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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Oct 30. 2021

<당신얼굴 앞에서>

IN FRONT OF YOUR FACE, 2020

감독님안녕하십니까들려주신 얘기는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감독님저는 여태 그래 왔습니다. 그때는 틀렸고나는 그걸 바로 잡아 지금은 맞게 하고 있다고그때는 틀렸지만맞는 지금을 맞겠다고지금 틀리지만지금을 그때라 칭할 훗날을 그리며 고쳐가겠다고감독님저는 최근에 그랬습니다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그 사람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세세히 알고 싶어 했고어느 날엔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굴기도 했었습니다그러다 그게 틀렸음을 알고는 다시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그런데뒤늦게 인지를 했다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늦지 않고처음부터 제때에 맞는 말과 행동을 했으면 어땠을까요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조차도 틀렸다는 생각이 듭니다인생이 영화처럼 시공간을 내 의지로 뒤섞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감독님이 영화는 전에 없던 밝음이 보였지만동시에 제게 참 아픈 영화였습니다밝은 빛이 어두운 곳을 비추는 것 같았는데이내 반짝이는 번개가 저를 꿰뚫는 것 같았습니다.


상옥이 옷에 튄 떡볶이 국물을 온종일 품고 다니는 것처럼 불편한 일이 또 있을까요세상에떡볶이 국물이라니저였다면 그게 차라리 고추장이 아닌 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함춘수처럼 그 옷을 다 벗어던지고 싶었을 겁니다영호처럼 영하권의 날씨에도 옷을 내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었을 겁니다바들바들 추위에 온몸이 떨려도 저는 오히려 개운했을 겁니다하지만 인생사 그렇게 다 내던져버리고 개운함을 맞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누군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기회를 준다면 간절히 기도라도 하겠습니다겨우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다리 밑으로 숨어 들어가야 했을까요근데 저는 그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습니다저라도 그리로 갔을 것 같습니다아니 지금도 가고 싶습니다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내 옷에 튄 떡볶이 국물을.


감독님재훈의 적반하장에도 오히려 사과를 하던 수정은 이제 만날 수 없습니다진짜 예쁜데당신 너무 예쁘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 하나만 가지고 선영의 집에 찾아갔던 경수 때와는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그래도 변하지 않은 건 사람은 되지 못해도 괴물은 되지 말자던 그의 말입니다감독님괴물이란 게 뭘까요비겁한 저는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알지 않나자신을 속이지 않고 보면 알지 않나맨날 속이잖아요사람들한테 좋게 보이려고 속이잖아요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웃어주고.”라 말하던 창숙의 말이 떠오릅니다감독님저는 비겁한 놈인 것 같습니다비겁한데떡볶이 국물까지 튄 저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죽음만 떠오르는 삶은 지옥 같습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싶은 생각을 거두게 할 얼굴 앞의 천국아름답기 그지없는 천사의 얼굴을 이제 내가 보고픈 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바로 옆을 지나가는 데도 보기가 어렵습니다감독님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감독님이 영화는 전에 없던 밝음이 보였지만 제게 참 아픈 영화였습니다저에게 밝게 웃어주던 이가 이제는 저를 보고 웃지 않으니까요감독님저는 이걸 어떻게 감내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당신얼굴앞에서 #이혜영 #조윤희 #권해효 #김새벽 #신석호 #홍상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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