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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Sep 03. 2021

<립반윙클의신부>

A Bride for Rip Van Winkle, 2016

교단에 선 나나미(쿠로키 하루)는 교탁에 놓인 마이크를 보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이게 뭐지?” 한 학생이 답한다. “선생님오늘부터 그거 쓰세요목소리 안 들려요.”대놓고 모욕을 주는 학생들을 앞에 두고 불편하지만 옅은 미소를 지으며 수업을 시작하려던 나나미는 그것을 장난이라 말하며장난으로 받아치기 위해 마이크를 집어 들고 만다.


오늘도 난거짓말을 잔뜩 해버렸다


그것이 모욕임을 모르지 않지만나나미는 오늘도 거짓말을 한다학생들이 자신에게 장난을 친 것이라고나도 똑같이 장난을 친 거라고학교를 마치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그러곤 알 없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는데학생들이 알아보면 곤란해지니 쓴다고 한다나나미는 오늘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자신을 감싸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나나미는 클램본이라는 이름으로 플래닛이라는 SNS에서 활동한다현실에선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나나미가 유일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다하지만 자신이 클램본이라는 것은 남편에겐 숨기고 있다남편 역시 소개팅 어플을 통해 만난 사이인데그는 클램본이 작성한 글을 보며 내 여자가 이런 걸 썼다면 난 바로 이혼해너 아니지?”라 말한다나나미는 또다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니라 답한다나나미는 결혼식에 하객으로 부를 지인도 친인척도 많지 않아 다시 플래닛에서 알게 된 아무로(아야노 고)에게 하객 아르바이트 부탁한다불행을 거짓말로 덮어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하지만애초에 거짓된 토대가 탄탄할 리 없었다.


나나미는 아무로의 또 다른 임무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가 마시로(코코)를 만나게 된다나나미와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현실에 더 충실한 듯 보이지만 실은 암 투병 중인 환자다독이든 해파리를 키우는 마시로는 타인의 진심이나 친절함 같은 것들이 너무 또렷이 보이게 되면 사람들은 또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워서 다들 깨져버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한다그 진심의 한계를 잘 아는 그녀는 맨 정신에 진실하기도 어려워 계속 술에 취한다.


나나미는 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해 아무로의 손에 이끌려 마시로가 있는 저택에 도착했다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방치돼있던 곳을 정리하며마시로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거짓으로 쌓아 올린 토대를 허물로 다시 처음부터 제대로튼튼하게 자신을 쌓아 올린다. 나나미는 아무로에게 가정부일을 부탁받아 마시로의 저택에 왔지만일은 관두고 곁에 있는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한다마시로가 지내던 저택은 사실 전에 촬영장으로 쓰이다가 버려진 곳이었기에둘은 같이 지낼 새로운 집을 알아보러 갔다가 우연히 웨딩샵을 지나게 되고 홀리듯 들어간 곳에서 드레스도 입어보고 사진 촬영도 한다진짜는 아니었지만눈에 보이지 않는 반지를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주기도 한다.


저택으로 돌아온 둘은 침대에 눕는다마시로가 장난 섞인 투로 진짜 결혼을 하겠냐고 묻자나나미는 그러겠다고 한다사랑한다 말하고 입을 맞추기도 한다마시로는 나나미가 올 줄은 몰랐겠으나나나미를 고용하기 전부터 자신이 원하는 누군가의 곁에서 행복하게 죽는 순간을 바랐다저택도백만 엔이라는 큰돈도 없이 자신의 진정성을 봐주길 바라는 마시로의 곁에서 나나미 역시 그 진정성에서 오는 행복을 느낀다이때 둘의 입맞춤은사랑한다는 표현은 동성애의 코드가 아닌 치유의 영역에 있는 것일 테다.


나나미는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더 이상 위태롭게 흔들리며 SNS에 의존하지 않는다짐을 정리한 나나미는 거실에 놓인 테이블을 사이로 오른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왼쪽에 놓인 의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그러더니 일어서서 그 의자를 쓰다듬는다그리고 채 다섯 걸음도 되지 않을 거리에 있는 발코니에 나와선 마시로가 끼워준 네 번째 손가락의 반지를 어루만진다스스로 자신을 가둬두었던 방에서 바깥으로 나온 나나미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마시로를 그리워할지 모르지만과거의 자신처럼 위태롭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이들을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일주일에 한 번 화상채팅으로 수업을 해주던 학생 카론을 시작으로 말이다.


#립반윙클의신부 #쿠로키하루 #아야노고 #코코 #이와이슌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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