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승 Jul 28. 2022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2021

무너지고 깨어짐. 결국 무너지고 깨어질 것인데 또 하고 또 한다. 멜로드라마란 선남선녀가 어느 날 기적처럼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져 동화처럼 오래오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될 듯 말 듯한 줄다리기를,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의 긴장감을 다루는 것이다. 사람마다 가진 마음의 모양이 다르고, 추구하는 사랑의 모양 역시 다르겠지만, ‘발단-전개-위기-절정’과 ‘기-승-전-결’의 과정에서 갈등은 생기기 마련이고, 결국 무너지고 깨어짐을 맞이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헤어질 결심>이란 제목에서 선언이나 다짐처럼 느껴지는 그 비장한 마음을 향해 영화는 나아간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 나아가는 과정을 관객으로 하여금 찬찬히 따라가게 만들지, 과정들에서 맺힌 결실들을 보여주진 않는다. 마치 “이 과정을 함께 지켜본 당신은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사랑은 어땠습니까?”라고 묻는 것만 같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의 단편 <묘지기>에서 “격절(隔絕)”이라는 마음을 말했다. 무너지고 깨어짐을 사전에 검색했듯 격절을 검색하면 “서로 사이가 떨어져서 연락이 끊어짐”이라 나온다. 릴케는 소설에서 “인간이란 서로가 엄청나게 멀리 격절되어 있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가장 멀리 격절되어 있는 거야.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서로 상대방에게 던져주지. 그러나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거든. 그러니까 그것들이 두 사람 사이 어딘가에 떨어져서 산더미처럼 쌓이지. 서로를 보려고 해도, 또 가까이 가려고 해도 결국은 그것이 장해가 되는 거야.”라고 했다. <헤어질 결심>은 함께 있으면서도 격절되어 있고, 오히려 격절되기 위해 함께하기로 결심하는 마음을 그린다.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 영원히 격절하려는 결심, 영원히 미결이 될 결심, 영원히 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은 살인사건을 다루며 주인공 해준(박해일)이 경찰로, 서래(탕웨이)가 피의자로 등장하는 범죄/스릴러를 다루고 있어서 얼핏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에서 봐왔던 피 튀기는 장면들이 떠오르겠으나, 이 영화는 그것에서 서스펜스를 형성하지 않는다. ‘사랑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아도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 상대방도 나에게 그런 마음이 있는지 궁금해하고, 그걸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고, 전할 수 없다면 그것에 안타까워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 간에 형성되는 긴장감, 그러나 끝끝내 격절되는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형성한다. 해준이 서래를 처음 만나 서래가 “마침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해준은 옅게 미소를 보이며 “저보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웃음) 패턴을 알고 싶은데요.”라고 말한다. 물론 그것이 표면적으로 기도수(유승목)의 핸드폰 패턴을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해준이 그 말 안에 서래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는 의미를 내포시킨 걸 알 수 있다. 죽은 남편, 용의자 아내, 그리고 형사라는 전형적인 필름 누아르의 설정도 그저 단순히 설정에 불과하다. 일단 설정을 이렇게 갖춰두고, 영화는 전혀 다른 태도와 방식을 취하는데, 이는 사실 박찬욱 감독이 전작들에서도 계속해서 보여줬던 것이다. <박쥐>(2009)에서 뱀파이어를 소재로 하지만 사실 상현(송강호)과 태주(김옥빈)의 절절한 마음을 다뤘듯이 말이다.


멜로는 줄다리기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라고 내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노라 직구를 던지기도 하지만, 내심 나를 좋아해주길,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기만 하면서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마음을 감추고 있다가 끝내 부러 들켜주기도 한다. 해준의 집에 있던 서래의 사진을 두고 둘이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처럼, “예쁘다(piao liang 漂亮)”는 말에 서래가 자신의 사진 하나를 허락하니 해준이 “이것도, 이것도 빼줘, 이것도.”라고 하는 장면처럼. 금세 뜨겁게 타올랐다가 금세 꺼지고야 마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헤어지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닌 의도와는 다르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자꾸만 어긋나고야 마는 것을 영화는 말한다.




우리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과 생각을 말로써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표정이나 몸짓, 풍기는 기운이라는 기표로써 내 의지와는 다르게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곤 하는데, 해준이 풀고 싶었던 패턴처럼 다양한 기표가 영화의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와중,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스마트 워치다.


경찰인 해준은 자신의 수사과정을 스마트 워치의 녹음으로써 기록하는데, 나중에 둘은 직접 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그 녹음으로써 전달하고, 그렇기 때문에 적기에 소통될 수 없어 어긋난다. 중국에서 온 서래는 한국말이 서툴다(본인 입으로 서툴다고 말한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서로 달라 번역이 필요해서 스마트 폰이 그 역할을 해주지만 딱딱한 기계음성은 인간의 온전한 감정까지는 담을 수 없어 둘을 어긋나게 한다. 심지어 그 얼굴을 마주하고, 그 말에 담긴 감정을 표정과 몸짓으로써 보여줌에도 쉽지 않으니 별 수 있겠는가. 스마트 폰을 기반으로 위치추적도 할 수 있지만 대략적인 위치만 알려줄 뿐 아주 정확한 곳을 알려줄 수는 없고, 스마트 기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으면 추적이 안 되기에 어긋난다. 과거 편지라는 매체로 마음을 주고받던 것과 다르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텍스트에는 상황과 감정이 오롯이 반영되기 어렵고, 시대가 변하고 과학 기술이 발전하며 보다 쉽게 말을 전달할 순 있지만, 말을 쉽게 전달할 수는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말이 쉽게 그리고 온전히 전달되지 않으니 해준은 서래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자신이 쓰는 텍스트에도 물음표로 맺을 것인지, 마침표로 맺을 것인지 고민한다. 서래는 해준을 만나기 전에도 “마침내.” 같은 어휘를 구사함에 있어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래에게 기도수 이전의 한국 남자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 수줍게 웃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지 않을까. “단일한”을 사용했을 때 해준이 반응하지 않으니 “마침내” 때처럼 수줍게 웃었다가 바로 웃음기를 거두기도 한다. 둘은 자신들 사이에 놓인 언어의 장벽을 넘기 위해 각자의 국어를 공부하기도 하는데, 서로 격절되어 그 사이에 여러 단어와 문장부호들이 쌓인다. 박찬욱은 친절한 비교로써 호신(박용우)과 서래의 텍스트를 이미지로 보여주는데, 호신은 맞춤법이란 건 가능한 한 다 틀리게 사용한다. 문장부호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스마트 기기 세상에서 잘 보이지도 않을 수 있는 그 작은 것들에게도 신경 쓰는 해준과 서래의 마음. 처음엔 해준과 서래가 경찰과 피의자 신분으로서 만났으나, 이내 사랑하는 사이로 변모한다. 나는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상대방은 나를 사랑하는지 궁금한 이들은 뿌연 안갯속에서 방황한다.


영화는 산에서 시작해 바다로 끝나고, 그사이 어느 지점에서 자욱한 안갯속을 헤매다 바다에서 끝을 맞는다. 영화는 경찰인 해준의 시점에서 서래가 범인일지 아닐지, 나아가 둘의 감정이 무엇일지 혼란스러움을 야기한다. 초록인지 파랑인지 모를 청록색 원피스와, 역시 동색의 바다인지 산인지 모를 벽지 같은 것들처럼 말이다. 그 모호함 속에서 박찬욱 감독의 변태적인 연출도 한몫했지만, 그것들을 온몸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배우들의 공이 매우 크다.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그간 다져온 반듯한 캐릭터들은 지금의 해준을 위한 것이었나 싶다. <국화꽃 향기>(2003)의 인하로부터 <괴물>(2006)의 난리통에서도 정장 차림을 유지하던, 장률 감독의 <경주>(2013)와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 같은 영화들에서 다져온 그의 캐릭터 말이다. 해준은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쫓으면서도 바르게 빚어진 모습으로 정장 차림을 하고선 대뜸 철장갑을 안주머니에서 꺼내 맨손으로 흉기를 든 이와 혈투를 벌인다. 한국 영화에서 경찰이란 황정민으로 대표되는 이미지가 큰데, 박해일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는 상대방과 다른 점에 호감을 갖게 되기도 하지만 공통적인 부분에서 호감을 느끼는데, 올곧음에 근거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해준은 서래에게 당신이 “꼿꼿해서” 좋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그런 반듯한 인물이 오래간 지켜온 올곧음을 버리고, 무너지고 깨어지게 만드는, 붕괴하게 하는 서래는 자신의 마음에 온전히 충실한다.



상대역인 탕웨이 역시 비슷한 면이 있다. 그는 <색, 계>(2007)에서 왕치아즈를 연기하며 친일파의 핵심 인물 이 선생(양조위)에게 위장 잠입해 암살하려는 계획에 참여했다가 그와 사랑에 빠져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지만 이내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며 온 몸을 내던진다. <만추>(2011)에서 애나는 서래와 마찬가지로 남편을 살해한 인물이었는데, 역시 중국어로 대화하는 그녀와 한국어로 대화하는 훈(현빈) 사이에서 언어의 장벽을 넘어 그 마음을 표현하는 인물이었고, <온리 유>(2015)에서는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 연고라곤 일체 없던 이탈리아로 날아가는 이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고 히치콕이나, 비스콘티 등의 이름들도 좋지만, 누구보다 왕가위가 떠올랐다. <해피투게더>(1997)에서 사랑한다고  번도 말하지 않지만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보영(장국영) 아휘(양조위) 모습들, 녹음기를 붙잡고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을 하던 아휘의 모습, <화양연화>(2000)에서 수리첸(장만옥) 차우(양조위) 마지막 통화를   수리첸이 입고 있던 청록색의 원피스와 끝내 전화기 너머로 전달되지 않은 그러나 전달된 마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전달된 사랑한다는 . 서래가 해준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모래사장에 영원히 비밀을 묻었듯, 차우가 돌기둥에  홈에 자신의 비밀을 담고 진흙으로 묻은 것들 말이다.


서래는 해준에게 영원히 미결 사건으로 남아 절대 떼어지지 않을 사진으로 그의 곁에 있을 것이다. 해준은 매일 밤 서래의 사진을 보며 잠을 설칠 것이고, 잠을 자기 위해 그의 것과 섞였던 호흡들을 기억해내기 위해 애쓸 것이고, 아마 그가 남긴 음성 녹음을 매일 반복해서 들을 것이다. 서래가 의도한 대로 붕괴됐던 해준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영원히 미결 사건이 됨으로써 영원히 함께 하게 되었다. 영원히 헤어지게 되었다. 해준은 서래와의 모든 대화들, 함께한 시간들의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 되짚어볼 것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하나하나 뇌에 새길 것이다. 올곧음에서 근거한 자부심으로 살아왔으나 그 올곧음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나무가 너무 곧으면 부러지듯이. 나는 절대 틀리지 않았다고 자신하는 ENTP가 INFP의 영향을 받아 무너지고 깨어져 방황하듯이. 그렇게 둘 사이엔 격절되어 서로에게 전달되지 못한 영원한 추신이 남게 되었다.


#헤어질결심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박용우 #고경표 #유승목 #박찬욱 #영화

작가의 이전글 <너에게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