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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트>

Mate, 2017

by 박종승

당신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당신이 문득 생각날 때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지만, 당신에게 다가갈 순 없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그러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겉모습에서 그게 다 티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과정에서 생긴 수많은 생채기들, 다시는 그 상처를 입고 싶지 않아 나도 모르게 뒤집어쓴 등껍질 속에 나를 감추게 됐다. 어디서 이런 흉측하고 거대한 것을 주워왔을까. 비슷한 상황에서 받았던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고 남아있는 건지,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저 멀리 서라도 보이기 시작해 나는 당신에게 다가감을 멈추게 됐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내 머리가 그때의 아픔을 기억하는 건지, 나는 애초에 시작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다른 누구에게도 이렇게 하지 않음을 당신에게 말해봤자, 당신은 믿지 않았다. 다른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하지 않고, 다른 누구에게도 이렇게 웃지 않으며, 다른 누구도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고, 다른 누구에게도 꽃을 안겨주지 않지만,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처음부터 당신에게만은 그래 왔기에 당신 입장에선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당신 앞에선 이런 등껍질 따윈 내던져버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신에게 내보이고, 당신에게 표현하고, 당신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등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던 시간이 길었나 보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많은 상황에서 등껍질을 찾고 있었고, 머리로는 자꾸 벗어던지고 싶은데 내 안에서 방어기제는 더 강하게 작동했다.


참지 않아도 될 일에 참기를 강요당하고, 강요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참아야 한다고 되뇌며 내 안에서 구질구질한 분노가 점차 커졌다. 당신에게 실망하고 화가 나고, 그래서 싫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니 그것의 반만큼도 해주지 못하는 나 자신한테 화가 났다. 내가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던 횟수만큼 내가 나의 마음을 쓰다듬어 그것을 잘 다스려왔던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당신에게 잘해줄 수 있었을까. 다음이 있다면 더 잘하고 싶다. 다음 사람이 아니라, 당신과 만나는 다음에는.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동시에 글로 나를 포장하는 건 치사하다고 생각하기에 변명 같은 구차한 말은 더 못 하겠다.


같이 있는 동안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메이트 #심희섭 #정혜성 정대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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