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쓴 편지>

Written on the Wind, 1956

by 박종승

전쟁 이후 석유 산업으로 벼락부자가 된 이들의 몰락. 아버지의 입김이 너무 크게 작용하는, 나약한 재벌 2세 카일과 그의 친구인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맡은 일을 잘 성실히 잘 수행하는 미치는 상반된 캐릭터다. 두 사람은 매력적인 여성 루시를 만나게 되고, 카일이 먼저 열렬하게 구애한다. 카일이 먼저 나섰기에 미치는 한발 물러선다. 카일의 동생 메릴리는 미치에게 호감이 있다. 어느 것에든 작은 불안이 피운 불꽃은 전체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지는 법이다. 카일은 자신의 성기능에 문제가 있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부터 우울증에 빠져 술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카일을 포함한 네 명이었고, 미치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카일은 평소 미치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고, 아내인 루시 역시 미치를 좋게 생각하던 것을 오해하며, 메릴리는 미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들 사이를 이간질하기 시작한다. 반세기 전의 영화를 보고 있는 만큼 설정에서도, 연기에서도, 그 무엇에서도 클래식을 보는 기분이지만 단 한 장면만큼은 예외였다. 이 영화에 제목은 <바람에 쓴 편지>다. 영화 초반부 카일이 모종의 사고를 당하던 날, 카메라는 바람에 흩날리고 집안을 나뒹구는 낙엽을 담는다. 호화로운 저택, 분홍빛의 실크 드레스가 무색해진다. 사랑과 질투, 우정과 애증을 다룬 서사에, 돈으로도 사랑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덧없음을 표현한 강렬한 오프닝이었다.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영원히 사랑을 추구하고 좇는 멜로드라마를 평생 써 내려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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