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Honey, 2016
열심히 쌓아 올리기만 해서 더 잘 타나보다. 답답해진 시국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데, 그 안에서 입체감을 가지고자 부단히 장작을 넣었는데, 그 불빛이 희미해지더라도 잠시 불이 꺼지더라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스타(샤샤 레인)가 어둠 속에서 어렴풋하지만 분명히 빛나는 반딧불이들을 보며, 느리지만 자신이 갈 길을 꿋꿋하게 가는 거북이를 따라 물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떠오른 건 어떤 계시 같았다. 더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내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도 필요하지 않던가.
Savior, Savior. We are indigos.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던 열여덟 살 스타는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새아빠와 지내는 삶에 지쳐있던 와중 승합차를 타고 다니며 잡지 구독권을 파는 제이크(샤이아 라보프)를 만나게 되고 홀린 듯 크루에 합류한다. 누구의 시선도 상관없다는 듯 힙합을 크게 틀고, 언제라도 상관없이 술과 대마초를 즐기며, 연애와 섹스 역시 자유로운 생활인 것 같으나 그것 역시 여느 사회의 것과 다르지 않게 규율로써 통제되는 집단이었다.
<붉은 거리>(2006)와 <피쉬 탱크>(2009)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은 이 영화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들의 노래>(이하 아메리칸 허니)로 같은 상을 세 번째 수상했다. 그는 앞선 영화에서도 도시 안에서의 외로움과 방황에 대해 다뤘었다. 베니스영화제 촬영상을 받은 <폭풍의 언덕>(2011)에서는 사랑이 훑고 간 자리를, 그 상처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안드레아 아놀드는 <아메리칸 허니>에서 길 위의 10대들을 클로즈업하며 함께하기로 한다. 전작들과 다른 점은 영국 출신인 그녀가 영국을 떠나 미국의 길 위에서 작업을 했다는 점이다. 한참 어른인 그가 카메라로 그들을 억제하지 않고, 그들의 삶 자체의 것처럼, 마치 그 옆자리에 앉아있는 크루의 일원인 듯 자유분방하게 말이다.
나름 직책도 있고, 신입사원을 위한 OJT도 갖춰놓았으나 그들의 모양새는 가출팸과 다르지 않다. 안드레아 아놀드는 실제 1년간 잡지를 판매하는 크루를 따라다니며 각본을 썼고, 샤샤 레인을 포함해 배우들 역시 연기 경험이 전무한 이들을 길 위에서 캐스팅했다. 얼핏 봐도 그럴 것 같지만 촬영 스탭 역시 최소한으로 꾸려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는 것 역시 이 영화기 지닌 특징이겠다.
안드레아 아놀드는 <아메리칸 허니>를 거대한 쓰레기통에서 시작했다. 유통기한이 얼마 지난 것은 스타의 관심사가 아니다. 찌든 때가 곳곳에 묻어있고, 벌레가 기어 다니는 집이지만 그래도 식사를 준비한다. 밖에서 돌아온 새아빠는 어린 동생들을 내보내고 샤샤의 엉덩이를 주무른다. 자신의 목덜미를 애무하는 그의 품에 안겨 흐르는 눈물조차 어찌할 수 없는 그녀를 보호해줄 시스템은 그곳에 없었다. 반짝이는 별의 이름을 지녔으나 그 별은 빛을 잃고 까맣게 죽어가는 중이었다. 그네를 타고 힘차게 발을 차던 스타는 그대로 하늘로 향하고자 했는지 모르겠으나, 지구가 그를 땅으로 내려오게 당겼다. 스타는 모진 비바람도 막아줄 지붕을 떠나 승합차에 오르기로 한다. 자유는 물론 일자리까지 제안한 제이크는 그 자체로 그녀의 삶에 희망처럼 느껴졌을 테다. 나였어도 그를 따라나섰을 테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부터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 숨 쉬는 것 역시 내가 숨을 쉬어야겠다 생각해서 쉬는 게 아니다. 혈혈단신으로 이 세상에서 내 의지로 선택하는 유일한 건 숨을 참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제이크와 스타가 영업을 하는 장면은 이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오늘이 생일이라는 소녀의 이름은 ‘데스티니’였다. 스타는 쓰레기통 안에서의 것이 처음이었다면, 데스티니는 호화로운 주택에서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고 있음이 영화를 보는 이가 인지하는 첫 이미지다.
단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둘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운명이란 것을 믿진 않지만, 만약 그것이 있다면 정해진 운명을 뒤집는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장학금 사업으로 잡지를 판매한다고 거짓 영업을 하고 있는 제이크가 정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자 데스티니의 엄마는 피식 웃는다. 제이크는 그 말이 진심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이 하는 거짓말에 심취했을 수도 있으나, 스타와 영화를 보고 있는 이는 그 웃음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스타에게, 이름도 반짝이는 그녀에게 꿈에 대해 묻는 이는 예사의 영화가 거의 끝날 시간인 1시간 44분이 지나서 난생처음 만난, 그것도 잠시 스쳐갈 트럭 운전사가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꿈이 뭐냐는 그의 질문에, “그런 질문 처음 받아 봐요.”라며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살면서 처음으로, 그것도 400불이라는 큰돈을 처음으로 벌었을 때 스타는 자신이 미국이 된 것 같다며 크게 환호했었다. 소위 ‘아메리칸드림’이란 말이 있었을 미국이지만, 정작 그 나라에서 이제 막 꿈을 펼칠 나이가 된 그녀에게 꿈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았다는 건 허울뿐인 멋진 단어의 이면을 꼬집는 사실이다. 쓰레기통을 뒤지던 이에게 애초에 그 꿈이란 것이 실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데 꿈에 대해 묻는 것 자체가 실례이고, 꿈이란 것이 공상일지도 모르겠다. <아메리칸 사이코>(2000)에서 월스트리트의 금융사 CEO였던 베이트만(크리스찬 베일)은 실직해 노숙자가 된 이에게 당신은 완전한 실패자라며, 우리가 비슷한 점이 전혀 없다고 일갈한다. 꿈을 꾸고 그것을 좇는 <라라랜드>(2016)의 세계도 있지만, 같은 땅 위에 <아메리칸 허니>와 같은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
스타의 꿈은 자신의 집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트레일러여도 괜찮다고, 큰 나무가 많은 동네에 아이들도 많이 낳고 싶다고 한다. 데스티니에겐 당장이라도 실현 가능한 일이지만, 스타에겐 밤하늘의 별처럼 가닿을 수 없는 말처럼 느껴진다. 스타는 자식들을 신경 쓰지 않는 엄마와, 곧 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었던 새아빠가 있는 집에 어린 동생들을 두고 나왔으나, 꿈은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거짓말로, 감언이설로 영업을 하는 제이크의 방식을 스타는 비판한다. 거짓으로 꾸며내면서까지 판매실적을 올리고 싶진 않은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스타는 그 순수함을 잃는다. 자신의 꿈을 실현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심지어는 몸을 판다. 스타는 제이크에게도 자신이 받았던 물음을 던진다. “혹시 꿈이 있어?” 스타가 묻는데, 제이크가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런 질문 처음 받아 봐.” 그날 밤 제이크는 스타에게 아무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숨겨뒀던 자신의 가방을 보여준다. 그 안엔 잡지를 팔기 위해 방문했던 집에서 훔친 보석들이 있었다. 제이크는 그것이 꿈을 사줄 수 있다고 한다. 제이크는 그 보석들이 숲에 집을 지어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스타와 제이크는 길 위를 떠돌고 있지만, 정착해서 살 집을 갖는 것을 꿈꾼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제이크의 반짝이는 장식이 도배된 핸드폰 케이스, 그녀의 이름을 딴 반짝이 별 스티커가 도배된 판매 수첩 그리고 그가 보여준 반짝이는 보석은 길 위에서 그대로 노출된 자외선이 아닌, 따스한 집에서 나오는 행복한 빛을 꿈꾸게 하는 희망이 됐을 테다. 하지만 스타는 끝까지 제이크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실적을 높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고객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훔치지도 않는다. 스타는 제이크가 이미 숲 속에 작은 집을 살 정도의 돈을 모았다고 생각하지만, 제이크는 아직 부족하다고 한다. 제이크는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도 앞으로 돈을 더 벌 수 있는데 여기서 멈춰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스타에겐 지금이 중요하다. 나중을 위해 거짓을 말하기도 싫다. 있는 그대로 현실과 대면한다. 오랜만에 만난 제이크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생리 중이지만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탐폰을 뺀다.
캔자스에서 네브래스카의 부촌, 사우스다코타의 유전, 미네소타의 빈민촌을 차례로 지나며 다양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타는 안드레아 아놀드가 만든 허구의 인물이나, 죽어가는 별 스타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역사적이면서도 염세적이다. 총과 돈으로 시작한 그 역사가 스타라는 인물 위에 그려진다. 스스로 크루에 참여한 구성원들이 스스로 동의한 질서 앞에 불편한 착취가 계속된다. 자유로움이라는 무늬에 이끌렸으나 4:3이라는 과거의 화면비처럼 답답하다. 좁은 승합차에 빈자리 없이 가득 타서도, 어디로 실려 가는지도 모르면서도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받아들인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캔자스에서 네브래스카의 부촌, 사우스다코타의 유전, 미네소타의 빈민촌을 차례로 지나며 다양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타는 안드레아 아놀드가 만든 허구의 인물이나, 죽어가는 별 스타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역사적이면서도 염세적이다. 총과 돈으로 시작한 그 역사가 스타라는 인물 위에 그려진다. 스스로 크루에 참여한 구성원들이 스스로 동의한 질서 앞에 불편한 착취가 계속된다. 자유로움이라는 무늬에 이끌렸으나 4:3이라는 과거의 화면비처럼 답답하다. 좁은 승합차에 빈자리 없이 가득 타서도, 어디로 실려 가는지도 모르면서도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받아들인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일련의 사건 이후 제이크는 잠시 무리를 떠났다가 돌아온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크루에 새로 합류한 스타가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얼굴 드레마(drema)가 있다. 순간 dreamer처럼 들렸으나 드레마였다. 제이크는 스타를 외면한다. 제이크에게 있어 스타는 그가 잃어버린 순수였다. 스타와 제이크, 드레마가 탄 승합차는 오늘도 길 위를 달린다. 로드무비로서의 <아메리칸 허니>. 영화 속 세계의 인물들은 그들이 향하게 될 곳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보는 영화 바깥 세계의 우리는 인물들이 일련의 장소들을 거쳐 어딘가로 향하게 될 것임을 안다. 오늘은 스타가 어느 도시에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집을 떠나 향한 길은 그리고 오늘도 달리고 있을 길은 그녀의 운명처럼 느껴진다. 순수함을 잃은 제이크가 아직 순수했던 스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그런 스타가 곧 순수를 잃게 될 것이란 것 역시도 말이다. 그들이 탄 승합차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Lady Antebellum의 노래 <American Honey>가 퍼진다.
She grew up on the side of the road
그녀는 길가에서 자랐어
Where the church bells ring
교회의 종이 울리고
And strong love grows
강인한 사랑이 자라는 곳
She grew up good she grew up slow
그녀는 착하고 느긋하게 자랐어
Like American honey
아메리칸 허니처럼
그렇게 달려 해 질 녘 도착한 호숫가에서 제이크는 스타에게 거북이를 선물한다. 스타는 그것을 다시 물로 돌려보내는데, 거북이가 간 길을 따라 스타도 물로 들어간다. 빛을 잃은 스타가 영화 속 가장 어두운 장면에서 죽음을 맞나 싶었으나 이내 물 위로 다시 올라온다. 그 어두운 하늘에 반딧불이가 반짝이고 경쾌한 리듬의 노래가 나온다. 앞서 영화 속에서 다양한 동물들이 카메라에 포착됐었다. 어항 속 올챙이가 있었고, 다친 날다람쥐가 있었고, 훔쳐온 개가 있었고, 해 질 녘 들판에서 만난 곰이 있었고, 수영장에 빠진 벌레가 있었다. 길들인 동물과 달리 스타가 마주하는 것들을 길들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녀는 집 안에 갇힌 벌레를 밖으로 내보내 주고, 물에 빠진 벌레를 구해준다. 거북이를 물로 보내준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갇혀버린 삶 속에서 자유를, 꿈을 향해 굳게 일어서려는 그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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