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Beach at Night Alone, 2016
겨울바람이 살을 칼로 써는 듯 매서워서, 그 추위가 날 누르는 듯 움츠러들어서 피할 생각만 했지, 온전히 내 의지로 그것에 몸을 맡긴 채 사장에 눕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눈을 감으면 파도의 움직임과 그 한기가 코끝에 닿고, 무중력 상태가 된 듯 내가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요. 그런 날 모르는 사람이 멀리서 보면 죽은 게 아닐까 걱정이 됐겠지만 막상 누워있는 나는 그렇게 편안한 시간이 또 없었던 거 같아요. 눈을 감았지만, 눈앞이 캄캄하지만 더 선명해지는 너의 얼굴. 너의 예쁜 얼굴. 나는 그 강풍이 너로 인한 아픔을 다 가져가 줬으면 했어요. 그 바람에 너에 대한 기억이 다 날아갔으면 했어요. 옷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어내듯 너도 털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눈을 뜨면 모래는 바닷물을 머금어 잘 털어지지 않았고, 눈물이 스며든 자리엔 무궁화가 한가득이더라고요. 어우, 너무 보고 싶네. 나처럼 너도 내 생각을 할까.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보였던 적은 있었나요. 저는 왜 이런 마음으로 살게 됐을까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계속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아요. 매번, 매 순간 되뇌어요. 사랑을 할 때,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선한 행동인가 악한 행동인가라는 분별보다는 더 고상한 것, 더 중요한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 괴물이 되지 말아야지. 벗어나야지. 후회하는 거에서 벗어나야지.’ 그런데, 그런데 계속 후회해요. 매일 같이 후회해요. 지긋지긋하게 후회해요. 저도 하기 싫은데 계속 후회가 되는 걸 어떡해요. 그렇게 아픈데도 계속 후회가 되는 걸 누가 좋아서 하나요? 근데 그것도 자꾸 하다 보면 달콤해서, 그래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요. 계속 후회하면서,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어요. 소위 ‘마기꾼’이라는 말이 네게는 ‘마음을 훔쳐간 사기꾼’이라고 했듯 너는 내게 너무 예쁜 사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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