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승 Aug 17. 2021

<그을린 사랑>

Incendies, 2010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고 있으면, “우리의 할머니들에게라는 말이 나온다나는 할아버지가 됐을 때 어떤 모습일까서른의 나는 스물의 내가 바라던 모습일까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길 원하는가관심사가전공분야가 무엇이냐에 따라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것이다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들에겐 하루하루가 나라는 책을 써 내려가는 과정이며어떻게 책장을 덮을 것인가를 위해 나아가는 중일 테다포탄이 터지고 선혈이 낭자한 전쟁의 참혹한 이미지를 굳이 전시할 필요 있을까나왈 마르완(루브나 아자발)이 곧 전쟁터이고그것을 지난 역사가 아닌가그곳이 퀘벡이든서울이든베이루트든 우리의 주변엔 나왈이그가 겪은 비극이 도처에 있다영화에 삽입된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를 빌려우리에게 총을 겨누는 자는 누구인가.


하나와 하나가 더해져 둘이 되는 대신하나와 하나가 더해져 하나가 됐다찰흙 한 덩이와 또 다른 찰흙 한 덩이를 더하니 커다란 찰흙 한 덩이가 됐다는 어린 에디슨의 계산과는 다른 것일 테다하나와 하나가 더해져 하나가 되는 비통한 사연을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됐을 테지만평생 처음의 하나에 머무르는 삶은 무슨 의미가 있나모름에서 오는 평화로움 대신 앎을 위해 전쟁과도 같은 길을 택한다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하나를 마주해 둘이 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다시라디오헤드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오프닝에서부터 드니 빌뇌브는 이미 자신의 입장을 선포했다이리도 무심하게 툭 던져놓을 수 있는가그는 나왈의 삶을 쥐어짜 슬픔도고통도드라마틱한 감동도 굳이 끌어내지 않는다소년이라는 말도 어색한 아이들이 병기가 되는 과정을 담은 오프닝에서 점차 선명해지는 역사나왈의 딸 잔느(멜리사 디소르미스 폴린)와 시몬(막심 고데트)이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의 역사 속으로 걸어갈수록 점차 선명해지는 비극양양을 떠올리며 하나와 하나가 <하나 그리고 둘>이 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내 인생이란 책을 지우개로 지우듯키보드의 백스페이스를 누르듯 쉽게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를 왜 보는가?”라고 수도 없이 듣는 질문그렇게 할 수 없으니 본다다시 되돌려 고쳐 쓸 수 없는 내 생의 한 페이지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법으로 쓰기 위해최소한 지울 수는 없으니 앞으로 써내려 갈 말을 더 잘 고르기 위해하나와 하나를 더해 하나가 될 지라도영원히 죄인이 되어 무덤 속에서도 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잠시나마 들여다봄을 통해누군가의 이야기를 잠시나마 목도함을 통해.


#그을린사랑 #루브나아자발 #멜리사디소르미스폴린 #막심고데트 #드니빌뇌브 #영화

작가의 이전글 <베티블루37.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