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endies, 2010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고 있으면, “우리의 할머니들에게”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할아버지가 됐을 때 어떤 모습일까. 서른의 나는 스물의 내가 바라던 모습일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길 원하는가. 관심사가, 전공분야가 무엇이냐에 따라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들에겐 하루하루가 나라는 책을 써 내려가는 과정이며, 어떻게 책장을 덮을 것인가를 위해 나아가는 중일 테다. 포탄이 터지고 선혈이 낭자한 전쟁의 참혹한 이미지를 굳이 전시할 필요 있을까. 나왈 마르완(루브나 아자발)이 곧 전쟁터이고, 그것을 지난 역사가 아닌가. 그곳이 퀘벡이든, 서울이든, 베이루트든 우리의 주변엔 나왈이, 그가 겪은 비극이 도처에 있다. 영화에 삽입된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를 빌려, 우리에게 총을 겨누는 자는 누구인가.
하나와 하나가 더해져 둘이 되는 대신, 하나와 하나가 더해져 하나가 됐다. 찰흙 한 덩이와 또 다른 찰흙 한 덩이를 더하니 커다란 찰흙 한 덩이가 됐다는 어린 에디슨의 계산과는 다른 것일 테다. 하나와 하나가 더해져 하나가 되는 비통한 사연을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됐을 테지만, 평생 처음의 하나에 머무르는 삶은 무슨 의미가 있나. 모름에서 오는 평화로움 대신 앎을 위해 전쟁과도 같은 길을 택한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하나를 마주해 둘이 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다시, 라디오헤드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오프닝에서부터 드니 빌뇌브는 이미 자신의 입장을 선포했다. 이리도 무심하게 툭 던져놓을 수 있는가. 그는 나왈의 삶을 쥐어짜 슬픔도, 고통도, 드라마틱한 감동도 굳이 끌어내지 않는다. 소년이라는 말도 어색한 아이들이 병기가 되는 과정을 담은 오프닝에서 점차 선명해지는 역사. 나왈의 딸 잔느(멜리사 디소르미스 폴린)와 시몬(막심 고데트)이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의 역사 속으로 걸어갈수록 점차 선명해지는 비극. 양양을 떠올리며 하나와 하나가 <하나 그리고 둘>이 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인생이란 책을 지우개로 지우듯, 키보드의 백스페이스를 누르듯 쉽게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를 왜 보는가?”라고 수도 없이 듣는 질문.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본다. 다시 되돌려 고쳐 쓸 수 없는 내 생의 한 페이지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법으로 쓰기 위해. 최소한 지울 수는 없으니 앞으로 써내려 갈 말을 더 잘 고르기 위해. 하나와 하나를 더해 하나가 될 지라도, 영원히 죄인이 되어 무덤 속에서도 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잠시나마 들여다봄을 통해, 누군가의 이야기를 잠시나마 목도함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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