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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We Made a Beautiful Bouquet, 2021

by 박종승

‘짜장 vs 짬뽕’,‘찍먹 vs부먹’, ‘산 vs 바다' 같은 건 우리에겐 당연히 통하는 것이었다. 순례길을 말하니 너는 당연하다는 듯 “산티아고?”라고 받아쳤고 더 나아가 모로코에 다녀온 사진을 보내는 너였다, <스타박'스 다방>이란 아무도 안 봤을 것 같은 영화도 이미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었다. 많고 많은 책 중에 체호프의 단편을 동시에 읽고 있었다. 습작에 불과했던 나의 글에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이걸 매일같이 써 내려가던 나에게 열의가 없으면 아무나 하지 못할 일이라고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던 너였다. 하루간의 피로를 떠안고 몸을 침대에 뉘인 늦은 시간에도 우리의 대화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함께 먹고픈 돈가스가, 함께 보고픈 <캐롤>이, 함께 가고픈 아이슬란드가 리스트에 적혔고, 나는 매일 “같이 가요”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서로를 부르는 하리보라는 애칭이 더없이 달콤했다. 나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데 너는 그 세상을 직접 다니고 있음이 멋지다고 하니, 입에 넣으면 녹아버릴 거 같다고 네가 말했다.


우린 취준생이었다. 해가 떠있는 동안 연락 한통 없이 공부하다 자정이 되어서야 잠시 연락할 뿐이었다. 함께 할 것을 고대하며 구매한 <젤다의 전설>은 혼자 할 수밖에 없었고, 함께 보기로 했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끝내 보지 못했다. 막차 시간에 애태우는 게 싫어서, 제한된 시간 탓에 하고픈 말을 짧게 줄여야 하는 게 싫어서 함께 지내기로 했는데 오히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전보다 더 줄어들었다. “지금 중요한 시기잖아.”라고 생각하는 내가 싫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사니까’라고 애써 자위를 하는 내가 싫었지만 나는 또 그렇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서점에 가면 문학 코너에서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신간을 훑어보던 전과 달리 사회, 경제 코너에 먼저 시선이 갔다. 서로가 헤어져야 할 때가 왔음을 모르지 않았지만 내내 무승부를 바라며 그저 공을 패스만 하는 상태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역사적 참패 후 줄리우 세자르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의 길은 아름다웠다. 조금 아쉬웠다.” 원하는 색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수국을 선물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아름다운 꽃을 선물할 수 있어서 좋았다.


#꽃다발같은사랑을했다 #아리무라카스미 #스다마사키 #도이노부히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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