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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6411>

2021

by 박종승

노회찬 의원님 3주기, 그리고 그를 다룬 첫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현재 진행형이 아닌, 이미 마침표가 찍힌 인물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이름은 내가 매일 출퇴근길에 만나는 버스 노선의 이름이다. 개포동에서 시작해 신도림을 거쳐 강남으로 향하는 첫차 안 노동자들의 삶을 말하던 노회찬 의원의 발언에서 딴 제목인데, 노동자들 중에서도 청소노동자를 언급하며 그들이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 같다고, 그러면서 그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진보정치인-정당을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 정당”이라고, 이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손에 잡히는 정당”을 위해 함께 나아가자 소리치던 인물이었다. 영화는 2000년 진보정당 창당대회, 그리고 국회로의 첫걸음에서 국회의원회관에서 국회의사당까지는 걸어서 불과 5분이지만, 민중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현장에서 여기까지는 50년이 걸렸다고,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의미 있게 하겠다던 다짐으로 시작한 한 정치인의 주변에 있던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결코 짧지 않았던 그 삶의 많은 이야기를 한데 모아 담으려니 사람은 큰데 그것을 표현하려는 연출자의 실력이 부족하다.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데 그것을 하나로 엮는 선이 희미하다. 노회찬이라는 사람이 생소한 이들에겐 노회찬뿐 아니라 진보 정치사를 단기간에 쭉 훑는 가이드가 될 수도 있겠으나, 그가 전하려던 메시지를 이미 알고 있는 이들에겐 그를 회고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JTBC 손석희 당시 앵커의 앵커 브리핑을 나도 다시 인용하려 한다.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서야 작별을 고했던 그때의 손석희 앵커와 나를 떠올리며.

그래서 그의 놀라운 죽음 직후에 제가 알고 있던 노회찬이란 사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를 한동안 고심했고, 그 답을 희미하게 찾아내 가다가… 결국은 또 다른 세파에 떠밀려 그만 잊어버리고 있던 차에… 논란이 된 그 발언은 나왔습니다.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야…"

거리낌 없이 던져놓은 그 말은 파문에 파문을 낳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에 그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노회찬에 대한 규정, 혹은 재인식을 생각해냈던 것입니다. 즉,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것…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리를 지닌 사람들의 행태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 난 뒤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오늘의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노회찬6411 #노회찬 #민환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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