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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얼굴 앞에서>

IN FRONT OF YOUR FACE, 2020

by 박종승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들려주신 얘기는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감독님, 저는 여태 그래 왔습니다. 그때는 틀렸고, 나는 그걸 바로 잡아 지금은 맞게 하고 있다고. 그때는 틀렸지만, 맞는 지금을 맞겠다고. 지금 틀리지만, 지금을 그때라 칭할 훗날을 그리며 고쳐가겠다고. 감독님, 저는 최근에 그랬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세세히 알고 싶어 했고, 어느 날엔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그게 틀렸음을 알고는 다시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인지를 했다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늦지 않고, 처음부터 제때에 맞는 말과 행동을 했으면 어땠을까요. 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조차도 틀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이 영화처럼 시공간을 내 의지로 뒤섞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감독님, 이 영화는 전에 없던 밝음이 보였지만, 동시에 제게 참 아픈 영화였습니다. 밝은 빛이 어두운 곳을 비추는 것 같았는데, 이내 반짝이는 번개가 저를 꿰뚫는 것 같았습니다.


상옥이 옷에 튄 떡볶이 국물을 온종일 품고 다니는 것처럼 불편한 일이 또 있을까요. 세상에, 떡볶이 국물이라니. 저였다면 그게 차라리 고추장이 아닌 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함춘수처럼 그 옷을 다 벗어던지고 싶었을 겁니다. 영호처럼 영하권의 날씨에도 옷을 내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었을 겁니다. 바들바들 추위에 온몸이 떨려도 저는 오히려 개운했을 겁니다. 하지만 인생사 그렇게 다 내던져버리고 개운함을 맞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누군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기회를 준다면 간절히 기도라도 하겠습니다. 겨우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다리 밑으로 숨어 들어가야 했을까요. 근데 저는 그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습니다. 저라도 그리로 갔을 것 같습니다. 아니 지금도 가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내 옷에 튄 떡볶이 국물을.


감독님, 재훈의 적반하장에도 오히려 사과를 하던 수정은 이제 만날 수 없습니다. 진짜 예쁜데, 당신 너무 예쁘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 하나만 가지고 선영의 집에 찾아갔던 경수 때와는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건 “사람은 되지 못해도 괴물은 되지 말자”던 그의 말입니다. 감독님, 괴물이란 게 뭘까요. 비겁한 저는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알지 않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보면 알지 않나? 맨날 속이잖아요. 사람들한테 좋게 보이려고 속이잖아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웃어주고.”라 말하던 창숙의 말이 떠오릅니다. 감독님, 저는 비겁한 놈인 것 같습니다. 비겁한데, 떡볶이 국물까지 튄 저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죽음만 떠오르는 삶은 지옥 같습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싶은 생각을 거두게 할 “얼굴 앞의 천국”을, 아름답기 그지없는 천사의 얼굴을 이제 내가 보고픈 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바로 옆을 지나가는 데도 보기가 어렵습니다. 감독님.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감독님, 이 영화는 전에 없던 밝음이 보였지만 제게 참 아픈 영화였습니다. 저에게 밝게 웃어주던 이가 이제는 저를 보고 웃지 않으니까요. 감독님, 저는 이걸 어떻게 감내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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