까.
<당나귀 공주>는 얼핏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이 영화엔 멜로가 없다. 파란 나라의 왕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아내와 사별했고, 공주와의 것은 부녀간의 정이었다. 빨간 나라의 왕자가 공주와 무엇인가 했던가? 그저 그의 노래를 잠시 들었을 뿐이다. 원작 소설에서 왕자는 “저는 이 반지의 소유자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예쁜 반지의 소유자가 시골 아낙이나 시골뜨기는 아닐”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공주가 케이크에 넣은 보석 박힌 반지는 17세기의 백성들이 가질 순 없는 것이었을 테니, 공주가 최소 귀족 신분이었으리란 판단이 섰던 것이리라. 프랑스의 국기에서 파란색은 자유를 의미하지만 파란 나라에서 공주는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일국의 공주로서 어항 속 금붕어처럼 지내야만 했고, 아버지의 강압적인 구혼에 이웃나라로 도주해야만 했다.
인물들의 면면은 또 어떠한가. 딸과 결혼하자는 아빠, 대신 그를 취한 대모, 손가락 소동을 일으킨 왕자, 마냥 수동적인 공주까지 누구 하나 정이 가는 인물이 없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시기에 자크 드미의 세계에 정상적인 인물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샤를 드골 정권하에서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 나치에 협력했던 이들에 대한 처벌이 있으면서 동시에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던, 자크 드미가 본 1970년의 프랑스는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