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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Dec 04. 2021

<밤의 해변에서 혼자>

On the Beach at Night Alone, 2016

겨울바람이 살을 칼로 써는 듯 매서워서그 추위가 날 누르는 듯 움츠러들어서 피할 생각만 했지온전히 내 의지로 그것에 몸을 맡긴 채 사장에 눕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더라고요눈을 감으면 파도의 움직임과 그 한기가 코끝에 닿고무중력 상태가 된 듯 내가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요그런 날 모르는 사람이 멀리서 보면 죽은 게 아닐까 걱정이 됐겠지만 막상 누워있는 나는 그렇게 편안한 시간이 또 없었던 거 같아요눈을 감았지만눈앞이 캄캄하지만 더 선명해지는 너의 얼굴너의 예쁜 얼굴나는 그 강풍이 너로 인한 아픔을 다 가져가 줬으면 했어요그 바람에 너에 대한 기억이 다 날아갔으면 했어요옷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어내듯 너도 털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눈을 뜨면 모래는 바닷물을 머금어 잘 털어지지 않았고눈물이 스며든 자리엔 무궁화가 한가득이더라고요어우너무 보고 싶네나처럼 너도 내 생각을 할까.


보이시나요저의 마음이보였던 적은 있었나요저는 왜 이런 마음으로 살게 됐을까요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계속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아요매번매 순간 되뇌어요사랑을 할 때그리고 그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선한 행동인가 악한 행동인가라는 분별보다는 더 고상한 것더 중요한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괴물이 되지 말아야지벗어나야지후회하는 거에서 벗어나야지.’ 그런데그런데 계속 후회해요매일 같이 후회해요지긋지긋하게 후회해요저도 하기 싫은데 계속 후회가 되는 걸 어떡해요그렇게 아픈데도 계속 후회가 되는 걸 누가 좋아서 하나요근데 그것도 자꾸 하다 보면 달콤해서그래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요계속 후회하면서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어요소위 마기꾼이라는 말이 네게는 마음을 훔쳐간 사기꾼이라고 했듯 너는 내게 너무 예쁜 사람이었어요.


#밤의해변에서혼자 #김민희 #홍상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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