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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Nov 03. 2021

<아네트>

ANNETTE, 2021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2018)가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를 수상했을 때스티븐 스필버그는 넷플릭스 영화는 아카데미가 아닌 TV 프로그램이 대상인 에미상을 받아야 한다고영화는 극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봐야 한다고, 당시 현행 아카데미 규정 상 극장에서 최소 7일 이상 상영한 후에야 시상식 후보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었다. <홀리 모터스>(2012) 이후로 근 10년 만에 모습을 보인 레오스 카락스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그때는 어떻게 생각했으며, OTT 플랫폼에서의 스트리밍이 아니고서야 관람 자체가 어려운 코로나 사태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그는 이미 <로마> 발 논란이 불거지기 훨씬 전인 2012년에 <홀리 모터스>에서 극장 안의 관객들이 모두 잠에 든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영화에 넣었었다좌석은 가득 차있으나 모두 눈을 감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극장 내 복도로 갓난아이가 기어가고공포감을 조성하는 대형견이 지나간다동력이라곤 없던 극장에 손가락이 열쇠로 변해 문을 열고 들어간 레오스 카락스 본인의 모습은 이번 <아네트>에서도 이어졌다.


꽃다발을 물어뜯던 <홀리 모터스>의 유명한 장면에서의 녹색 의상, <홀리 모터스>라는 초록 간판초록색 가면을 쓴 여인아코디언 악단이 거리를 활보하며 연주하는 장면들은 <아네트>에 옮겨갔다. <사랑은 비를 타고>(1952) 같은 뮤지컬 영화에 이런 기괴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데미언 셔젤이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든다고 해도 <라라랜드>(2016)나 <퍼스트맨>(2018)에 <아네트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무엇이 더 우위에 있다는 건 아니지만그것을 만든 감독이 레오스 카락스라면 마냥 예쁘고 매끄러운 모양새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석구석 살펴보고픈 마음이 절로 들게 마련이다레오스 카락스는 이번 영화도 자신이 연다조정실에 앉아 있는 그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신사 숙녀 여러분지금부터 집중해주십시오이제 침묵을 유지해주십시오숨 쉬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이제 숨을 크게 들이마셔 주십시오.”라 말한다흔히 공포 스릴러물을 보면서 잔뜩 긴장한 나머지 숨을 죽이게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레오스 카락스의 <아네트>를 보며 숨을 멈춘다는 것은 죽음을 맞는 것일 테다레오스 카락스의 영화들을 봐온 이들이라면 아직 아무것도 화면에 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내래이션이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었을 테다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헨리(아담 드라이버)와 오페라를 하는 안(마리옹 꼬띠아르)은 집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아닌바로 앞의 관객들이 보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펼친다레오스 카락스의 영화답게영화의 배경은 어둡다밤이다그의 영화 안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활동하는 낮이 아닌 밤에 사건이 일어나고서사가 전개된다모든 활동이 멈추는 밤에 <아네트안의 어떤 동력은 비로소 살아난다영화 바깥세상의 우리는 숨을 멈추고영화 안에 새로이 불어 든 활력을 체험한다.


레오스 카락스는 영화라는 것은 결국 낯선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낯선 언어다새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낯선 언어다.”라고 말했었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미아(엠마 스톤)와 셉(라이언 고슬링)의 희망 사항이 이미지로 보이는 순간을 <아네트>는 그대로 영화화했다. ‘그때 그랬더라면’, ‘이렇게 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을 영화화했다딸과 함께 앉아있던 그가 밴드에게 큐사인을 주자 그들이 연주를 시작했고 그들은 그렇게 거리로 나아간다현실이었는데 뮤지컬이 되고그 뮤지컬은 자연히 영화 안에 녹아든다영역 간 경계가 허물어진다영화 속 캐릭터들에게 무대 위무대 뒤 그리고 일상의 모습이 다를 텐데 카메라는 경계 따위 그저 몇 결음만 넘어가면 될 뿐 전혀 상관없다는 듯 넘어간다경계가 허물어진다경계는 허물었지만 이야기는 다시 조립한다     



무엇이 연기고 무엇이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던 <홀리 모터스>의 오스카(드니 라방)처럼, <아네트>의 것도 그런 순간이 많지만 레오스 카락스는 일부러 구분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장치들을 넣었다헨리와 안의 딸 아네트가 인형이라던가 하는 것이 그렇고안이 리무진을 타고 가며 접하게 되는 뉴스가 그렇다하나는 헨리의 미투 폭로 뉴스고하나는 우리가 익히 뉴스에서 봤던 캘리포니아의 산불이다헨리의 미투 폭로는 명백히 픽션이다현실에서 없던 일은 아니지만 헨리는 가상의 인물이고그에 대해 폭로하는 여성들도 가상의 인물이다하지만 우리가 뉴스로 접한 산불은 현실의 것이다그러나 그것을 보고 있는 리무진 내의 안은 편안하다잠이 쏟아지다가도 정신이 번쩍 들 뉴스지만 그녀는 이제 막 잠을 청하려던 참이다안이 존재하는 세계는 현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가상의 공간인 헨리의 세계에 영향을 받는다마리옹 꼬띠아르라는 배우가 현실에 있지만 그가 연기하는 안 역시 가상의 것이기에 가상의 것인 헨리와의 영향이 당연한 이치겠지.


헨리와 안은 스탠딩 코미디와 오페라라는 서로 다른 장르를 소화하지만무대 위에서 죽음을 소재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그러나 헨리의 것은 희화화나아가 조롱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안의 것은 철저히 예술로서 인지된다헨리가 죽음을 소재로 말할 때 관객들은 웃거나그들 중 누군가는 머릿속을 스쳐가는 말을 모두가 듣게끔 말하기도 한다안이 서있는 무대를 보는 이들은 절대 그렇지 못하다레오스 카락스가 영화를 열며 우리에게 했던 말숨소리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이 안의 오페라를 보고 있는 이들에겐 적용되고 있지만헨리의 무대를 보고 있는 이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홀리 모터스>에서 극장 안 눈을 감고 상영되는 영화를 보지 않는 이들은 헨리의 무대를 보고 있는 이들일까안의 무대를 보고 있는 이들일까헨리의 무대엔 갖은 조명과 코러스까지 동원되는가 하면 안의 것은 그의 무대를 돕는 스태프들만이 있다레오스 카락스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요청했던 것이 받아들여지는가의 여부에 따라 영화가 될 수 있냐그렇지 않냐가 나뉜다헨리는 두 번의 스탠딩 코미디를 선보이는데마이크 줄로 자신의 목을 졸라 질식하는 연기를 한다죽음을 말했으나 그 죽음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두 번째의 것에선 안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역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안의 죽음은 그 무대 위에서 온전히 죽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유사한 것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딸 아네트의 목소리다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가 노래를 잘하는 것에야 더 이상 놀랄 것이 아니지만그 출산에서부터 기이했던 아네트는 인형이기에 당연히 말을 할 수 없다실제로 배우들에게 노래할 것을 요구했던 것과 다르게 아네트의 목소리와 그의 노래는 후시 녹음된 것이다그 촬영 현장에 있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동시인지 후시인지 알 수 없지만어쨌든 영화적으로 촬영과 편집 단계를 거쳐야만 아네트의 것은 완성될 수 있다아네트는 언제 노래를 하는가아네트는 언제 인형이 아닌 현실의 것이 되는가안이 떠나고헨리가 망하니 아네트가 일약 스타가 된다아네트가 그들의 딸로 존재할 때엔 그녀는 인형이었으나아네트가 헨리를 아버지로서 부정할 때에 사람의 몸이 된다다시헨리와 안이 떠난 여행에서도 그랬다폭풍우가 몰아치는 배 위의 그들은 사고 위험이 전혀 없는 현실과 달리 한 발자국이라도 미끄러지면 곧장 죽음에 처할 위기의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퐁네프의 연인들>(1992)의 마지막 미셸(줄리엣 비노쉬)과 알렉스(드니 라방)가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어디였을까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들리던 자동차 소리는 어디의 것이었을까. <아네트>의 마지막과 연결 지어볼 수 있을까. <홀리 모터스>의 오스카를 보며 대체 저 인물의 삶과 고난은 어디서 끝날까 싶었는데, <아네트>의 헨리에게는 명확한 지점의 마지막을 제공한다.


드니 라방을 볼 때야 뭐 다른 생각은 전혀 들지도 않았지만헨리의 마지막 장면에선 유난히 레오스 카락스의 모습처럼 보였다삶과 영화현실과 가상의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고나도 모르는 사이 커다란 벽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결국 이 커다란 벽 앞에 우두커니 서있게 될 줄 알았지만 다시 한번 홀리듯 그의 영화에 빨려 들어갔다가 나왔다숨이야 계속 들이쉬고 내쉬었지만전혀 다른 새로운 호흡이 시작된 것만 같다.


#아네트 #아담드라이버 #마리옹꼬띠아르 #레오스카락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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